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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일상을 적다

욕망과 결핍

by 릴라~ 2011. 4. 10.

                                                                                                                           

엊저녁의 대화.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고 있으므로, 예술가들은 내적으로 좀 더 풍요롭고 자신의 일에 대한 만족도도 더 높을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그분들도 자신의 작업만으로는 끝내 다 채워지지 않는 무엇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다. 어느 한 분이 그래서 뒤늦게 결혼을 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주위에서 결혼도 자녀도 30정도밖에 채워주지 못하더라고, 생계만 힘들어지니 안 하는게 낫다는 주장과 80 정도는 채워줄 수 있으므로 당장 해야 한다는 주장이 엇갈렸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자신의 결핍감을 채우기 위해 무언가를 한다면-그것이 결혼이든 그 무엇이든- 그것이 주는 만족감은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거라고. 채워도 채워도 허전한 그 내면을 파고들어가면 어린 시절의 심리적 결핍감이 자리하는 수가 많고, 그러한 종류의 결핍감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어떤 것으로 메꾸기 어렵기 때문이다. 당장은 채워져도 곧이어 새로운 결핍감이 찾아들 것이다. (그러한 결핍감이 다양한 종류의 열정을 이 세계에 가져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러한 개인사도 이 세계의 소중한 차이로 긍정할 수 있겠지만, 아무튼.)

현대철학자들은 결핍감에서 우러나는 욕망과 자기 안에서 넘쳐흐르는 욕망을 구분했다. 전자가 자신에게 부족한 조각을 채워서 완전해지려는 욕망이라면, 후자는 눈덩이가 굴러가면서 점점 커지듯이 작은 자기에서 더 큰 자기로 나아가는 운동 자체에서 완전함을 보고자 했다. 예컨대 불완전한 내가 무언가를 더 채워서 완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작은 눈사람이 (완전한) 큰 눈사람이 되어가는 과정 자체가 완전한 것이고 그 눈사람을 굴러가게 하는 힘이 욕망이라는 것이다.

후자의 맥락에서 볼 때 사랑은 나의 결핍에서 촉발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상대방에게 나누어주고자 하는 욕망에서 시작된다. 결핍에서 촉발된 사랑은 무의식이 강하게 작용하여 '한눈에 반하는' 수가 많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상대방이 자신을 더이상 채워주지 못할 때 그것은 쉽게 분노와 증오로 바뀐다. (한눈에 반하는 것과 한눈에 알아차리는 것은 같지 않다.)

자기 안에서 넘쳐흐르는 사랑은 상대방에게 특별한 무언가를,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경찰관이 교통 규칙을 지키라고 요구하듯이 생활을 위해 어떤 것을 요구할 수는 있지만, 상대방을 내 기쁨의 원천이나 구원자로 여기지 않는다. 자신을 진정으로 채워줄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임을 알기에 스스로 자신을 채워가면서 그 기쁨과 생기를 타인과 나누고자 할 뿐이다. 이 세상으로부터 너무 많은 것을 받았으므로 이 세상으로부터 무언가를 더 얻고자 하지 않는 사람. 다만 이 세상에 줄 것이 많은 사람.

우리는 이 세상으로부터 무엇을 얻고자 할까. 과연 얻을 것이 있기나 할까. 삶에서 무언가를 얻고자 할 때 결핍감과 상실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관점을 바꾸어 우리가 자신을 세상에 주고자 한다면 언제 어디에서나 '평온한 열정'을 경험할 수 있다. (우리가 받은 수많은 축복을 기억한다면 그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금껏 우리가 먹은 음식과 입은 옷과 받은 가르침... 온 우주가 우리 생명을 지탱하기 위해 쓰이고 있으며, 무수한 존재자들이 대가 없이 자신을 증여하고 있음을 기억한다면...)

'주는 능력'엔 우리 자신의 재능은 물론이고 인간적 품성 등 모든 것이 포함된다. 자신을 주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의 재능과 인간적 자질을 잘 쓰는 길을 찾을 것이다.  지금은 돌아가셨으나 잠시 인연이 닿았던 한 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주 작은' 재능이라도 세상을 위해 쓰는 것,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게 그거라고. 이 세상에 우리들이 저마다의 독특한 개성과 능력과 차이들을 풀어놓는 것.

자신의 필요를 채울 때에도 자신을 특별대접하지도, 무시하지도 않는다. 나의 기쁨이나 슬픔도 이 세상 수많은 삶의 조각의 한 단면으로서 의미를 지니고 있을 뿐, 남다른 특별한 의미를 지닌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세상 수많은 사람들을 돌보듯이 자신을 정성껏 돌보고, 세상 수많은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듯이 자신을 채우는 것으로 충분하다. 

사랑이란 그런 것일 게다. 우리 자신을 주고 또 주고, 우리들의 재능을 쓰고 또 쓰고, 우리들의 기쁨을 늘리고 또 늘리는 것. 우리는 '내적 갈등'을 동반하지 않는 사랑을 상상하기 어렵지만, 자기 안에서 넘쳐나서 상대방에게 흘러가는 사랑 안에는 갈등도 불안도 두려움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일시적으로는 흔들릴 수 있지만 곧 평온함을 되찾을 수 있다. 집착을 가라앉혔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은 사람을 가장 건강하게 하는 행위이고, 가장 평화로운 투쟁의 방식이기도 하다.

때로는 소외되고 길을 잃고 우리 자신까지 잃어버리게도 되지만, 자신의 온전함을 믿는다면 언제나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자신의 짐을 덜어주고 자신을 해방할 수 있는 다른 방식을 찾을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있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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