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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일상의 기록

이 자리의 주인은?

by 릴라~ 2011. 9. 4.

 

박경철, 윤여준, 안철수 셋이 있을 때와 박경철, 안철수만 있을 때의 자세가 다르다. 특히 어깨와 다리.
뭐, 우연일 수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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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어제(9. 9) 나꼼수를 듣는데 박경철 원장이 나왔다. 자신들의 관계를 염려하는 시민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고 했다. 그리고 윤여준은 자신들을 아끼는 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일 뿐이며, 그가 앞서 발설한 내용들도 안철수를 아끼는 마음에서 비롯되었으므로 고맙게 생각한다고 했다. 김어준도 윤여준에 대해 개인적으로 만나면 논리가 뚜렷하고 어그러짐이 없는 인물이라고 한 걸로 보아, 일대일로 만나면 상당히 매력 있는 인물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뭐, 박근혜도 직접 만나면 좋다고 하더라만...)

그때 주진우 기자가 핵심을 말했다. 선거 때 이명박이 안 불러줘서 못 간 거지, 불러줬더라면 윤여준은 당연히 이명박 당선을 위해 뛰었을 인물이라고. 박경철은 그러냐고, 자신이 그런 것까지는 검증을 안 해서 잘 알지 못한다는 답변을 했다. 그간 사람들의 염려도 가셔졌고 안철수/박경철의 진의도 밝혀져서 기쁘게 생각하지만 한 가지 아쉬움은 있었다. 윤여준을 사회의 원로로 대접한 이분들의 나이브함이다. 물론 앞으론 달라질 수 있겠지만.

독재정권에 부역한 사람이(전두환 시절 비서관) 사람이 청춘들 앞에서 삶을 이야기할 자격이 되는지 의심스럽다. 살아온 행적을 보노라면 윤여준보다 오히려 안철수/박경철이 훨씬 나은 인물들인데, 윤여준을 게스트로 모셔서 조언을 청해 들을 가치가 있는지. 루쉰의 말이 그래서 와닿는다.

청년들이 금 간판이나 내걸고 있는 지도자를 찾아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차라리 벗을 찾아 단결하여, 생존의 방향이라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힘차게 나아가는 것이 나으리라. 그대들에게는 넘치는 활력이 있다. 밀림을 만나면 밀림을 개척하고, 광야를 만나면 광야를 개간하고, 사막을 만나면 사막에 우물을 파라. 이미 가시덤불로 막힌 낡은 길을 찾아 무엇 할 것이며, 너절한 스승을 찾아 무엇 할 것인가!”

'합리적 보수'라고들 이야기한다. 보수라도 말이 통하는 사람이란 이야기다. 말이 통하는 이유는 다른 한나라당 인사들에 비해 윤여준이 머리가 좋기 때문이다. 몇몇 인터뷰를 보면 시대의 변화를 읽어내는 능력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의 '논리'가 합리적이고 고개를 끄덕이는 면이 많다 해서 그의 '실천'까지 그러했던 건 아니다. 정치의 장에서의 그의 행보는 의도했든 결과적이든 철저히 한쪽 집단의 이익에 봉사했다.

사유와 논리의 영역에서는 이 편, 저 편을 구분하지 않고 현상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실천은 다르다. 정치의 영역에서 행동으로 옮겨진 것은 결국 A와 B 중에서 어느 누군가의 이익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다. 누구의 손을 함께 맞잡을 것인가. 올바른 방향 설정을 위해서는 우리 시대의 긍정적 성과 뿐 아니라 우리 시대의 아픔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윤여준의 사고는 합리적일지 몰라도, 그의 두 손과 발이 '정의'의 손을 들어주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가 이명박을 비판하는 것도 이명박의 행보가 자신이 생각하는 민주주의 원칙에 맞지 않다는 것이지, 그 자신 4대강과 민생파탄과 이 시대의 아픔에 공감하고 분노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가 80년대를 어떻게 느꼈는지도 실로 궁금해진다. 

한 사람이 진정 누군가를 말해주는 것은 말글이 아니라 손발이다. 그 둘이 일치한다면 더 좋겠지만 둘 중 하나를 들라면 당연히 말보다는 실천/행동/역할/기능이다. 화려한 언변이 아니라 그가 발 딛고 서 있는 토대이다. '나의 이념은 무엇인가' 보다는 '나는 누구를 위해 사는가'이다.

윤여준은 전혀 내 관심사가 아닌데, '합리적 보수'란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려 생각이 이어졌다. 굳이 그 말이 필요 없는 것이 모든 이론/관점은 내부적으론 합리성을 지닌다. 이름하여 '정합성'이다. 뭐, 그러고보면 친일파도 나름의 논리가 있다. 내적 논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외부 세계와의 관계에서 어떻게 '기능'하고 작동하는지를 볼 때, 진실에 더 근접할 수 있지 않을까. 역사 의식이란 후자를 고려해 '통시적'으로 보는 것이며 그것은 "우리 시대의 정의로움"에 대한 성찰을 필요로 한다. 그에게 결핍된 건 그 부분에 대한 감수성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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