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지를 알고 있어야만 여행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참된 여행은 그 행선지를 미지의 것으로 남기고 떠나는 데 묘미가 있다. (책에서)
긴 여행을 마쳤다. 결코 짧은 여행이 아니었다. 내 정신으로 하여금 이처럼 광활한 땅을 여행하게 해준 책이 있었던가. 지금 기억으로는 없는 것 같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의 묵직한 울림, 마치 시베리아를 횡단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책이다.
이 책의 백미는 3장과 4장에 있었다. 그간 나는 학교 교육만을 교육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고 삶 전체가 교육의 장이라고 여기고는 있었지만, 이 책을 읽고 내가 교육을 얼마나 좁게 또 피상적으로 생각해왔는지를 알게 되었다. 이 책이 주는 울림은 이 책이 담고 있는 세계의 넓이와 깊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가 동원하는 개념과 이미지들이 매우 탁월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저자는 세속계와 수도계, 그리고 교육계를 대조함으로써 우리가 잡아내고자 하는 교육의 세계를 조명하고 있다. 우리가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세속계의 존재 이유는 분명하며, 또한 세속계의 도전에 응하는 것도 그 나름의 가치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세속계만을 세상의 전부로 인식하고 살 때, 우리의 참된 인간적 가능성은 온전히 실현되지 않는다. 세속계는 사회적 적응을 너무 중시한 나머지 자유로운 인간성의 실험을 제한하여, 우리 안의 감추어진 보물을 탐색하는 것을 가로막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 주위에는 경험할 가치가 있는 수많은 종류의 풍요로운 수도계가 존재하고 또 생성하고 있으며, 이는 우리 자신의 선택에 따라서 충분히 체험할 수 있는 세계이다.
인류 역사에서 수도계는 교육에 의해 그 실재가 후대에 전해져 왔는데도 불구하고, 그 교육이라는 현상은 제대로 규명되지 못했다. 그래서 그 수도계의 높은 품위가 대중에게 보편화되는 데에는 일정 부분 한계가 뚜렷했다. 그래서 저자는 수도계의 매 단계마다 그리고 각 세대마다 이루어지는 교육의 고유한 구조와 규칙과 방식에 특별히 주목하여 ‘교육본위론’을 펼친다.
그리고 교육적인 삶이란 교육주체가 임의의 수도계를 소재로 상구교육과 하화교육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교육본위론에서는 교육이 중심이 되고 수도계는 그 수단이 된다.
수도계에서는 높은 품위일수록 더 가치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이 처한 현재의 위치를 고려하지 않고 모종의 일률적이고 절대적인 가치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있으나 교육은 현품에서 한 걸음 더 향상할 수 있는 여지를 찾고 그 책임을 완수하고자 한다. 교육적 시숙을 중시하여 특정한 품위의 성취보다는 그것을 성취해 나가는 각 단계에서의 충실한 교육적 체험을 보장한다.
수도계는 오류의 크기를 심각하게 문제 삼는 세계이지만 교육계는 오류와 불완전의 크기보다는 그것을 극복하고 줄여나가는 과정에 큰 비중을 두는 세계이다. 교육계에서는 우리가 불완전하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그것을 개선할 수 있는 특별한 체험을 허용하기에 불완전함이 오히려 축복이 된다.
한 품위가 완성되는 곳에서 교육은 끝나며 다른 한 품위가 형성되는 곳에서 교육은 다시 시작된다. 상구교육과 하화교육이 만나서 교육의 과정이 반복되는 가운데 나선형적인 상승이 이루어진다. 최종적인 품위란 없다. 현품은 늘 미품으로 개방되어 있다. 이렇게 매 단계마다 ‘회품’을 동반하는 교육적인 삶은 저자가 표현했듯이 20년을 살고도 100년을 체험하는 삶이다. 자연적 발달과 달리 참가자들의 주체적인 자기규제와 통제에 의해서 자신의 인간성을 실현시키고 그것을 의식적으로 깨닫게 되는 신나는 ‘놀이’이다.
이 책은 그러한 교육적 삶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저자가 보여주는 교육의 세계에 깊이 매혹되었고 감동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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