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본 냥냥군, 늘 그랬듯이 비관적인 전망만 산더미처럼 늘어놓고 갔다.
냥 :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하고 싶은 말을 맘대로 하고 그래서 자유를 누리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지만 현실 세계는 여전히 견고하거든. 진짜 자유는 실물 세계를 바꾸는 데 있는데, 웹상의 자유에만 몰두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허공에 붕 뜬 셈이지. 권력자들이 진짜 두려워하는 건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고 광장이야. 사람들이 거리로 몰려 나오는 걸 가장 두려워 해.
나 : 그래, 우리 근대사는 사실 광장이 만들어온 역사인데. 그 시절엔 인터넷이 없어도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어. 지금은?
냥 : 각자 컴퓨터 앞에 앉아서 세상을 보고 있지.
나 : 그래. 인터넷이 양적으론 굉장히 다양해졌지만, 권위 있는 목소리가 없다는 게 문제야. 정말 믿을 수 있는 언론, 질 높은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그런 언론이 없는 점이 아쉬워.
대중을 이끄는 지식인이 필요한데, 그 지식인의 역할을 기꺼이 맡으려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어. 대중이 그들을 인정하지도, 따르지도 않고. 이 거대해진 시스템을 운용해 갈 수 있는 현명한 사람들이 필요한데, 그러한 사람들을 적재적소에 보내지 않는 한 사회엔 희망이 없어 보여. 지난 정부와 지금 정부를 비교하면 알 수 있듯이. 대중이 각자 자기 역할을 해야 하지만 사회가 위험에 처하지 않기 위해선 지식인의 역할이 중요해.
박영숙 자서전을 보니까 이휘호 여사 등 일군의 신여성들이 나오더군. 박정희 시대 때 그들 남편은 다 감옥에 있었고 함께 투쟁하며 그 시절을 통과했어. 그리고 70년대 대학을 다니며 박정희 군사 정권과 싸워온 사람들이 있었고 80년대 대학을 다니고 87년을 낳은 세대가 있고. 그 시절 운동권들은 서로 다 아는 사람들이더라구. 공지영, 천호선 뭐 이런 사람들도 다 알고. 그런데, 우리 세대(93학번) 이후로부터 그런 게 없어졌어. 그룹으로 존재하던 어떤 세력이 사라진 거지. 다들 뿔뿔이 흩어졌어.
냥 : 학생회가 와해되면서 그렇게 되었을 거야. 내 세대(98학번)랑 지금 이십대도 굉장히 달라. 우리 나라 페미니즘이 언제 무너진 줄 알아? 90년대 그렇게 왕성하던 것이 2000년대에 들어와 갑자기 무너졌어. 그 짧은 사이 법 개정을 비롯해 많은 것을 얻어내었는데..
나 : 그러고보니 내가 학교 다닐 때도 여성학 강좌가 붐이었어. 수백 명이 듣는 대단위 강좌였어. 그 때가 페미니즘이 대중화되던 무렵이었던 것 같다. 결혼은 촌스럽게까지 여겨졌지. 그런데 졸업하고 나니 세상이 바뀌었어.
냥 : IMF가 결정타를 날린 거지. 여성들이 남녀가 동등함을 외치며 스스로의 힘으로 무엇을 하기보다는 남자를 강자로 인정하고 그 어깨 위에 올라타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한 거야. 일종의 생존전략이야. IMF가 사회에 끼친 영향이 너무 커. 전에는 없던 구조조정이란 개념이 생기고, 사람들은 언제 잘릴 지 몰라 불안하고, 자영업은 몰락하고, 그 사이에 대기업이 유통을 비롯한 많은 걸 장악해 버렸지. 중산층은 무너지고...
나 : 예전엔 괜찮은 학교 나오면 그리 어렵지 않게 진출할 수 있는 영역들이 이제 넘을 수 없는 벽이 되었어. 자격을 갖춘 사람은 너무 많은데 그들을 받아줄 수 있는 자리는 없어. 스펙을 갖춘 사람은 많아지는데 뛰어난 사람은 드물어지는 것 같아. 이 소모적인 경쟁이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하는 거니?
