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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이야기/여행 단상

지리산을 품다 - 하동 이병주 문학관

by 릴라~ 2017. 2. 12.

 

하동군 북천면은 작고 아담한 마을이었다.

경전선 북천역이 지나는 이곳은 가을이면 코스모스 축제로 유명한 곳이지만

내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이병주 문학관 때문이었다.

나림 이병주 선생의 소설 '지리산'을 읽고 한번쯤 가봐야지 하는 마음이 생겼다.

 

문학관은 북천면에서도 더욱 아늑한 이명산 산자락 아래,

앞으로는 주변이 조망되는 좋은 위치에 자리잡고 있었다.

축제는 끝났지만 주변 밭에 흐드러진 코스모스가 가을 정취를 전했다.

실내에는 기대했던 것만큼 자료가 많지는 않았다.

그저 선생의 삶의 자취를 한번 훑어보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전시물보다는 주변 자연의 고즈넉한 분위기에 더 마음이 가는 곳이 이병주 문학관이었다.

 

'지리산'은 일제 말과 해방 공간을 배경으로 빨치산 투쟁을 다룬 소설이다.

내게는 지리산에 얽힌 개인적인 추억들이 있다.

한때 지리산 산길과 생태계의 아름다움에 반해 몇 년을 부지런히 등산을 다닌 적이 있었다.

그렇게 지리산을 오가던 어느 무렵부터 지리산 인근의 오래된 작은 마을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리산은 그 자신만큼이나 오래된 작고 예쁜 마을들을 산자락마다 품고 있었고,

도시에서 자란 내게 고향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그 정겨운 농촌 마을들이

빨치산의 무수한 죽음을 품고 있음을 알았을 때는 많이 놀라기도 했다.

관련 자료를 찾아보았지만 지리산에서 왜 그런 비극이 일어나야 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고 그렇게 지리산은 내게 '국립공원'을 넘어서

우리의 오늘에 대해 무언가 중요한 실마리를 간직한 공간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병주의 '지리산'은 내가 지리산에서 느꼈던 의미의 빈 자리를

인물들의 피와 살이 담긴 이야기로 채워준 소설이다.

 

이병주 선생은 학병 세대 출신의 작가이다.

하동에서 태어나 일본 유학생 시절 징집되어 태평양전쟁을 겪었고

해방 공간에서는 그의 친구들이 지리산에서 무수히 희생되는 것을 목격한다.

작가는 소설에서 공산주의에 일관되게 비판적 태도를 취하면서

지리산의 비극의 가장 큰 책임이 빨치산 투쟁을 장려한 김일성에게 있다고 보았다.

내가 역사 전공자가 아니라 잘 모르지만 북한이 지리산 빨치산들을

이용하고 버렸다는 비난은 피할 길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당시 해방정국에 대한 소설속 묘사는 지나치게 단순한 감이 있는데

1970년대의 정치 상황을 고려할 때 소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작가의 시대 인식의 한계와 그가 미처 말하지 못한 것을 생각해보는 것은

우리 시대에 이 소설을 읽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작가가 얼마나 정직하게 시대를 묘사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소설의 결말은 그의 고뇌가 정직한 것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작가는 그 모든 대립과 투쟁이 '허망한 정열'에 바쳐진 세월이었으며

'나에겐 조국이 없다. 오직 산하가 있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좌우로 찢긴 조국이 아니라, 지리산이라는 자연의 품에 귀의했다.  

빨치산은 남한에게는 소탕의 대상이었고 북한 또한 휴전협상 때 빨치산을 철저히 외면했으니

이 젊은이들은 남과 북 모두에게 버림받은 셈이고 작가는 '자연'을 택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소설 속 하준규와 박태영은 결국 '지리산'을 택했고, 지리산에서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

그들이 발 딛고 설 수 있는 곳은 지리산밖에 없었다.

 

작가가 지리산에서 본 것은 결국 '절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처음 소설을 읽었을 때는 그러한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작가의 정직한 고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한 사실조차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지리산에서는 2만여 명이 죽어갔습니다.

파르티잔(빨치산)과 군경 토벌대인 이들은 대부분 젊은이들이었지요.

어떻게 해서 그런 일이 일어났던지 간에, 또 파르티잔의 상당수가 잘못 선택한 길을 갔던지 간에

그들의 죽음은 민족과 시대의 관점에서 다시 조명되어야 합니다.

2만여 생명이 죽어간 민족의 비극을 그냥 묻어둔다는 것은

기록과 문자가 있는 나라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그들의 일이 가슴에 호소하는 그 무엇으로 남겨져야 합니다.”(이병주)

 

어떤 장소는 그곳이 장소로 끝나지 않는다.

긴 시간을 두고 거듭 방문하면서 우리 자신에 대해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게 되는 곳,

그런 곳을 우리는 순례지라고 부른다.

내게는 지리산을 둘러싼 모든 것이 그런 순례지로서 의미를 지닌다.

 

 

*여행한 때 : 2016년 9월

 

 

https://www.bookk.co.kr/book/view/4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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