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주최 IB 간담회 참석, 이런 데 잘 안 가는데 IB가 뭔지 하도 궁금해서 가봤다. IB 관련 책을 두 권 읽었는데도, 내가 교육학 박사 전공인데도 뭔 말인지 잘 모르겠더라. 그 이유를 알았다. IB는 저작권이 있어서 세부 프로그램을 공개하지 않는다 한다. 그러니 책도 두리뭉실하게 적힐 밖에.
저작권은 또 처음 알았네. 학생들 활동 자료도 외부 공개를 못한단다. IB 소유라나. 교육 자료와 결과들을 공유 못하는 게 공교육과 같이 갈 수 있나. 이것 참...
간담회 내용을 간략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초등 IVPYP는 교육 내용만 보자면 IB에 별 거부감이 없다. 지금 교육과정도 교과간 융합이 많아서 IB랑 크게 다르지 않음. 다만 국가교육과정을 IB 과정에 우겨넣는 과정에서 IB 안에 안 들어가는, 예컨대 실과 같은 과목은 별도 싱글프로젝트로 진행하지만 축소, 생략하는 경우가 많음. 대충이라도 해서 교과서 내용을 다 전달했다는 식으로 학년을 마치게 됨.
2. 국가교육과정을 다 하면서 IB교육도 할 때의 문제점이 그것이다. 국가교육과정 중에서 IB와 맞는 것을 골라 교육과정을 새로 짜고 IB 안에 들어가지 않은 내용들은 가볍게 다루다보니 학생들이 기본적으로 배우는 내용이 적어진다. 기초가 탄탄한 수성구 학생들이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현재 IB학교는 고등학교를 제외하곤 다 변두리 지역이어서 학생들이 많이 못 배우고 학교를 마치게 된다. 통합교과 위주로 짜게 되면 국어와 수학 등이 소홀해진다.
3. 초중학교의 경우 IB과정을 마친 학생들을 관찰해보면 많이 훈련되어서 발표는 진짜 잘하는데, 내용이나 알맹이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게 된다고 한다.
4. 기본적으로 IB는 초등학교 PYP, 중학교 MYP 과정과 고등 2년 DP과정이 완전히 다르다. 초중은 평가가 학교내에서 이루어지지만, DP는 학생들의 결과물을 본부로 보내서 평가받아야 한다. 그리고 교사의 경우, MYP 과정에서 IB를 가르쳤다고 해서 DP 과정을 가르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5. 대구교육청은 IB 입시 결과가 좋다고 홍보하지만, 고등학교에서 IB를 하는 학교는 외국어고, 국제고 등 어짜피 입시 성적이 좋은 학교들이다. 사대부고의 경우 한 반만 IB로 운영되는데 1~3등급 학생 중에 IB 과정을 하는 학생은 없다. 중위권인데 자기 성적보다 높은 대학을 희망하는 학생이 IB에 눈을 많이 돌린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 대학에서 IB로 입학할 수 있는 학교는 없으나 대구교육청에서 끊임없이 몇 몇 티오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한다.
6. IB 참여 교사들 중에는 IB 프로그램에 호의적인 이들도 있는데, 국가교육과정만으로는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막막한 경우가 많은데, IB 프로그램으로는 수업을 짜기가 쉽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분들도 모든 학교가 IB를 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못하겠다 하셨다. 그럴 필요가 있냐고?
7. 가장 큰 문제는 저작권이다. IB는 프로그램 뿐 아니라 학생들의 학습 결과물과 교사들의 자료까지 외부 유출이 금지된다. 공교육과 양립하기 어려운 지점이다. 대구교육청은 IB가 비영리기관이라 하지만 실은 IB는 자기들이 돈을 벌기 위해 존재하는 비즈니스 기관이다.
8. 교육형평성의 문제도 제기된다. 고교의 경우 IB 학반은 한 반에 15명 정도지만 다른 학급은 26명이다. 비싼 돈을 주고 IB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은 교육의 민간 위탁이자 민영화의 길을 터놓는 것이다. 대구교육청은 IB로 입시 성과를 내려 하는데 만약 수성구에서 IB로 대학을 간다 치면, IB도 사교육이 판을 칠 것이다. 우리 교육의 문제는 우수한 프로그램 도입의 문제가 아니라 경쟁에서 이기고자 어떤 수단이든 동원하는 데 있다.
9. 애초에 IB는 해외에 있는 외교관 자녀들에게 어디에 살든 기본 수준이 갖춰진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DP 과정은 몇 과목은 반드시 영어로 진행되어야 한다. 대구교육청은 매년 4억을 들여 IB 한글화를 하고 있지만 이것이 우리 교육과 같이 갈 수 있을지 의문이 있다.
10. 작년에 대구교육청이 IB에 쓴 예산은 29억이다. 그러나 교육청 업무 담당자들은 하나같이 그것보다는 훨씬 많을 걸? 한다. 왜냐면 IB 전국 간담회, 교사 연수 등의 각종 행사를 IB 예산이 아닌 일반 연수 예산으로 편성해 집행했기 때문이다. 확실한 건 IB에 돈을 얼마나 쓰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 아무튼 IB협회의 순이익은 우리나라 덕분에 요 몇 년새 크게 늘었다.
11. 대구교육청은 IB 학교가 현재 20퍼센트이며 내년에 30퍼센트로 늘린다고 선전하지만, 지금도 20퍼가 아니다. IB협회에서 인정하는 IB학교에 지금 IB연수만 받는 기초학교 등은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교에서도 IB DP 과정까지 이수한 학생은 몇 십명 정도다.
12. 국가교육과정의 지필평가와 수행평가, 나이스 기록 등을 다 하면서 IB까지 학교에서 두 개 교육과정을 운영하자니 교사들이 매일 야근에 죽어남.
대충 기억나는 걸 적어봤다. 내 결론은...
국제 호구도 이런 국제 호구가 없음. 아니, 저작권 걸려 있는 프로그램을 비싼 돈 써가면서 왜 모든 학교에 강제함? 굳이 하고 싶으면 한 학교 정도 정해서 시범학교로 해보던가. 그것도 둘 중에 하나만 해야지 국가교육과정을 하면서 거기에 IB를 우겨넣어서 어쩌자는 건가?
국가교육과정이 엄연히 있는데, 왜 IB가 필요한 지도 모르겠고. IB의 장점들은 국가교육과정 안에서도 충분히 구현할 수 있는 것들인데, 꽉 짜인 객관식 평가 일정, 숨막히는 수행평가, 각종 뒤치다꺼리, 평가에 대한 외부의 민원 등으로 못하는 게 아닌가.
그리고 세계시민교육, 이런 거 난 안 믿음. 국적불명의 교육은 어떤 교육도 아님. 그건 이야기가 길어질테니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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