냥 : 내 생각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통일'밖에 없어. 생산력은 높아지는데 그 생산력을 받아줄 수 있는 시장은 여전히 좁으니까. 대한민국이 갖고 있는 파이가 너무 작아. 그렇다면 작은 파이라도 나누자, 일자리 나누기 등이 이야기되는데, 일자리를 나누는 대신 사회가 다른 혜택을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존의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반발하게 되고,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진입 장벽을 더 높이 쌓기 때문에 문제가 해결이 안 돼.
영국이 왜 식민지 개척에 나섰겠어. 영국 귀족 중 상속권이 없는 차남, 3남들이 대부분 제 3세계에 나가서 부를 일구었어. 제국주의가 그냥 나온 게 아니지. 물론 옳은 건 아니지만. 암튼 당시는 그들을 받아줄 수 있는 시장이 존재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지. 그래서 답은 통일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중국, 러시아와 육로로 연결되면 숨통이 트일 수 있어. 우리 나라가 한 면이 아니라 두 면을 대륙에 접하고 있다고 생각해 봐. 많이 다를 걸? 물론 그 경우엔 옛날에 중국에 흡수되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나 : 그럼 통일되기 전까진 그닥 희망이 없단 얘기네?
냥 : 통일 이후에도 문제가 많고. 북한 주민들이 2등 시민이 될 가능성이 높으니까. 대한민국의 방향을 끌어갈 인물이 과연 나올 수 있을까? 나는 회의적이야. 교육, 양극화 같은 문제들도 100년이 지나도 해결되기 어려울 거야. 자영업도 특화된 몇몇 분야 말고는 살아남기 힘들고. 그걸 애들이 알기 때문에 죽어라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데, 다른 대안이 없어서 그래.
나 : 우리 나라 자본주의는 왜 이리 천박한 거니. 세상 어디를 여행해도 그 사회가 천박하단 느낌은 잘 못 받았어. 네팔도, 인도네시아도, 인도도 천박하진 않았어. 그런데 한국에선 뭔가 삶이 척박하고 천박해. 경쟁 구조 때문일까, 오래된 것에서 나오는 향기, 그런게 없어서일까.
냥 : 자본주의 자체가 천박한 게 아니라, 우리 사회가 천박하니까 우리의 자본주의도 천박해진 거지. 지금 우리 나라를 보면 몇몇 법과 제도가 없다면 완전히 정글이야. 야생의 생태계라고.
나 : 오죽하면 출산률이 세계 최저일까 싶다. 그만큼 살기 힘들단 얘기겠지?
냥 : 출산 자체가 일종의 '소비' 행위가 되었거든. 하나에 몇 억 이런 식으로. 그래서 사람들이 감히 꿈을 못 꾸지.
나 : 그래, 출산이야말로 어쩌면 가장 생산적인 일인데....
냥 : 지금 우리 사회는 어릴 땐 무엇을 해야 하고, 그 다음엔 무엇, 또 그 다음엔 무엇, 이렇게 꼭 해야 할 것들이 좍 기다리고 있고, 방황할 여유조차 없어. 이런 구조니 사람들이 다른 생각을 못 하는 거지. 굉장히 많은 것들이 결핍된 사회야.
나 : 음,, 내가 이 사회를 살면서 뭔가 꼭 있어야 할 것이 없다는 느낌을 줄곧 받거든. 그걸 뭐라고 할 지 꼭 집어 말을 못하겠어. 중요한 정신적인 어떤 게 빠진 것 같아. 예전엔 안 그랬어. 해방 공간의 사람들이 남긴 말과 글을 봐. 요새 사람들보다 훨씬 똑똑하다구. 게다가 그 시절엔 좌파도 지금보다 훨씬 많았어. 대구에서도 이승만과 조만식이 비슷한 표를 얻었거든.
냥 : 우리 사회가 방향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 친일 청산이 안 된 것도 문제가 될 테고. 한의 정서 이런 것의 정체도 따져볼 필요가 있어.
나 : 그래. 박정희 시절엔 5개년 계획 같은 거라도 있었으니까. 물론 그 때가 좋다는 건 결코 아니고. 다만 그 시절엔 다같이 경제 개발에 참여한다는 그런 분위기가 있었겠지? 민주화 운동하는 사람들은 또 그들의 지향점이 있었을 테고. 그 다음 이슈는 당연히 통일일 텐데, 이건 뭐, 점점 갈 길이 머니... 이처럼 아무 준비도 발언도 하지 않는다는 게 놀라워.
