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지금 여기 이 마음'
'나눔의 장'의 명심문이다. 지난 겨울부터 올 여름까지 어쩌다보니 정토회에서 열고 있는 세 개의 장 - 깨달음의 장, 나눔의 장, 명상수련-에 모두 참가하게 되었다. 모태 신앙-가톨릭-을 두고 잠깐 불교와 접속한 셈인데 그 '다름' 속에서, '다름'을 통해 배운 것이 참 많았다. 앞으로의 실천은 내 몫이지만.
'깨달음의 장'이 고착된 생각을 탁탁 깨트리는 과정으로서 인식론적인 접근법을 쓴다면, 나눔의 장은 전혀 달랐다. 그래서 처음엔 적응이 힘들었다. 타인의 이야기에 대한 자신의 반응 방식을 깨닫고 자신과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도중에 몹시 지루하기도 했으며 어디로 가는지 방향이 모호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끝나고 나니 참 좋았다. 내가 한동안 '머리'로만 살아왔구나 하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고, 4박 5일 동안 들었던 사람들의 깊고 소중한, 참으로 아픈 이야기들이 내 마음을 부드럽게 열어주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평소에 내가 잘 인정하지 못했던 감정들을 경험하고 인정하게 되었다. 나 역시 시기하고 질투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그런 감정들을 유치하다고 억압했던 것 같다. 억압되어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그 감정들이 오히려 마음의 짐이 되어 마음을 무겁게 했던 것 같다. 아, 내가 질투하는구나, 이렇게 받아들이면 금방 사라질 마음인데 말이다. 머리로는 괜찮아, 별 일 아니야, 하며 딱 잘랐지만 마음은 힘들어한 일들도 많았던 것 같다. 아, 내가 힘들어하는구나, 그 마음을 받아주면 되는데, 별 일 아닌데 왜 이러니 하면서 오히려 자신을 공격한 일도 있었다. 자기 마음을 받아 줄 때, 우리는 감정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객관적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생각과 마음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둘이 꼭 같지는 않다. 생각은 머리로 하지만 우리 마음은 느낌의 세계에 산다. 그 느낌을 받아주면 되는데, 나는 늘 생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데 골몰한 것 같다. 우리 마음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솔직한 느낌을 수용해주기를 바란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그간 느낌, 소리, 감성의 세계에서 참 멀어졌구나 했다. 멀어진 그만큼 세상은 딱딱하고 판에 박힌 듯이 다가왔던 것 같다. 감성을 잃었기에 일상의 생생한 맛과 기쁨이 사라지고 삶이 공허해진 건 아닌지. 행복은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지금 여기 이 마음을 느낄 수 있는 데서 오는 건 아닌지. 한때는 놀랄 만큼 감성이 풍부했는데, 언제 이렇게 마음이 딱딱해진 걸까.
부부 관계에서 빚어지는 온갖 갈등과 밖에선 차마 이야기 못할 고통들을 며칠간 들었는데, 관심 가는 주제가 아니어서 잘 듣다가도 좀 지루해하곤 했었다. 그러면서 내가 그냥 마음을 편히 내려놓고 이야기를 듣는 게 아니라, 나와 코드가 맞는 이야기만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코드가 맞는다는 건 불교식으론 업식이 비슷한 건데, 내가 관심 있고 듣고 싶은 이야기만 찾다 보면 내 삶의 영역이 매우 협소해질 수 있겠구나 했다. 가족간의 복잡한 인간 관계와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사는 나로서는 범부중생의 삶을 좀더 가깝게 이해하는 좋은 기회도 되었다. 모인 24분이 저마다 다 달랐고, 그 '다름'이 참 소중하게 여겨졌다. 관용이란 그런 것이겠구나. 상대방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겠구나 했다. 나눔의 장에서 '관용'을 배운 것 같다. 물론 실천은 잘 안되더라. 어제도 지인들을 만났는데 내 관심 밖의 이야기에선 절로 집중력이 떨어지더라는...^^;
모임 안내자인 묘덕 법사님은 참 부드러운 분이셨는데, 헤어질 때 내게 '장미' 같은 사람이라고 하셨다. 그냥 흘려 들었는데, 돌아와 생각하니 혹시 내게 '가시'가 있다는 말인가, 싶기도 했다. 왜 장미 같다 하셨을까.
삶의 온갖 시고 달고 쓰고 맵고 시원한 맛을 골고루 다 음미하고자 했는데, 내가 자신에게서 발견한 건 닫힌 가슴과 부서진 심장이었다... 사랑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남들도 다 그렇지 않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지만, 그게 정상인 건 아니다. 우리는 지금보다 더 온전한 가슴으로 살 수 있는 힘이 있으므로. '나눔의 장'은 그 부서진 마음을 내게 일깨워준 것 같다. 이 삶을 낱낱이 탐험하려면 보다 열린 가슴과 튼튼한 심장이 필요하다는 것을.
문경에서 보낼 때, 넷째 날인가, 저녁 하늘에 걸린 커다란 무지개를 보았다. 무지개를 본 게 그 얼마만인지... 대청 마루에 앉아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여기 와서 이런 좋은 선물까지 받아가는구나 하면서. 몇몇 뼈아픈 실패들이 있지만, 아직 삶은 끝나지 않았고, 우리의 여행도 끝나지 않았다. 바라는 대로 됨에 감사하고, 바라는 대로 되지 않음에도 감사하며, 이 여행을 계속해야겠다.
