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사람들과 IQ에 대해 토론했다.
인간의 머릿속 능력을 재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의 문제에 대해.
비네가 처음 시도한 이래,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IQ 문제라고 해봐야 고작해야 괄호 채우기나 단답형 형식인데
그걸로 어떻게 학생들의 사고력, 문제해결력을 측정할 수 있냐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재려고 하는 것이
태어나기 전부터 가지고 온 능력인지,
아니면 어린 시절의 경험을 통해 후천적으로 형성된 능력인지도 불분명했다.
물론 나는 IQ 자체를 그다지 신뢰하지는 않지만
학생들의 학습 능력에 대한 참고 자료 정도는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것 역시 고정관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석탄이 옷의 원료가 될 수 있는가?
지금 같으면 될 수 있다는 대답이 가능하지만
이만년 전에 이 질문을 던진다면, 석탄은 결코 옷의 원료가 될 수 없다.
밖으로 표현된 능력을 보고
원래 머릿속에 그런 능력이 들어 있었다고 생각해도 되는 것일까?
한 어린이가 발로 문을 계속 찬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축구 선수가 되면 좋겠다고 말을 할 것이지만,
과연 축구라는 것이, 공을 차는 것이 전혀 없던 시대에는
그건 아무 능력도 아닌 것이다.
우리는 볼 수 있는 것만 보려고 한다.
원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머릿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우리가 과연 알 수 있을까?
인간의 능력이라는 것은 사회적 요구, 시대적 요구에 의해
새롭게 깨어나는 것이 아닐까?
아이들을 성적 위주로 평가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그래도 내 마음 한 구석에는 인간의 능력에 대한 끔찍한 고정관념이
들어앉아 있었던 것이다.
얘는 똑똑해. 얘는 안 되겠어. 라는 식으로.
한 인간이 지닌 성장의 잠재력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다.
백년 전에 비네가 기본 틀을 만든 IQ검사는
아이들의 현재 능력은 어느 정도 측정할 수 있는지는 몰라도
원래 갖고 온 능력은 결코 측정할 수 없다.
아이들의 현재 능력을 보고
이미 그 아이 안에 그러한 것들이 들어 있었다고 유추해서
생각할 수는 없다.
수능 영어 점수와 텝스 점수의 괴리를 살펴보면
사실 껍데기를 평가하는 것조차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인간 마음의 신비한 영역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함부로 판단할 수 있을까?
학생의 현재뿐 아니라 미래를 보기. 그리고 가능성을 촉진하기. 희망을 제시하기.
교육에서 의미하는 <현재>란 과거와 미래를 포함하는 현재임을 잊지 말 것.
<어제>의 경험을 외면하지 않고, <내일>의 가능성을 억압하지 않는
나아가는 길 위에 있는 <현재>.
내일을 무시하는 <현재>도 아니고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현재>도 아니고
머리 들어 내일을 바라보는 동시에, 두 발은 오늘 위에 굳건히 서 있는 <현재>.
길 위에서 길을 즐기는 <현재>.
그러나 그 길을 멈추지 않고 계속 걸어가는 <현재>.
학생의 현재 속에서 그의 미래까지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학생이 그의 현재 뿐 아니라 그 현재 속에서 꿈틀거리는 미래까지를
자신의 능력으로 받아들이도록 일깨워주는 것이
교사의 능력이라는 결론이 났다.
갈 길이 멀다...
300x25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