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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애송시와 음악

눈 내리는 마을 - 김정란

by 릴라~ 2009. 12. 20.




      눈 내리는 마을 / 김정란


      일년 내내 눈 내리는 마을이 있어요.
      거기선 눈물을 흘릴 수 없지요.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가슴의 깊고 끈적거리는 물이
      희고 가벼운 날개로 바뀌어 버리거든요.

      그 마을의 하늘엔 늘 해 두 개 달 두 개가 떠 있어요.
      밤도 낮도 없어요 그리곤 반짝이는 눈이
      하루종일 조용히 조용히 내려요.
      눈은 쌓이지 않아요. 한 번 있었던 걸로 족하다는 듯
      바닥에 닿으면 아슴하게 사라져요.
      마을은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아요 그냥 조용해요.
      그 마을은 어떤 빛으로 빛나는데요.
      저절로 빛나는 건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어디서 빌려온 건데
      아무도 어디서 빌려왔는지 몰라요.
      아마 가슴의 상처 밑에 고여 있던 걸까.
      그 상처가 이상한 말의 통로라는 걸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거든요.
      그 통로를 통해서 그 마을 사람들이
      천 년 전과 천 년 뒤로 말을 보내고 받는다고들 하거든요.
      그 말들이 어쩌면 맥락과 맥락 사이에서 빛을 만들어낸 걸까.
      아주 먼 곳에서 시작된 빛을 받아서?
      아, 그래요. 아직 공식화된 건 아니구요.

      그 빛은 안에서 밖에서 빛나요.
      아주 이상한 빛이에요.
      그건 먹을 수 있어요.
      먹으면 배가 부르냐구요. 아뇨, 그렇진 않아요.
      그냥 진실에 가까워졌다는 느낌이 들죠.

      그 마을 사람들은 누구나 집 안에서 살면서 집 밖에서 산답니다.
      모두들 너무나 사랑해서 그래요.
      그 마을 사람들 살을 보셨어요?
      만지면 살짝 지워져요. 만지는 사람을 받아들이느라고 그래요.
      그리곤 다시 생겨나요. 다시 주기 위해서요.
      내가 당신 어깨에 머리를 올려놓으면
      내 머리에 맞게 당신 어깨가 안쪽으로 물러서요.
      그리곤 당신 팔이 내 허리를 안으면
      내 허리는 툭 잘려요. 소리까지 들리는 걸요.
      싸래기 눈 바삭바삭 소리내며 동구 밖에 찾아오는 것처럼

      그 마을에 살러 가시지 않을래요?
      흰 눈 종일 조용조용 내리고
      상처들이 비밀스럽게 편지를 주고받는 곳.
      당신도 나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상한 빛을 생산하는 기이한 발전기가 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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