베트남이 우리보다 못 살지만 그 사회가 가끔 부럽기도 해. 해방될 때 호찌민의 베트민이 나라를 접수할 수 있었으니까. 왜 우리는 그렇게 못 했을까. 우리 독립운동가들, 개인적으로 내가 가장 존경하는 이들이지만 세계 정세에 대처할 때 호찌민이나 간디 만큼의 역량을 가지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냥 : 우리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 차이가 있어. 베트남의 경우는 프랑스, 미국, 일본을 지배자로 겪으면서 운동을 통합하고 정리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거든. 우리랑은 상황이 많이 다르지.
나 : 그래. 같은 식민지라도 프랑스 식민지냐 일본 식민지냐 이런 것도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있겠지. 암튼 호찌민 한 사람의 힘이 그 사회를 오백 년 천 년은 지탱할 힘을 준 것 같아. 베트남엔 권력 투쟁도 없었다잖아. 그리고 세계 최강대국 미국과 싸워 이겼다는 경험은 두고두고 그들 마음에 흔적을 남길 것 같아. 우리에겐 없는 경험이야.
우리에겐 뭔가 결핍되어 있는데.... 자부심인지, 아니면 승리의 경험인지.... 근대사를 제대로 가르쳐야 하는 건지, 아니면 고대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인지.... 민족의 뿌리를 몰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냥 : 요즘 애들은 어때?
나 : 이상해. 좋은 애들도 많지만, 특이한 애들이 자꾸 생겨나. 예컨대 1교시부터 6교시까지 내내 책상에서 손거울만 들여다보는 여학생들. 반마다 다 있어. 그리고 감정 조절이 안 되는 애들. 조금만 건드려도 폭발하고 소리 지르는... 애들도 스트레스가 많다는 얘기지. 그리고 확실히 산만해. 무언가에 몰입하는 걸 힘들어 해. 이 아이들이 자라면서 타인을 배려한다는 건 좀 어려울 것 같다. 아이들 자신의 삶도 힘드니까. 암튼 지금의 학교 체제와 이 아이들은 맞지 않은데, 여기도 대안이 별로 없어.
냥 : 흠, 전망이 밝진 않은데?
나 : 68혁명은 부모들이 가진 경제적 부를 거부하면서 시작되었거든. 우리 아이들은 경제적 풍요로움과 정신적 빈곤 속에서 자라는 세대인데, 이들이 자라서 세상을 향해 무엇을 요구할 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와 달리 대중매체의 영향을 어릴 때부터 너무 크게 받아온 세대고, 학원에 길들여진 세대라서... 예측하기 어려워. 아마도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겠지?
냥 : 그렇군. 지금 매체에 드러난 삶의 모습은 너무 화려한데, 진짜 삶은 그렇지 않잖아? 지금 이십대를 보면 자기만은 예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빨리 환상을 깰수록 좋지. 내 말은, 개인이 조직을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거야. 통큰치킨 같은 걸 봐도 그렇고, 대기업이 다 먹는 구조야.
나 : 마쓰모토 하지메 같은 사람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
냥 : 일본이라서 가능한 게 아닐까 싶어. 우리 나라에서 그런 걸 하는 애는 강의석 정도인데, 전혀 지지를 못 얻고 손가락질 당하잖아?
나 : 그렇긴 하네. 그런데 386세대를 보면, 물론 가까이서 직접 느낀 건 아니지만, 그들의 말과 글을 보면 사회에 대해 적어도 우리보다는 낙관적이란 걸 알 수 있어. 그들이 함께 운동했던 사람들과 계속 의사소통 그룹을 이루고 있고, 그것에서 힘을 얻기 때문일까. 암튼 내 세대와는 다른 것 같애.
냥 : 당연히 그렇지. 그들은 87년 항쟁으로 세상을 한번 바꾸어봤고 이후 권력도 잡아봤고 IMF 전까지 고도 성장의 열매도 맛보았거든. 문제는 이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나서 진입장벽을 높이 치는 바람에 그 때문에 이십대가 보수화되었다는 말도 있어. 우석훈이 세대간의 경제적 갈등을 잘 지적하고 있잖아.
나 : 굉장히 역설적인 세대네. 민주화에선 공이 크지만, 다른 면에선 또 다르게 볼 수 있는. 우리 사회의 변화가 급격해서 그런가...