"오직지금여기이마음"
'나눔의 장'의 명심문이다. 지난 겨울부터 올 여름까지 어쩌다보니 정토회에서 열고 있는 세 개의 장 - 깨달음의 장, 나눔의 장, 명상수련-에 모두 참가하게 되었다. 모태 신앙-가톨릭-을 두고 잠깐 불교와 접속한 셈인데 그 '다름' 속에서, '다름'을 통해 배운 것이 참 많았다. 앞으로의 실천은 내 몫이지만.
'깨달음의 장'이 고착된 생각을 탁탁 깨트리는 과정으로서 인식론적인 접근법을 쓴다면, 나눔의 장은 전혀 달랐다. 그래서 처음엔 적응이 힘들었다. 타인의 이야기에 대한 자신의 반응 방식을 깨닫고 자신과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도중에 몹시 지루하기도 했으며 어디로 가는지 방향이 모호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끝나고 나니 참 좋았다. 내가 한동안 '머리'로만 살아왔구나 하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고, 4박 5일 동안 들었던 사람들의 깊고 소중한, 참으로 아픈 이야기들이 내 마음을 부드럽게 열어주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평소에 내가 잘 인정하지 못했던 감정들을 경험하고 인정하게 되었다. 나 역시 시기하고 질투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그런 감정들을 유치하다고 억압했던 것 같다. 억압되어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그 감정들이 오히려 마음의 짐이 되어 마음을 무겁게 했던 것 같다. 아, 내가 질투하는구나, 이렇게 받아들이면 금방 사라질 마음인데 말이다. 머리로는 괜찮아, 별 일 아니야, 하며 딱 잘랐지만 마음은 힘들어한 일들도 많았던 것 같다. 아, 내가 힘들어하는구나, 그 마음을 받아주면 되는데, 별 일 아닌데 왜 이러니 하면서 오히려 자신을 공격한 일도 있었다. 자기 마음을 받아 줄 때, 우리는 감정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객관적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생각과 마음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둘이 꼭 같지는 않다. 생각은 머리로 하지만 우리 마음은 느낌의 세계에 산다. 그 느낌을 받아주면 되는데, 나는 늘 생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데 골몰한 것 같다. 우리 마음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솔직한 느낌을 수용해주기를 바란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그간 느낌, 소리, 감성의 세계에서 참 멀어졌구나 했다. 멀어진 그만큼 세상은 딱딱하고 판에 박힌 듯이 다가왔던 것 같다. 감성을 잃었기에 일상의 생생한 맛과 기쁨이 사라지고 삶이 공허해진 건 아닌지. 행복은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지금 여기 이 마음을 느낄 수 있는 데서 오는 건 아닌지. 한때는 놀랄 만큼 감성이 풍부했는데, 언제 이렇게 마음이 딱딱해진 걸까.
부부 관계에서 빚어지는 온갖 갈등과 밖에선 차마 이야기 못할 고통들을 며칠간 들었는데, 관심 가는 주제가 아니어서 잘 듣다가도 좀 지루해하곤 했었다. 그러면서 내가 그냥 마음을 편히 내려놓고 이야기를 듣는 게 아니라, 나와 코드가 맞는 이야기만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코드가 맞는다는 건 불교식으론 업식이 비슷한 건데, 내가 관심 있고 듣고 싶은 이야기만 찾다 보면 내 삶의 영역이 매우 협소해질 수 있겠구나 했다. 가족간의 복잡한 인간 관계와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사는 나로서는 범부중생의 삶을 좀더 가깝게 이해하는 좋은 기회도 되었다. 모인 24분이 저마다 다 달랐고, 그 '다름'이 참 소중하게 여겨졌다. 관용이란 그런 것이겠구나. 상대방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겠구나 했다. 나눔의 장에서 '관용'을 배운 것 같다. 물론 실천은 잘 안되더라. 어제도 지인들을 만났는데 내 관심 밖의 이야기에선 절로 집중력이 떨어지더라는...^^;
모임 안내자인 묘덕 법사님은 참 부드러운 분이셨는데, 헤어질 때 내게 '장미' 같은 사람이라고 하셨다. 그냥 흘려 들었는데, 돌아와 생각하니 혹시 내게 '가시'가 있다는 말인가, 싶기도 했다. 왜 장미 같다 하셨을까.
삶의 온갖 시고 달고 쓰고 맵고 시원한 맛을 골고루 다 음미하고자 했는데, 내가 자신에게서 발견한 건 닫힌 가슴과 부서진 심장이었다... 사랑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남들도 다 그렇지 않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지만, 그게 정상인 건 아니다. 우리는 지금보다 더 온전한 가슴으로 살 수 있는 힘이 있으므로. '나눔의 장'은 그 부서진 마음을 내게 일깨워준 것 같다. 이 삶을 낱낱이 탐험하려면 보다 열린 가슴과 튼튼한 심장이 필요하다는 것을.
문경에서 보낼 때, 넷째 날인가, 저녁 하늘에 걸린 커다란 무지개를 보았다. 무지개를 본 게 그 얼마만인지... 대청 마루에 앉아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여기 와서 이런 좋은 선물까지 받아가는구나 하면서. 몇몇 뼈아픈 실패들이 있지만, 아직 삶은 끝나지 않았고, 우리의 여행도 끝나지 않았다. 바라는 대로 됨에 감사하고, 바라는 대로 되지 않음에도 감사하며, 이 여행을 계속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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