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하얗게 쌓인 눈 때문에 칠흙같이 어둔 밤인데도 산이 밝다. 우리들 마음도 그 무엇보다 밝았다. 12월 31일 내내 폭설로 삼각봉 대피소까지만 갈 수 있다고 했는데, 밤 10시를 기해서 정상까지 등산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 무엇으로도 표현할 길 없는 고요한 산속, 쌓인 눈이 그 침묵의 깊이를 더해주는 시간이었다. 눈길은 끝없이 계속되었다.
이 산행을 위해 일박 이일의 시간을 내어 공항에서 날아온 아저씨는 요즘 경기가 하도 안 좋고 힘들어서 무언가 희망을 하나 건져보려고 한라산에 왔다고 했다. 동행한 또 한 분의 할아버지는 지금 이 나이에도 정상까지 갈 수 있을지 자신을 시험해 보고도 싶고, 자녀들 잘 되라는 기원도 하려고, 산행에 나섰다고 하셨다. 이 분들께 일출을 보기 위한 산행은 우리 마음 깊은 곳의 자연스러운 종교적 열망으로 보였다. 마음이 고운 이들이었다. 흰 눈 때문일까, 내 마음도 덩달아 경건해졌다. 세속은 저만치 물러나고, 그저 이 길을 걷는 것, 새해 첫날이 밝기를 기다리는 것만이 우리가 할 일이었다.
출발할 때는 넷이었는데 가면서 사람들을 더 만났다. 우리 걸음이 느려서인지 뒤에 출발한 이들이 더러 더러 우리를 앞서갔다. 산길을 오르며 열 몇 사람 만난 것 같다. 산행 초입부에 있는 계단이 완전히 얼어붙어서 가파른 빙판이 되어 있어서 장비를 갖추지 못한 몇 사람은 거기서 포기하고 돌아가고 말았다.
예전에 갔던 성판악 코스가 완만하고 지루했던데 반해 관음사 코스는 길이 오르락 내리락 다채로운데다가 큰 계곡을 가로지르는 웅장한 맛이 있는 길이었다. 게다가 내 생애 이런 눈을 본 적이 없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7,8000미터의 설산을 보았지만, 그것과 종류가 다른 아름다움이 한라에 있었다. 히말라야 설산의 웅장함이야 말할 필요도 없지만, 그곳은 그 어떤 생명체도 없는 바위산을 덮은 눈이었다면, 이곳 한라산은 온갖 풀과 나무들 위로 눈이 쌓여서 특별한 조각품을 만들고 있었고, 무언가 생명력에 빛나는 그런 아름다움이 있었다. 아무튼 그 밤, 한라산은 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 해도 전혀 지나침이 없었다.
네 시간여만에 삼각봉 대피소에 도착했다. 대피소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대피소를 가득 채운 사람들의 신비한 '열기' 때문에. 오십 명쯤? 백 명은 안 될 것 같다. 폭설로 산행이 어려울까봐 미리 저녁에 올라와서 여기서 밤새 죽치고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대부분의 등산객들이 성판악을 통해 백록담으로 향하기 때문에 이 밤에 험한 관음사 코스를 택한 사람은 알파니스트 스타일의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다. 그 수십 명의 사람들이 내뿜는 건강하고 야생적인 에너지에 감동했다. 미리 와 있던 이들이 따뜻한 차를 권한다.
걸어올 때는 추운 줄 몰랐는데, 대피소에 가만히 있으니 온몸에 부들부들 한기가 몰려온다. 나는 너무 추워서 계속 제자리 걸음을 했다. K는 앉은 채로 꾸벅꾸벅 존다. 그 때 한 노인장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70, 80대는 족히 되어 보였는데, 눈빛이 맑고 형형했다. 멋있는 아우라를 지녔다고 할까. 제주 분이라고 했다. 이 추위 속에 반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종아리가 진짜 무쇠 같다.
어쩜 이렇게 건강하시냐고 했더니, 대한민국 안 걸어본 데가 없다고 하셨다. 땅끝마을에서 통일 전망대까지, 부산에서 서울까지 우리 땅을' X' 자로 횡단했고, 또 남해안, 서해안, 동해안, 휴전선까지 'ㅁ' 자로도 걸었다고 했다. 제주도를 일주해 보라고, 특히 산록도로를 걸어보라 하셨다. 너무 좋다고. 대단한 어르신이었다.
왜 그렇게 걸으시냐고 여쭤 보았다.
"고통을 즐기는 거지."
"네?"
내가 다시 반문하자 보충 설명을 하셨다. 이 정도는 능히 이겨내어야 더 큰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작은 것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 생긴다고. 아, 여기서 또 한 명의 스승을 만나는구나 했다. 어르신의 말씀이 단비 같았다.
슬슬 출발 시간이 다가오는데 대피소 안 사람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아무도 일어서지 않는다. 듣자하니 대피소까지는 서울의 모 산악회에서 눈 위로 길을 내었다 한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정상까지는 그냥 눈밭이라고. 앞장 서면 힘드니까 다들 먼저 가기를 꺼려했던 것이다. 어떤 아주머니가 젊은 청년을 보고 삽 들고 먼저 가라고 농을 던졌다. 시간은 다 되어 가는데 다들 꼼짝 않고 있고 내가 주섬주섬 일어서니, 옆의 아저씨가 귀띰을 한다. 뒤에 묻어 가는 게 편하다고.
일출 시간은 다가오고 결국 성질 급한 이들이 하나 둘 먼저 출발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그 뒤를 따라 길을 나섰다. 다 큰 딸과 함께 온 아버지가 딸을 격려하며 말했다. "눈길 조근조근 밟으며 갑세."
눈이 무릎까지 쑥쑥 빠지는 길, 한 걸음 한 걸음이 힘들었다. 하지만 경치는 지금껏 온 길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장관이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눈은 더 많아졌다. 앞으로 평생 눈을 못 봐도 한이 없을 만큼 눈천지였다.
앞서 가는 사람의 등에 매달린 배낭을 보며 묵묵히 걷는데 문득 한 생각이 스친다. 눈길도 아름답지만, 그 위를 걸어가는 사람이 더욱 아름답다고. 이 순간 함께 걷고 있는 이들, 이름은 물론이고 아무 것도 모르지만, 그들과 깊은 동질감을 느꼈고, 그들의 뒷모습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다.
* 여행한 날. 2010.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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