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sheshe.tistory.com
책 이야기/교육 관련

학교를 말한다 | 이성우 ㅡ 식민지 시대에 만든 불합리한 승진 제도

by 릴라~ 2018. 9. 2.

##

 

예전과 달리 지금 승진파 교사들 가운데 건강한 교사가 적지 않다는 사실로 현행 승진제도를 정당화할 순 없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 좋은 교사들이 승진의 암흑 터널을 거치지 않았다면 더욱 좋은 교사로 성장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릇 건강한 국가정책은 개인의 발전과 국가 발전이 함께 가도록 개인을 유인할 것이나, 보다시피 현행 승진제도하에서 이 둘은 정반대로 기능한다.

 

일제강점기에 이 제도를 만든 취지가 그랬다. 식민지 교사들에게 소모적인 경쟁을 부추겨 교육혼을 말살시키고 그 대열에서 살아남은 가장 비교육적인 인간을 높은 자리에 앉혀 교단을 길들이려 한 것이다. 현행 승진제도의 반교육적 폐해를 누구보다 잘 알면서 이 망국적 제도를 존치해야 한다며 총력투쟁에 나선 분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pp38

 

##

 

식민지배의 기본 원리는 '분리 통치 전략'이다. 지배자들은 어떻게든 식민지 백성들을 분열시키려 한다. 그러려면 치열한 경쟁은 필수다. 경쟁을 통해 서로 다투게 만들어야 한다. 소모적인 경쟁을 통해 집단의 영혼을 망가뜨려야 한다. 스승의 꿈을 품고 교단에 서자마자 교단을 탈출하기를 소망하게 만드는 교장승진제도는 정상이 아니다. 


다른 나라에도 승진제도가 있긴 하지만 우리처럼 얄궂은 점수나 스펙 쌓기를 통해 아등바등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교사에게 열어놓고 선발한다. 놀라운 것은, 우리와 달리 교장에게 교사보다 훨씬 많은 월급을 주는 데도 교장을 서로 안 하려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 속에서 교사는 교사임에 자부심을 갖고 학생교육에만 전념하니 교직의 긍지는 그대로 양질의 교육으로 이어지고 국가의 백년지대계를 위해 헌신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식민지적 질곡의 승진제도 하에서 우리나라 교사들은 '승진적령기'에 승진을 못하면 패배주의에 젖어 '언제 명퇴할 것인가?' 하는 생각 속에 하루하루를 보냈다. pp96


##


작감의 학교는 '학교 붕괴'로 상징될 이런저런 문제로 망가져가고 있다. 학교교육 병리의 한가운데에 학교폭력이 자리하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학교폭력실태조사는 학교폭력을 막고 자살 학생을 최소화하기 위한 중요한 진단 시스템인데도 이것이 기관평가 수단으로 전락하는 바람에 원래 취지와는 정반대로 오작동하고 마는 구조적 모순을 살펴보았다. 


교육과 행정의 주객전도가 벌어지고 목적과 수단이 뒤바뀌는 데 따른 교육 폐해의 전형은 무익한 실적물을 양산하는 데서 볼 수 있다. 학교평가점수를 잘 받기 위해 교사들은 교육자의 본본을 팽개치고 교육적으로 무익한 실적을 양산하기 바쁘다. 교육의 실적은 헌신적인 교육 실천의 결과 저절로 수반되는 것이련만, 높은 평가점수를 받기 위해 교사들은 마치 공장 근로자가 상품 제조하듯이 실적물을 찍어낸다. '공장'으로 전락한 학교에서 '교육 실적물'이란 이름의 상품 찍어내기에 바쁜 것이다. 그 와중에 진정한 교육이 소외되어갈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질보다는 양, 내용보다는 형식에만 치중하는 전시교육 행태가 근절되기는 커녕 오히려 확대 재생산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이 윗선에서 통하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평교사들은 실적물 양산체제에 강한 불만과 회의를 느끼지만, 오직 승진과 영전에 혈안이 되어 있는 관리자들과 소수의 승진파 부장교사들은 어떻게 해서든 다른 학교보다 더 많이, 더 그럴듯하게 실적물을 찍어내고자 한다. pp131


##


그나저나 공문 참 지독스레 많다. 면사무소도 아니고 아이들 가르치는 교육의 장에서 뭔 공문이 이렇게 많이 필요할까? 대부분 쓸데 없는 공문이고, 또 그렇다 보니 공문 생산하는 쪽이나 보고하는 쪽이나 진정성은 1퍼센트도 담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학부모 대상으로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교육을 하고 실적을 보고하라고 한다. 대한민국 어느 학교에서도 학부모를 따로 불러 이 교육을 실시하는 경우는 없다. 보통 3월 학부모총회를 겸해 여는 교육과정설명회 때 유인물을 나눠주는 것으로 대신한다. 학교교육은 교육청 시키는 대로 다 하면 망한다. 교육 본연에 충실하기 위해서라도 편법은 불가피하다. 말하자면, 교육 실천에 진정성을 다하기 위해서라도 페이퍼워크에서는 거짓말을 일삼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학부모 교육을 했으면 해지 그걸 무슨 교육 실적으로 간주하며 또 그 실적을 왜 보고해야 하는가? 또 참석 학부모 수가 뭐 그리 중요한가? 세상에 어떤 실없는 사람이 강당에 앉은 학부모 머릿수를 헤아린단 말인가? 이렇게 구시렁거리니 옆에 있는 교감이 "등록부 확인해서 헤아려 보면 된다"고 굳이 친절하게 답을 제시한다. 누가 그걸 몰라서 안 하나? 내가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교육청에서 요구하는 무익한 숫자놀음에는 절대 진정성을 들여 반응하지 않겠다는 나름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다. pp159


##


특정 학교의 교육 역량은 수월성 대신 효율성이란 개념으로, '학력' 대신 '교육력'이란 개념으로 대치되어야 한다. 소규모 농촌학교에서는 학업성적이 아주 뛰어난 수재는 없을지라도, 대부분의 학생들이 교사의 세심한 배려 아래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는 배움이 가능하다. 그리고 작은 학교 특유의 따뜻한 교육공동체 분위기가 마련되어 학생들이 정서적으로 건강한 성장을 도모해간다. 
학교 교육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이다. 행복도는 학교 교육의 '필수적인 조건'이란 의미이다. 행복하다고 해서 교육력이 높은 것은 아니지만, 교육력이 높으려면 일단 행복해야 한다. 학업성적은 우수하되 정신적으로 피폐한 아이들이 있는 학교는 교육력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pp234




300x25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