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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일상의 기록

春怨 - 봉하에 다녀와서

by 릴라~ 2009. 5. 31.


春怨
(춘원) / 王安石(왕안석)

掃地待花落 (소지대화락)
惜花輕著塵
(석화경착진)
遊人少春戀
(유인소춘연)
踏花却尋春 (답화각심춘)

땅을 쓸고 꽃잎 떨어지기를 기다리나니
그 꽃잎 티글 먼지에 더렵혀질까 안타까워라
놀이꾼들은 봄 사랑이 모자라
그 꽃잎 즈려밟고 봄 찾아 헤매이누나


지난 화욜 밤, 봉하에 다녀왔다.
대구 수성 IC에서 한 시간 거리, 너무 가까운 거리가 내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이렇게 가까운데 왜 한 번도 가지 못했는지.

갈 기회가 한두 번도 아니고.. 몇몇 모임에서 가자고 여러 번 연락이 왔었는데...
좀 조용해지면 가야지 했었다. 나까지 가서 바쁜 분 성가시게 하는 것 같아서,,
다른 분들 다 가고 나서 가려고 했었다. 그 분 농부 생활이 이처럼 빨리 끝날 줄은 정말 몰랐다.
그 분은 언제나 거기 그 자리에 푸른 소나무처럼 계실 줄 알았다.

밤 열 시에 출발, 진영공설운동장에서부터 긴 줄 때문에 셔틀 버스를 한 시간 넘게 기다리고..
봉하 마을 입구에서 또다시 끝도 없는 줄, 네 시간 넘게 기다린 끝에
새벽 4시쯤 조문을 할 수 있었다. 상주로 명계남씨와 권해효씨가 보였고...
조문 후 어둠 속에서 사저와 부엉이바위를 둘러보았다.
작은 줄은 알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나 작은 봉하 마을.
이 산골마을까지 쫓아온 권력의 칼날.
장례 끝나고 나면 마을 주민들의 허전함이 참으로 크겠다 싶었다.
한 생을 너무나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오신 분이라
'노무현 대통령님, 편히 잠드소서'라는 플래카드가 믿기지 않았고
또 그 분과 참 안 어울리는구나 했다.

줄은 너무나 느리게 줄어들었고
남녀노소, 각계각층, 꼬마로부터 중학생, 대학생, 머리 하얀 노인분들까지...
밤새도록 봉하의 찬바람을 맞으며 기다렸다.
함께 간 일행이 이 길게 늘어선 줄을 언론은 취재하지 않는다고 불평했는데 (분향소만 취재했었다),
이 행렬은 목요일부터 중앙파에 나오기 시작했다.
돌아나오면서 자원봉사자분들로부터 만장을 받아서 마을 입구까지 들고 나왔다.

이제 
대통령께서는 한 줌의 재로 돌아가셨다. 가볍디 가볍게...
한 마리 새처럼 하늘로 훨훨 날아가셨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딴나라당 인간들은 죽음이 끝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를 죽인 것으로 할 일을 다했다고 만족하겠지만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웠고 또 알고 있다.
시대의 증오와 싸우다가 쓰러진 꿈이 사람들 가슴 속에 가장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그 진실 위에서 우리 상상할 없었던 새로운 미래가 피어오른다는 것을.
깨끗한 영혼을 지닌 채로 정치판에서 살아남고 성공하는 예를 보여주시겠다던 분은
이제 꿈이 되고 전설이 되어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미래는 우리 모두의 손에 달려 있다.

"이것은 한 사건의 결말이 아니라 한 사건의 시작이다.
먹으로 쓴 거짓말이 절대 피로 써 놓은 진실을 감추지는 못할 것이다." (루쉰, 꽃 없는 장미)






영결식이 열린 지난 금요일, 노란 블라우스에 근조 리본을 달고 출근했다.
그 분께 대한 작은 예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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