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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이야기/여행 단상

경주 일대를 돌아보고

by 릴라~ 2005. 4. 9.

토함산의 일출...황홀함에 넋을 잃다
경주 일대를 돌아보고

▲ 봄향기가 찾아든 불국사

십대에 들어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예전에 나를 떠밀었던 많은 것들이 이젠 다소 시들해졌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한층 더한 무게감으로 다가오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인연이다. 인연은 예상치 못한 신비로운 모습으로, 때로는 커다란 숙제로 내게 다가오곤 한다.


우연한 기회에 국토사랑방 회원님들과 인연이 닿아서 오랜만에 답사 여행을 떠났다. 도시 계획 쪽의 일을 하시는 분들, 그리고 우리 옛집에 관심이 있는 분들과 함께 경주 일대를 돌아보게 되었다.

예년 같으면 벚꽃이 다 피었을 텐데 아직 꽃 소식이 요원한 3월 마지막 주말, 그래서인지 대구에서 경주까지 가는 길은 전혀 막히지 않았다. 다들 서울서 오시는 분들이라 나는 경주에서 일행과 합류하기로 되어 있었다.

고속도로 나들목을 빠져나가며, 근 한달만의 나들이에 마음이 가벼워진다. 3월 내내 나는 슬럼프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버리고 털어버리는 것은 내 특기인 줄 알았었다. 그런데 아무리 버리려 해도 버려지지 않는 것들, 아니 사실은 버리고 싶지 않은 것들, 차마 버릴 수 없는 것들, 그래서 꼭 움켜쥐고 있는 것들….

그것들을 고스란히 확인하고는 어찌나 난감하던지. 꽤 많이 걸어온 줄 알았더니만, 훌훌 떠나온 줄 알았더니만 아직도 제자리걸음이구나 싶어서 조금 절망적인 심정이 되기도 했다. 마음 하나 바꾸면 될 것을 그 마음 하나가 천근이라도 되는 듯 쉽게 옮겨지지 않았다. 앞으로 가야 하는데 자꾸만 뒤돌아보고 있었다.

화창하고 포근한 봄날, 길을 나서길 잘 했다는 생각을 한다. 움직이면 에너지도 함께 따라오는 법이니까. 이 물리적인 속도만큼 마음도 힘차게 움직일 수 있으면 좋겠다. 차는 어느새 경주에 닿았고 낯익은 기와집들이 눈 앞에 나타났다.

황남동 쌈밥집에서 일행 분들과 합류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함께 점심을 든 후 우리는 교동에 있는 최씨고택으로 향했다. 경주 최씨의 종가인 최씨고택은 조선시대 양반 가옥의 전형으로 1700년대에 세워진 집이었다. 12대 무려 300년 동안 부를 누려 최부자집으로 잘 알려져 있다.



▲ 최부자집에서


1.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말 것.
2. 재산은 만석 이상은 모으지 말 것.
3. 과객을 후하게 대접할 것.
4. 흉년기에는 재산을 모으지 말 것.
5. 최씨 가문의 며느리들은 시집온 지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을 것.
6.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할 것.



만석 이상의 재산을 모으지 말고, 흉년에 재산을 모으지 말며,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최부자집의 가훈에는 세상과 조화되어 살고자 하는 그들 삶의 지혜가 담겨 있었다. 해방 후에는 전 재산을 영남대의 전신인 '대구대학'에 기증하고 평범한 집안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집 가장 깊숙한 곳에 조상을 모신 사당이 있었다. 지관 선생님이 집의 구조와 집터의 배경을 설명해 주셨는데 이 쪽으로는 워낙 문외한이라 다 이해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우리 옛집이 주는 편안함에는 그 나름의 충분한 이유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땅의 이치에 맞게 집을 앉히려는 옛 사람들의 마음씀씀이가 아름다웠다. 선조들은 집 한 채도 예사로 짓지 않았다.

뜰을 이리저리 거닐어 보고 대청마루에도 앉아 본다. 나뭇결에서 봄햇살 같은 훈기가 느껴졌다. 그렇게 잠시 앉아서 처마끝 아래 하늘을 바라보니 참 좋았다. 다음으로 우리는 경주 불국사를 찾았다.

입구에는 불국사가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음을 알리는 커다란 바위 비석이 있었다. 덩치만 클 뿐 주변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것을 두고 일행은 한 마디씩 불평을 쏟아 놓는다. 눈에 거슬리는 것은 그 뿐이 아니었다. 절 입구까지 난 시멘트 길은 천년 옛터의 분위기를 깨뜨리는 주범이었다.

불국사에는 그간 몇 차례 왔지만 내 어렸을 적 처음 왔을 때만큼의 감흥이 없다. 그 시절에는 숲길을 걸어오면 청운교와 백운교, 연화교와 칠보교의 측면이 신비롭게 드러났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새로 난 길을 따라오면 불국사의 측면이 아닌 다소 밋밋한 정면과 먼저 마주하게 된다. 길의 아름다움을 살리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 속세를 지나 불국토로


속세를 지나 불국토로 올라가는 길. 마음은 청운교와 백운교 33계단을 걸어서 부처님의 광영을 상징하는 자하문을 통과한다. 물론 우리는 문화재 보호를 위해서 옆문으로 돌아 들어가야 했지만. 불국토에서 만나는 다보탑과 석가탑, 흐르는 세월에도 변치 않고 드높은 이상을 빛내며 서 있었다. 곧 해가 질 것 같았다.


