거장 감독과 대배우와의 만남.
빔 벤더스 감독과 일본 국민배우 야쿠쇼 코지의 만남이 이루어진 이 영화는
그 자체로 예술이었다.
도쿄 청소부의 특별하지 않은 잔잔한 일상을 그리는 영화인데
조금도 지겹지 않았고 오히려 흥미진진하다.
음향 효과가 영화에 아주 많은 생동감을 부여하는데
주인공이 하루를 살아가며 만나는 도쿄의 소리들도 생생했지만
그가 차 안에서 듣는 옛팝송도 영화의 흐름을 잘 살려주었다.
일상의 소리와 음악 소리가 어우러지는 가운데
히라야마의 삶속에 나도 모르게 집중하고 빠져들었다.
그가 왜 청소부라는 직업을 택했는지 영화는 자세한 이유를 말하진 않는다.
다만 잠시 다녀간 여동생과 조카와의 대화를 통해 무슨 사연이 있음을 짐작할 뿐...
그는 아침에 일어나 식물에 물을 주고 면도를 하고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뽑아서 차에 오른다.
차에선 낡은 카세트 음악을 틀고 밝음 얼굴로 일터로 향한다.
같이 일하는 젊은 동료가 왜 그렇게 성실히 일하냐고 궁금해할 만큼
정성들여 청소를 하고 점심 때는 가까운 신사에 들러서
공원 같은 숲속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나무 사이로 하늘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순간을 필름 카메라로 담는다.
일을 마치고는 목욕탕에 들러 씻고
서민적인 분위기의 식당에서 음료를 한 잔 시키고
집에 돌아와서는 책을 읽는다.
그가 읽는 책들도 이 영화의 소소한 재미 중 하나다.
헌책방에 들러 책을 사고, 주말에는 빨래방에 들르고
친분 있는 여주인이 하는 단골 식당에서 주문을 한다.
주인공 히라야마는 조카가 다녀가기 전까지는
거의 말을 하지 않는데, 이 일상 속의 수많은 감정을
표정으로 다 보여준다.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만했다.
이 정도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배우가 있을까, 없지 싶다.
정말 대단한 배우였고 그의 얼굴이 오래 기억에 남을 듯 싶다.
영화를 보면서 감독이 대체 이 영화를 어떻게 마무리할까 싶었는데
내 예상이 맞았다. 히라야마는 여느 때나 다름없이 아침 해가 뜰 무렵 출근하고
차에서 음악을 들으며 미소 짓다가 눈물을 글썽이다가 다시 미소 짓는다.
영화는 이 장면을 강렬한 음악과 함께 롱테이크로 보여주는데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었다.
야쿠쇼 코지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이기도 했다.
삶은 그렇게 계속된다는 메시지를 그의 얼굴 표정으로 다 말해준다.
대단히 인상적인 엔딩이었고 배우의 카리스마를 아낌없이 보여주었다.
'퍼펙트 데이즈'는 완벽한 날들보다는 완전한 날들이라 번역해야 할 것 같다.
우리의 일상은 완벽하지 않고 돌아보면 후회로 가득하여
히라야먀는 미소 짓다가도 때론 눈물을 글썽이지만
평범한 그 삶이 그 자체로 완전하다는 걸 보여주는 영화.
엔딩 장면과 함께 또 자주 등장하는 장면은
히라야마가 점심 때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바라보는 장면이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일본어로는 '코모레비'라고 한다고 한다.
영화에서 코모레비는 삶의 잔잔한 기쁨 뿐만이 아니라
삶이란 어두운 그림자가 주위를 감쌀지라도
그 속에서 빛을 볼 수 있다는 걸 가르쳐준다.
그래서 히라야마는 날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코로레비의 순간을
사진으로 기록해둔다.
우리 모두는 평범하고 고단하며 지난한 일상을 살아간다.
하지만 그런 우리 모두의 삶 속에는 코모레비의 순간이 존재한다.
우리에게 코모레비는 무엇일까.
삶에 울음을 터뜨리다가도 다시 우리를 미소짓게 하는
코모레비의 존재를 말해주는 것이 영화 '퍼펙트 데이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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