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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스토리텔링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 정유정, 지승호 — 세상이 원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라

by 릴라~ 2018.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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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독자가 내 소설 안에서 온갖 정서적 격랑과 만나기를 원한다. 기진맥진해서 드러누워버릴 만큼 극단의 감정을 경험하길 원한다. 분노, 절망, 슬픔, 비애, 사랑, 감동...... 소설이라는 이야기 형식 안에서 안전한 거리를 두고 겪는 감정경험들은 세계에 대한 우리의 시선을 확장시키고, 인간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만들어주고,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또한, 독자가 주인공과 함께 절정까지 내달리기를 원한다. 앞서 말했다시피 절정에는 이야기의 영혼, 즉 작가가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이 숨어 있다. "나는 세계를, 삶을, 인간을, 이렇게 바라본다"라고. 바꿔 말하면 작가는 이 메시지를 절정부에 숨겨놔야 한다. 이것은 이야기의 의미이기도 한데, 의미 자체가 재미인 경우도 있다. 아마도 가장 바람직한 형태일 것이다. p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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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설의 종류를 크게 둘로 나눈다. 하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소설, 다른 하나는 경험을 하게 하는 소설. 생각을 하게 하는 소설은 독자의 지성을 자극한다. 어떤 가르침 혹은 깨우침을 주거나, 주제에 대한 깊은 사고를 유도하거나, 하나의 목적(추리소설이라면 범인 찾기)에 집중하게 하거나......

 

경험을 하게 만드는 소설은 독자의 정서에 호소한다. 독자를 허구의 세계로 밀어 넣은 후, 그 세계를 (불을 뿜는 용이나 유령이 '주요 인물'인 세계라면 더욱더) 실제세계처럼 믿게 하는 것이 우선 과제다. 그래야 독자가 주인공을 동일시할 수 있고, 그의 내면에 감정적으로 이입할 수 있으며, 이입이 돼야만 이야기로 연결되는 통로가 생긴다. 연결통로가 있어야 독자는 내게 벌어진 일처럼, 지금 겪고 있는 일처럼 생생하게 느끼고 경험할 수 있다. 즉 공감한다는 얘기다. 아마도 절정에서 독자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오래오래 남는 여운과 감흥과 정서적인 충만감일 것이다. pp5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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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그러더라. 제아무리 정교한 소설 속 묘사도 카메라를 따라갈 수는 없다고. 내 생각은 다르다. 카메라는 화면 뒤편의 이면을 잡지 못한다. 세상의 모든 현상이나 존재에는 표면만 존재하지 않는다. 표면 뒤편에는 감춰진 심연이 존재한다. 사람도, 사물도, 하다못해 공기까지도. 영화로 이것을 표현하려면 배우의 뛰어난 연기나 이야기의 흐름, 그 외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할 장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표현해내는 영화적 장치가 필요하다. p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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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본적으로 대중적 정서의 방향이 제시된 이야기에는 욕망을 느끼지 못한다. 행복이라든가, 평범한 일상이라든가, 아름다운 연인의 완벽한 사랑이라든가, 도덕적이고 고결한 삶이라든가.

 

내가 좋아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운명의 변덕에 휘둘린 불운한 인간, 최선을 두고도 파멸로 치달아버리는 어리석은 인간, 욕망에 눈멀어 자신을 내던지는 무모한 인간, 참혹한 상황 속에서도 지키고자 하는 것을 기어코 지켜내는 인간, 추하고 졸렬한 민낯을 드러낸 야만적인 인간, 죽음 앞에서 분노하고 두려워하는 남루한 인간......

 

그런 이유로 인간의 어두운 숲에 잠든 야수들이 내 소설의 주요 테마가 되었다. 뒤집어 말하면, 내 소설은 우리 안에 잠든 어둠의 생명체를 이야기의 주술을 빌려 밝은 들판으로 불러낸 이야기다. 내 소설의 주요 인물은 나와 먼 세계에 사는 개별적 악당이 아니라, 보편적 인간인 우리 안의 야수가 극단적으로 확장된 생명체다. 독자들이 내 소설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건, 이야기 속으로 들어서면서 곧장 이 정체 모를 생명체와 정면으로 맞닥뜨리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그들이 낯설면서도 낯익은 존재라는 점에서 불안과 긴장, 경계심을 느끼는 것이다. p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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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그저 현실도피용 도구가 아니다. 낯선 삶, 우리가 경험한 적이 없는 삶을,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서 적극적으로 살아보게 하는 모험적 도구다. 이 경험은 세상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확장시킨다. '시각의 확장'이란 몰랐던 가치에 대해 눈을 뜨는 것이며, 이 개안은 이해할 수 없었던 삶의 속성을 이해하게 만들어준다. 여기에서 이해란, 관용이 아니라 '앎'을 뜻한다. 앎은 새로운 깨달음이고, 이것은 우리를 완전히 다른 삶으로 이끌기도 한다.

 

문학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개인의 삶 혹은 삶에 대한 시각을 바꿀 수는 있다고 믿는다. "사람을 죽이는 건 최고로 나쁜 짓이다"라고 배워온 내가 "살인이 구원일 수도 있다"는 도덕 이면의 진실을 깨달은 건 열다섯 살 때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항쟁이 있었던 바로 그때. p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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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작가의 의무는 하나다. 진실을 말해야 한다.