신라인들은 떠났지만 그들의 꿈은 남아서 나그네에게 말을 건다. 대웅전과 극락전을 지나 뒤뜰에 이르니 사람들이 쌓아올린 자그마한 돌탑이 가득했다. 삶은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소망으로 채워지는가 보다. 돌멩이를 올려놓는 마음들이 애틋해 보였지만 나는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바라는 것들이 의미를 잃은 지금, 무슨 꿈을 새로 꾸어야 할까.



▲ 빛나는 이상은 하늘을 향해

저녁 식사 시간. 화제의 중심은 최부자집이었다. 최부자집은 만석을 거두어들이면 삼천석은 식솔들이 먹었으며 나머지 칠천석은 주위에 베풀었다고 한다. 그만큼은 못 되더라도 가진 것의 3분의 1을 베풀고 살면 인생살이에서 막히는 일이 없다고, 씨를 뿌리지 않고는 절대 거둘 수 없는 법이라는 말씀을 새겨들었다. 적게 가졌으면 적게 가진대로 나눌 수 있는 만큼 나누며 살라고.

그렇잖아도 요즘 지금 있는 자리에 그저 안주하려는 모습, 새롭게 시작하기보다는 가진 것을 지키는 데서 머무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는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황혼에 아름다운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 지금부터 부지런히 씨앗을 뿌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일출 직전, 토함산에서


다음 날 새벽, 일출을 보기 위해 토함산에 섰다. 많은 사람들이 긴장감 속에 떠오르는 해를 기다리고 있었다. 운해 위로 붉은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기다리는 시간은 꽤 길게 느껴졌다.


드디어 해가 솟았다. 해가 떠오르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몇 초였지만 그 순간의 황홀함에 나는 넋을 잃는다. 볼 때마다 가슴을 벅차게 하는 장면. 태양의 이 첫 모습을 우리는 맨눈으로 볼 수 있도록 허락받았다. 세상의 새로움을 보라고 신은 매일 같이 동녘으로 태양을 불러들이는 걸까. 일출을 자주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루의 시작이, 모든 탄생이 신성한 것임을 기억하기 위해서.



▲ 토함산 일출
▲ 새 하늘 새 땅이 열리다

아침을 들고 나서 천성산 내원사로 갔다. 계곡을 따라 걸어 들어가며 옥빛 맑은 물에 감탄한다. 내원사는 지율 스님이 계신 곳이다. 스님을 떠올리며 경내를 돌아보았다. 빗방울이 조금씩 날리기 시작했다. 내려오는 길에 일행 중 한 분이 묻는다. 절에서 야생란을 보았냐고. 100년만에 한 번 피는 꽃이라고, 주위에 카메라를 대령해 놓았더라고.


100년만에 한 번 피는 꽃이라…. 그 꽃을 보지 못해 못내 아쉬워하던 중 한 생각이 스친다. 인생은 어쩌면 천만년 만에 한 번 피는 꽃일지도 모르겠다고. 지금 이 순간이 그 얼마나 소중하냐고.

그래. 삶이 계속되는 한 이 삶을 껴안고 가는 수밖에…. 잘 움직여지지 않을 때에는 더 큰 의지로 나 자신을 움직여야 해. 봉오리를 피워내야 해. 천만년 만에 주어진 기회야. 활짝 피어야 해. 무럭무럭 뻗어가야 해. 봄잎처럼 무성하게.

나이는 먹을 대로 먹어서, 벌써 일 년이나 지났건만 아직도 잃어버린 사랑 타령을 하며 징징거리고 있는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삶 앞에 나의 한숨이 부끄러웠다. 더는 뒤돌아보지 말아야지. 하늘과 함께 큰 걸음으로 걸어야지.



▲ 내원사


비가 제법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마지막 목적지 양산 통도사로 갔다. 빗속에도 봄의 기운이 느껴졌다. 보슬보슬 내리는 봄비를 맞으며 어찌 되었거나 삶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내가 줄곧 삶에게 불평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내 뜻대로 내 의지대로 되지 않는 일 때문에 나는 살 맛을 잃고 있었다. 삶이 내게 준 선물은 잊어버리고, 삶이 내게서 앗아간 것들만 쳐다보면서. 공평하지 못한 것은 신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있어 행복하군요.' 나는 신에게 말을 건넸다. 모든 것이 지나가고 사라져도 그와의 대화가 남아 있었다. 내 삶의 끝까지 따라올 목소리의 주인에게 나는 다시 속삭였다. '이게 삶이란 말이지요?'



▲ 통도사
▲ 구름에 달 가듯이

헌데 이 삶이 과연 나의 것일까. 문득 그런 질문을 해본다. 이 삶도 이 세상도 모두 내 것이 아니라면? 신의 것이라면? 이 우주의 것이라면? 그렇다면 더는 불평할 것이 없으리라. 이 모든 경험이 다 그의 것, 그가 있으니 나도 있는 것이다. 내 경험조차도 내 것이 아니라 그에게 속한 것이니 불평할 것도, 부족한 것도 없으리라.


다시금 나 자신에게 물었다.

'너, 뭐가 부족한 거니?'
'부족한 건 없어. 살아봐야지. 맘껏.'

이 비가 그치면 봄이 눈부시게 시작될 것이다.

봄 / 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 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2005-04-09 15:05
ⓒ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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