냥 : 노동의 노예화가 더 급속하게 진행될 거야. 맑스가 말한 자기 노동으로부터, 생산 수단으로부터의 소외 말이야. 우리가 하는 업무가 웹으로 일원화되는 것도 문제가 있어. 우리 자신의 노력과는 점점 상관 없게 되거든.
나 : 학교의 NEIS 시스템만 해도 그렇다. 성적 처리부터 모든 걸 웹에 올려서 하게 돼어 있거든. 그 모든 게 교육청으로 일괄 연결되어 있고. 예전 CS 시스템은 학교 단위에서 사용하는 프로그램일 뿐이었는데. NEIS는 삼성이 만들었어.
냥 : 그 어마어마한 정보를 누가 쥐고 있는지 생각해 봐. 그리고 웹상에 올려지는 일은 개인이 열심히 해도 그 성과를 느낄 수 없으니까 노동의 소외가 심해지지.
나 : 조직 분위기만 해도 그래. 십년 전에는 사람들이 다들 조금씩 흩어져 있고 저마다 자기 일을 하고 있었거든. 지금처럼 교장의 획일적인 통제 아래에 있지 않았다구. 예전엔 교장이 내가 국어 선생인지 사회 선생인지도 계속 헛갈려하고 조직을 장악하고 있지 않았어. 우리 조직은 다소 느슨한 조직이었어. 그런데 요즘은 완전 체계적인, 꽉 짜여진 조직이야. 교장이 일거수 일투족까지 다 알고 있어. 몇 년 전부터 뭔가 힘들어지기 시작했는데, 요 이삼 년은 더욱 그래. 딱히 힘든 일이 있는 게 아니라 정신적으로 힘들어. 예전엔 더 힘든 것들도 많았는데, 그건 과제 자체의 힘듦에서 나온 것이고 지금처럼 내 정신을 삭막하게 하진 않았어. 노동 조건이 달라지고 있어. 푸코가 현대 사회를 분석한 게 오늘날 이렇게 딱 맞아떨어질 줄이야. 완전 판옵티콘이야.
냥 : 교원 평가가 불을 질렀을 거야. 그거 언젠가 발목을 잡을 거야. 지금 학생 수가 줄어들고 정부 재정은 열악해지고, 재정을 줄일 수 있는 젤 쉬운 방법이 뭐라고 생각해?
나 : 사람을 자르는 거지.
냥 : 그래, 그러니 누나도 중간은 하도록 노력해. 아니면 학교를 나와서 뭘 할지 대책을 마련해 놓거나.
나 : 저번 교감이 '미흡'으로 한 줄을 세워 놓았더군. 교과서 선정 문제로 부딪혀서겠지. 7교시 방과후 수업 문제도 그렇고. 다 합하면 중간쯤 나왔을 거야. 한 십 년은 어떻게 버티지 않겠어?
냥 : 그럼, 다행이구.
나 : 이 구조가 변할 가능성은 없는 거냐.
냥 : 개인이 거대 자본을 절대 못 이기니까 불가능하다고 봐야지. 브라질처럼 외국에서 유입되는 자본에 0.1%의 세금을 부과한다거나...그러면 투기 자본이 함부로 못 들어오니까. 또 달러 기축통화제가 무너지고 금 태환제가 부활한다거나 그런 것들을 통해 뭔가 이루어질 수도 있겠지만..... 쉽진 않고.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봐. 기술 경쟁이 어디까지 가능할 것 같아? 개발될 만한 건 다 개발되었다구. 문명이 쇠퇴하는 길만 남았어.
나 : 하긴... 모든 문명은 가장 번영했을 때가 쇠퇴를 앞둔 시점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지금이 미국의 힘이 가장 강할 때니까 내리막길만 남았네. 당분간은 더 버티겠지만. 우리 문명이 결국 몰락할 거란 이야기니?
냥 : 그럴 가능성이 높지. 지금 모든 게 디지털로 바뀌고 있는데, 우리 신체는 아날로그 즉 병렬 구조라구. 물론 뇌가 전체를 통제하긴 하지만 한 쪽에 문제가 생기면 다른 쪽이 대신 그 역할을 할 수 있어. 디지털은 직렬이거든. 하나가 무너지면 다 무너지게 돼 있어.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한번 지켜봐. 전기 하나만 나가도 난리가 날 걸?