 

작가는 대중의 감정을 파고드는 존재다. 인간은 정서의 동물이며 모든 행동의 바탕에는 어떤 정서, 즉 감정이 자리 잡고 있다. 생각은 변할 수 있고, 설득당하거나 논파당할 수 있다. 하지만 감정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생각이 바뀌어도 밑바닥 감정은 지속적이다. pp7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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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내게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 혹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에 '어떤 질문'을 가지고 답을 찾아가는 습관이 있다. 즉각적으로 답이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다 혹은 아니다' '옳다 혹은 그르다' '도덕적인가, 비도덕적인가'로 답을 낼 수 있는 성격의 질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즉각적으로, 그런 식의 답변이 나온다면 그것은 '소설적 질문'이 아니다. 소설적 질문은 반드시 주관적인 답을 요구한다. 곰곰이 끈덕지게 '사실'의 이면에 도사린 '무엇'을 상상해야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상상은 도덕이나 윤리, 법, 사회적 관행이나 시선 등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p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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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자기가 만드는 세계에 대해 신처럼 알아야 한다. 그래야 그 세계의 구석구석까지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다. 내가 만든 세계에선 파리 한 마리도 멋대로 날아다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p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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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규모는 이야기에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이 좋다. 작가가 이야기 속 세계에 대해서만큼은 신처럼 알아야 하니까. 세계가 넓어질수록 작가가 알아야 하는 것이 많을 수밖에 없다. 지식의 깊이는 얕아질 수밖에 없고, 깊이 없는 지식은 밀도와 핍진성이 낮은 소설을 만들게 마련이다. p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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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이야기는 '변화'에 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도 주인공의 삶을 뒤흔들고 인생경로를 바꾸어놓는 문제로 인한 변화. 그러므로 이야기의 문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주인공이 열도록 해야 한다. 나는 주인공이 중대한 문제와 맞닥뜨리기 직전에 시작하는 걸 선호한다. 일상이 평온하게 흘러가고 있다고 믿는 순간, 모든 일이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믿고 있는 순간에. 예를 들어 평범한 회사원인 주인공이 퇴근길에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룬다면, 시작은 그날 퇴근 직전이 될 것이다. 연인에게 예상치 못했던 결별선언을 듣고 난 후부터 그 혹은 그녀의 스토커가 되는 이야기를 다룬다면, 시작은 그날 데이트 장소로 가는 장면이 될 것이다. 많은 작법서들이 '사건 한복판에서 시작하라'고 가르치고 있기는 하다. 그래도 나는 반 박자 빨리 시작하는 편이 좋다. p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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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을 정하려면 먼저 주인공의 욕망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사회적 욕망이든, 내적 욕망이든, 성적 욕망이든, 그것이 주인공의 인생을 뒤집어놓는 욕망이라야 한다. 그것도 원상복귀가 불가능한 수준으로. 두 번째로, 욕망을 이루지 못했을 때, 즉 목표달성에 실패했을 때 잃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야 한다. 잃는 것이 사소하다면 이야기도 사소해질 가능성이 크다. 전 재산이 백만 원인 사람이 만 원을 잃는다 해서 인생이 뒤집히는 것은 아니니까. 

 

반대로 목표를 달성한다면, 이때에도 삶이 뒤집히는 변화가 있어야 한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스펙터클한 사건들이 있었는가와 상관없이.

 

둘 다 취할 수도 있다. 흔히들 '아이러니 결말'이라고 부른다. 주인공은 목표달성에 성공했으나 그 대가로 가장 중요한 것을 잃는다.

 

이제 따져보고 선택하면 된다. 이야기의 진실과 작가가 전하려는 주제에 가까운 것이 무엇인가. 주인공의 실패인가, 성공인가, 아니면 아이러니인가. 어느 쪽을 선택하든 주인공의 삶은 이야기가 시작될 때와 완전히 달라져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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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쓰기 어려운 부분은 무엇인가.

 

당연히 절정의 장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은 절정을 위한 여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플롯 역시 절정을 목표로 설계된다. 그러므로 절정은 반드시 주인공이 이끌어야 한다. 지금껏 쌓아올린 갈등과 인과관계가 한 방에 폭발하는 부분이자 주인공의 내면적 투쟁이 끝나는 순간이고, 주인공이 최후의 행동을 보여주는 장이다. 주인공은 도저히 그럴 수밖에 없는, 다른 식의 행동은 상상할 수 없는, 행동 이전의 삶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중차대한 선택을 하게 된다. 돌이키거나 취소할 수 있다면 그것은 절정이 아니다. 더하여 절정에는 작가가 이야기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들어 있어야 한다. 이 메시지는 '이야기의 영혼'이다. 작가가 서두에서 던진 질문에 답을 제시하는 장이기도 하다. 흔히들 '아하!'의 순간이라 부르는 장. 이 모든 점들을 염두에 두면서 상투적이지 않은 장면을 만드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원고 중 가장 마지막까지 만지작거리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p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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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이야기 대신 세상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옳지 않다. 세상이 뭐라고 하든, 작가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로 인해 듣게 될 비난이나 비판도 당연히 작가의 몫이다. 그래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으니 그게 어딘가. 세상에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p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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