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회사에 상호평가 시스템이 도입된 지는 한 십 년 넘었나 그럴 거다. 일선학교에서는 작년부터 시행되었다. '학생 만족도조사'라는 타이틀을 달고서.
작년에 결과를 보고 많이 놀랐다. 수업에 못 따라오는 학생이 예상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수업에 대한 여론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몇몇 학생들이 주도한다. 조사가 있기 전엔 열의를 갖고 따르는, 눈에 띠는 학생들이 많아서 여론이 괜찮아 보였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13%의 학생들이 수업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었다(보통 이하의 반응이면 수업이 거의 의미 없다는 이야기). 한 반 40명에 5~6명 정도니 그럴 수 있겠다 싶기도 했다. 항목별 평균을 내면 긍정적 반응이 48%(매우 그렇다 18%, 그렇다 30%), 보통의 반응이 38%, 부정적 반응이 13%였다. 평균 점수가 학교 평균보다 약간 낮았다. (원래 학년말에 해야 하는데 그때 바쁘다고 1학기말에 시행한 게 문제긴 한데, 학년말에 했더라도 결과가 크게 달랐을 것 같진 않다.)
그러고보니 그간 내 수업을 좋아한 학생들은 대개 공부를 잘한 학생들이었다. 잘한 애들 중에서도 '글쓰기'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고. 중학교에 와서 처음 몇 년은 연극을 비롯해서 재미있고 다양한 활동을 풍성하게 했는데, 최근 몇 년은 글쓰기에 집중되어 있었다. 나 자신 그 사이 이십대에서 삼십대로 넘어가면서, 자잘한 활동들이 귀찮고 재미도 없어졌을 뿐 아니라, 국어교육의 본령이 텍스트 이해와 글쓰기가 아닌가 해서 자연스럽게 그 방향으로 흘러간 거였다. 일 년에 공책을 두 권 혹은 세 권 정도 썼다. 학생들이 상당히 좋은 글을 써내서 좋은 수업이라 생각했는데, 꽤 많은 학생들에게 딱딱하게 여겨진 것 같았다. 결과를 보고 그 생각이 들었다.
만족도 조사에는 개인 의견을 적을 수 있는 란이 있는데 많은 선생님들이 학생들이 남긴 '욕설'로 충격을 받았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들을 적어 놓았더란다. 이거 퇴직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교무실에서 말들이 오갔다. 내 경우 전체 약 200명의 학생 중 40명이 글을 남겨 놓았는데, 'ㅋㅋㅋ' 같은 장난글이 몇, 나머지는 '쌤 좋아요', '사랑해요' 류였다. '21세기 선생님'이라는 최고의 찬사도 있었지만, 대개 감정적 반응이어서 마음에 크게 와닿진 않았다.
"누나가 대중적으로 어필하는 스타일은 아니지." 냥냥군의 말이다. 중학교 학생들은 1등부터 꼴찌까지 스펙트럼이 워낙 넓어서 눈높이를 맞추기가 쉽지 않다. 상위권 위주로 하자니 평균 만족도가 낮아질 테고, 중간에 맞추자니 수업 수준이 낮아질 테고. 못하는 아이들에게 맞추기는 어렵다. 개인적으로 시간을 내서 조금 배려하는 것 밖엔(실제로 하진 못했다). 수업에서 나는 내용 요약, 정리를 거의 안 해주는 편인데, 앞으로는 해야 하나 싶기도 했다.
내가 생각하는 '국어 능력'과 시험이 요구하는 '국어 능력'이 많이 다른 건 사실이다. 고등학교에 있다 내려갔기 때문에 지엽적인 것을 문제 삼지 않고 글을 전체적으로 보려는 경향도 있다. 이 부분은 사실 중요하다. 중학교나 고등학교에만 계속 있는 것보다는 둘 다 경험하는 게 낫다. (그래서 전문계고에 지원했다가 지금 망하고 있는 중-.-. 그래도 한 번쯤은 경험해볼 만하다고 위로하고 있음.)