나 : 넌 개인의 실천은 별 의미가 없다고 보는구나.
냥 : 한계가 분명하니까. 자본을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이 자본의 편에 있으니, 권력이 자본에게 넘어간 이상 어떻게 제도와 조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어?
나 : 일리히가 중요한 건 제도도 의식도 아니고 제도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의 변화라 했는데. 제도를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를 통해 무언가를 만들어갈 수 있을 거라는. 그러고보니 학자들이 짚은 이야기가 여기까지야. 현대 사회의 문제점은 분석했지만 아직 대안은 없는 것 같네.
냥 : 대안이 없지.
나 : 어쨌든 지금 이 시대는 유유자적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닌 것 같아. 환경 문제도 그렇고 기아, 전쟁 등 인류가 너무 많은 고통을 이 세상에 풀어놓았어. 구제역만 해도 그래. 어떻게 수십만 마리를 살처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거지? 그래서 누구나 자기 자리에서 무언가를, 아주 작은 일이라도 해야 하는 시대가 아닐까 싶어. 우리 모두가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다구.
냥 : 모두의 문제는 그 누구의 문제도 아니란 말이 있지. 지금 문제가 그런 종류의 문제이기 때문에, 나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더욱 행동에 나서지 않는 걸 거야. '루시퍼 원리' 한번 읽어봐.
나 : 이 세계 속에서 인간으로 산다는 게 대체 뭘까, 갑자기 회의가 드네. 공룡도 그랬고 과거 지구에서 살던 수많은 생명체들이 멸종되고 사라졌잖아. 우리 문명도 그렇게 될까?
냥 : 석탄기라고 알지? 당시에 살던 모든 게 다 죽었거든. 그게 얼마나 많이 묻혔으면 지금 석탄과 석유를 그렇게 캐도 또 나오겠어?
나 : 그래도 동서양의 많은 예언서들은 이 문명이 끝이 아니라 우리 시대에 아주 새로운 문명이 꽃필거라고 했잖아?
냥 : 지금 있는 것들이 다 끝장난 다음이 아닐까? 프리메이슨이라고 알지? 이건 음모론쪽의 이야기긴 한데 그들이 지구의 인구를 줄이기 위해 무슨 짓을 벌일거라는 이야기도 있어. 전쟁으론 많은 사람들을 죽일 수 없잖아? 작년 신종플루 때처럼 백신 같은 걸 통해 바이러스를 퍼뜨릴 거란 말도 있어.
나 : 설마 그렇겠니. 그건 넘 최악의 시나리오다. 말 그대로 음모론이네.
냥 : 음모론쪽 이야기 중에 역사적 사실로 확인된 것도 꽤 많거든.
나 : 야, 쫌 밝은 이야기를 좀 해봐. 넘 우울하잖아.
냥 : 2012년에 지구 망한다니까. 아니, 망한다기보다는 무슨 일이 터질 거야. 작년 금융 위기 같은.
나 : 과연 그럴까. 한번 두고보자구. 지금은 어쩌면 단순한 실천이 필요한지도 몰라. 배고픈 사람은 먹이고 아픈 사람은 고치고 육식을 줄이고 환경을 살리고...... 일리히의 '절제의 사회'란 책 제목이 마음에 들더라.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서 '절제'가 필요한 게 아닌가 싶어. 이 세계에 대해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룰이 필요한 것 같애.
냥 : 그래. 현대 사회엔 윤리가 실종되었어. 비판도 점점 사라지고.
나 : 모든 게 가능하다는 현대 사회가 주입하는 환상을 버리고 저마다의 구체적 삶의 자리, 먹고 자고 마시는 삶의 자리로 돌아와야 할 것 같아. 그리고 절제를 실천해야지 싶어. 소비적 삶의 방식을 조금씩 바꿔가는 거지. 유치한 얘기일지도 모르지만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아.
.....................
3분의 1쯤 옮긴 것 같다. 치면서 이게 다 기억나는 게 신기했다.
이 지구별에서 인류의 일원으로, 인간 종족으로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인류가 사라져도 우주는 변함없을 텐데..... 어릴 적엔 어른이 되면 많은 것을 알게 되리라 생각했다. 모든 것이 분명해지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살아갈수록 모르는 것은 많아지고, 질문만 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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