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본가에서 빈둥거리면서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본 다큐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자연 경관이 낯이 익어서 얀 베르트랑이 아닐까 했는데, 그가 촬영한 다큐가 맞았다. 그의 항공 사진은 매우 특별해서 누구나 금새 알아볼 수 있다.
저 높은 곳에서 땅을 내려다보면 어떤 기분일까. 특히 얀 베르트랑처럼 수십 년을 하늘 위에서 이 지구 구석구석을 관찰해온 사람이라면. 그곳에서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많은 것들이 보일 것이다. 단순히 풍경을 넘어서 이 세상과 우리의 삶을 다른 각도로 보는 시야를 열어줄 것 같다.
예전에 얀의 사진집을 보면서 이 지상의 숨 막힐 듯 아름다운 광경에 감탄했는데, 이 다큐에선 그보다 몇 배는 더 진한 감동을 느꼈다. HD 다큐를 큰 화면으로 보면서 광활한 장면들에 빠져들어서기도 하지만, 그가 이 모든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관점이 분명히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아직 남아 있는 원초적인 자연, 이 우주를 통틀어 가장 아름다울 것 같은 살아있는 자연과 그 속을 뛰놀고 있는 동물들, 자연 만큼이나 다양한 전통적 삶의 방식..... 그리고 아주 거대한 산업 문명의 현장들, 석유 시추와 발전소, 공업화된 도시, 회색빛 공기..... 인간이 만든 장벽들, 예루살렘 장벽과 38선....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갈라진 부유한 마을과 빈민촌의 모습, 아프리카 난민촌, 물을 구하기 위해 먼 길을 오가는 사람들.... 70억(?) 인류의 삶과 자연과 동물들이 전체적인 이미지로 다가왔다.
그는 특히 에너지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였는데, 그것은 모든 인류가 그것에 의지해 삶을 지탱해가기 때문이고 그것을 자연으로부터 얻고 있으며 그 때문에 자연을 파괴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에너지야말로 인구의 급증, 산업화된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 사이의 건널 수 없는 삶의 격차, 산업화로 인한 기후 변화, 자연 재해와 참상, 이 모든 것과 가장 직접적으로 관련된 문제였다.
다큐 말미에 그는 페트라를 비롯해서 지금은 사라진 문명을 보여준다. 그 문명을 만들었던 사람들은 그것이 멸망하리라고는 감히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우리 문명 역시 그와 같은 위기에 처해 있다고. 그리고 수백만이 모이는 메카와 가톨릭 집회 장소로 카메라를 돌린다. 종교적 목적이 아니라 이 자연을 살리기 위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모이면 얼마나 좋겠냐고.
이 지구 위에서 일어나는 일들, 수많은 것들이 맺고 있는 연관 관계가 물 흐르듯 흘러가는 영상으로 재현되었다. 이 모든 것을 하늘에서 촬영한 영상 하나로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장면 장면이 정말 눈부시게 아름다웠는데, 작가가 해 뜰 무렵이나 해질 무렵에 주로 촬영을 해서 그런 것 같다. 그는 사진은 빛이라고 했는데, 주로 역광을 활용해서 풍경과 사물이 아주 선명하게 드러나게 촬영을 했다. 끝없는 모래 사막 위로 낙타 떼가 지나가는 장면, 라자스탄 지방에서 붉은 사리를 입은 여인이 사막 위를 하늘하늘 걸어가는 장면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어획량의 70%를 차지하는 대형 어선과 그와는 경쟁 자체가 되지 않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고기를 잡는 아프리카 사람들, 그 빛나는 저녁 해변에서 하루 고기잡이를 마치던 사람들의 모습은 가슴 저미게 아름다웠다. 아직 남아 있는 자연 속을 뛰어가는 동물들의 모습에선 아름다움과 동시에 깊은 슬픔과 연민을 느꼈다. 앞으로 어쩌면 그들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르기에...
한 시간 반에 걸친 특별한 여행이었다. 앞에 조금 놓친 부분을 보고 싶어서 자료를 검색하니 유투브에 동영상이 있다. KBS에서 방영한 것과는 편집이 좀 다르다. KBS 방영본은 장면마다 나라 이름을 자막으로 깔아주어 이해가 편했고 성우 목소리도 아주 좋았다. 극장에서 볼 수 있으면 정말 굉장할 것 같다. 다큐 때문에 TV를 다시 살까 하는 생각도 든다.
http://www.youtube.com/watch?v=jqxENMKaeCU&feature=player_detailpage (유투브 영상)
- 자주 끊어져서 보기가 힘들다.
http://www.yannarthusbertrand.org/ (얀의 홈페이지)
http://www.ted.com/talks/lang/eng/yann_arthus_bertrand_captures_fragile_earth_in_wide_angle.html (얀의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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