평가를 무시하고 내 스타일대로 죽 가든가, 아니면 방향을 좀 수정하든가, 그도 아니면 인기가 아주 많던가 셋 중 하나였다. 내가 내린 결론은,, 고등학교로 옮기는 것이었다. 내 스타일을 크게 바꿀 수도 없을 뿐더러 텍스트에 대한 개개인의 다양한 해석, 내적 체험, 비판적 문제 제기 등을 다루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중학교에선 소프트한 것들 위주로 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옮겨야지 옮겨야지 하면서도 방학 때문에 망설였는데 평가 결과가 큰 영향을 준 셈이다. 휴가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일 자체에서 얻는 만족감도 무시할 수 없다. 방학이 사라지고 긴 여행은 더이상 못하겠지만 이런 평가는 받고 싶지 않았다. 교과서 선정 문제로 갈등을 빚었던 교감은 동료평가에서 모든 항목에 '미흡'을 한 줄로 세웠다. 그 결과 전체 교사 평균보다 한참 낮은 점수를 차지. -.- 일단은 징검다리 삼아 보충수업 없는 전문계고에 갔다가 인문계고로 옮기자 싶었다. 계획대로 될 진 모르나 계획은 그랬다.
대학에서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이론 공부에 큰 흥미가 없었던 데다가 대학원도 휴직할 핑계거리를 찾다보니 그 길밖에 없어서 들어간 거여서. 어찌어찌 과정을 마치고 어찌어찌 한 학기 강의를 진행했다. 사실 쫌 말아먹었다. 수준을 어디에 맞춰야 할 지 잘 몰랐고 내용 전달도 체계적이지 못했다. 교재 말고 적어도 두 권의 책은 읽히려 했으나 한 권에 그쳤다. 마음 같아선 매주 한 권씩 읽히고 싶었으나 전공 과목이 아니어서 불가능. 그래도 과제는 매주 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학생 수가 적어서 분위기가 다소 편안했다는 점이다. (스무 명 이하면 원래 폐강인데 몇 개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야간 강좌라서 개설되었다.)
사정이 그러했는지라 강의평가는 별 기대도 하지 않았다. 너무 낮으면 안 되는데 라며 살짝 염려했을 뿐. 결과는 예상보다 훨씬 잘 나왔다. 종강 무렵인가, 중요한 몇 가지를 심도 있게 파고들지 못한 게 아쉽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한 학생이 자기들 입장에선 전공이 아니라 개론이어서 다양하게 훑어보는 것이 더 나았다고 말해주었는데, 강의 내용이 붕 뜨거나 아주 어렵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학생들이 강의평가에 긍정적 반응을 많이 남겨서 고마웠고, 강의의 장단점에 대한 피드백도 되었다.
평가가 전부는 아니다. 늘 그렇게 말해왔다.^^ 하지만 경력 십 년이 넘어 기껏 평균이거나 평균 이하의 점수를 받고보니 실망이 컸다. 대학의 강의평가는 전체 교원 중 상위 3. 3%였는데 이는 중등학교에선 내가 결코 얻을 수 없는 순위였다. 대학이 더 잘 맞나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논문 쓰기가 싫어서 다 때려치우고 놀러나 다닐까 한 적이 많았는데, 시간이 걸리더라도 꾸준히 해서 논문을 써야겠다 싶었다. 시간 강사로 한 학기에 한 강좌 정도 해도 나름 재미있고 보람 있을 것 같았다. (앞으론 1년 전업 계약직으로 가는 추세라 기회가 없을 수도 있는데, 내 앞에 다가오는 모든 일은 인생 경험의 하나인지라 안 해도 괜찮다. 다 인연따라 가는 것...)
올 2학기에는 커리큘럼을 더 잘 짜고 싶었는데 건강 문제로 한 학기 쉬게 되었다. 간단한 수술이어서 계속해도 괜찮을 것 같긴 했지만, 건강보다 더 중요한 게 없어서 욕심을 내려놓았다. 주말에 여유가 생겼으니 책도 더 많이 읽고 내년을 위해서 차근차근 준비하며 가을을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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