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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다큐

다큐 - 달팽이의 별

by 릴라~ 2012. 4. 8.

 

 

오감 중에서 시각과 청각 없이 살아간다는 것, 촉각과 후각, 미각만으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건 어떤 것일까. '그'는 적막한 우주 공간 속에 혼자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모든 시청각 장애인들은 '우주인'이라고.

 

영화 <달팽이의 별>은 시청각 장애인인 그(조영찬)과 척추 장애로 키가 보통 사람의 절반밖에 안 되는 그녀(김순호)의 소소한 일상을 담았다. 보통 사람과 달리 형광등 하나 갈아 끼우는 것도 이들에겐 큰 도전이다. 한참을 마음 졸이며 지켜보던 나는 그가 형광등을 가는 데 성공하고 그녀가 스위치를 켜고 다시 방에 불이 환하게 들어오자 휴~ 하고 안도했다.

 

이 두 사람이 오손도손 사는 모습은 그저 '사랑'이라는 말로 이야기하기엔 너무 따스하고 다정하다. 이들은 우리와 '다른' 별에 살고 있었다. 그 별에는 소리가 없다. 하지만 그녀가 그의 두 손에 손가락을 올려놓고 글을 쓰는 모습은 그 어떤 피아니스트의 연주보다 가슴을 울린다. 소리 없는 속삭임처럼 가슴에 스며든다. 그 별에서는 세상을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본다. 마음이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는 세상이다. 빗소리도, 나뭇잎 바스락 거리는 소리도 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도, 사랑하는 이의 얼굴도 손끝을 통해 서로의 마음에 깃든다. 천천히, 느릿느릿, 이 세상의 시간을 넘어서. 그 별에선 손으로 만져지는 모든 것이 소중하며, 살아있음은 서로를 향한 따사로운 몸짓을 의미한다.

 

두 눈과 귀로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음은 큰 축복이지만,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이 우리를 또 얼마나 혼란에 빠트리는가. 불교에서는 그래서 오온이 지어내는 허상을 경계한다. 그(조영찬)는 이야기한다. 별이 보이지 않아도 별이 있음을 알고, 어두운 밤에도 지구 아래에 붉은 태양이 웅크리고 있음을 안다고. 참으로 듣기 위해서 잠시 듣지 않을 뿐이고 참으로 보기 위해서 잠시 보지 않을 뿐이라고. 우주 저 멀리 날아간 자신의 감각이 어느 날 길을 찾아서 돌아올 날이 있을 거라고. 나는 그의 말을 믿는다.

 

달팽이는 시력(명암만 구분)과 청력이 없으며 암수 한몸이다. 그와 그녀가 살고 있는 곳이 바로 달팽이의 별. 언제 어디서나 해넘이를 볼 수 있는 어린왕자의 별에 바오밥나무와 장미꽃 한 송이가 산다면, 달팽이의 별에는 그와 그녀가 산다. 그들은 느리고 다정하게 이 세상을 걸어간다. 그녀의 등은 굽었고 키는 다른 이의 절반이며, 그는 시각과 청각을 잃었다. 하지만 그 별에서는 자신을 꾸미는 말과 거짓 미소가 없다. 언제 어디서나 서로의 가슴을 품어주는, 상대를 진심으로 아끼는 따사로움만이 존재한다. 그들이 가는 모든 곳에 그의 순수함과 그녀(김순호)의 따사로움이 깃들어 있다. 그녀는 3살 때 사고로 장애를 지니게 되었다 한다. 그녀가 그처럼 평온하고 따스한 내면을 지니게 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고독을 감내했을까.

 

이 영화는 그와 그녀가 살고 있는 세상, 달팽이의 별을 찬찬히 보여준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깨닫게 된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건 우리들이며, 참된 세상을 보고 느끼는 건 그와 그녀인 것 같다고. 사랑하는 법을 아는 이도 우리가 아니라 그와 그녀인 것 같다고. 우리가 우리 눈과 귀로 쏟아지는 찰나의 자극에 휩쓸려간다면 그들은 그 무엇도 흔들 수 없는 영원의 시간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고. 달팽이처럼 느리게 걸어가지만 그들이 원하는 지점에 결국 도달하리라고.

 

'달팽이의 별'은 마음이 만져지는 곳이었다. 그런 사랑을 경험하기엔 내 마음의 벽이 너무 높아 보인다. 감독의 말처럼 영화를 통해 "그들이 살고 있는 별을 잠시 여행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달팽이의 별 (2012)

Planet of Snail 
9.5
감독
이승준
출연
조영찬, 김순호
정보
로맨스/멜로, 다큐멘터리 | 한국 | 85 분 | 2012-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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