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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스토리텔링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 | 다치바나 다카시 — 자신이 살아온 시대를 의식하라

by 릴라~ 2018.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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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제목에 '현대사 속에'라는 단서 조건이 왜 붙게 되었는지 잠시 부연 설명을 하고자 한다. 이러한 단서를 붙인 이유는 이제부터 써내려갈 자기 역사에서 단순히 '성공 과정'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시대가 어떠한 시대였는지를 의식하면서 자기 역사를 써보도록 하자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이라는 인간'과 '자기 자신이 살아온 시대'라는 두 가지 요소가 완전히 밀착된 관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서로 동떨어진 관계도 아니라는 사실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의식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물론 '시대 의식을 가지고'라는, 이른바 시대론적인 요소를 자기 역사 속에 구체적으로 넣도록 지도하였다는 의미는 아니다. 자기 역사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것과 다르지 않지만, 자신의 역사를 되돌아 볼 때 '동시대의 구체적인 역사를 실마리로 삼아 돌이켜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시사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기억은 연상 기억 방식으로 저장되기 때문에 조그마한  실마리만 제공해도 바로 되살아나는 법이다. 기억을 되살리는 가장 좋은  실마리는 그때그때 일어났던 커달나 사회적 사건이다. 1964년 도쿄올림픽이 열렸을 때에 자기 자신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다나카 가쿠에이 전 수상의 체포 뉴스는 어디에서 들었는지, 옴진리교가 지하철 독극물 사린가스 테러 사건을 일으켰을 때 어디 있었는지 등이 그런 예라고 할 수 있다. 각각의 시기에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대사건을 실마리로 삼으면 누구나 각자의 기억을 상기시킬 수가 있다. 그래서 수강생들에게 자기 역사를 쓸 때 가장 먼저 요구한 작업은 '자기 역사 연표'를 작성하는 일이었다. 이 연표에는 반드시 시대 배경을 별도의 틀로 만들어 기입하도록 하였다. pp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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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이 과거에 살았던 사람의 기억이나 기록으로 넘쳐 날 필요는 없다. 사회가 역사적 자산으로 보존하고자 생각하지 않는 이상, 개인에게 속한 기억은 기껏 3대 정도 이어지면 그 뒤에는 자연스럽게 소멸해 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그러나 3대 정도는 자기 역사로서 기억해두지 않으면 후손들 중에서 '그러고보니 우리 증조할아버지(증조할머니)는 어떤 분이었을까?'라고 관심을 갖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이를 알아볼 수 있는 단서를 전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은 결국 유전자 혹은 DNA의 산물이므로, 각자의 DNA는 선조 대대로의 유전자의 집적, 즉 유전자 집합체가 만들어 낸 것이다. 누구에게나 3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유전자를 주신 선조가 적어도 8명 정도 있다. 시간 축을 거슬러 올라가면, 유전자를 전해준 사람의 수는 배의 배로 증가하는데, 20대 정도 거슬러 올라가면 100만 명 정도가 된다. 30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10억 명 정도가 되는데(실제로는 중복되는 경우가 있어서 이 정도까지는 되지 않는다), 한 세대의 일본인 전부인 셈이다. 이렇게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한 사람 한 사람의 유전자가 주는 영향은 거의 무의미할 정도로 작아지지만, 2대(4명)나 3대(8명) 정도라면 한 사람 한 사람의 유전자가 상당히 의미 있는 영향을 주는 것이 분명하다. p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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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민족의 역사라도 미시적으로 세세한 부분까지 돋보기를 갖다대고 살펴보면, 민족 구성원이 가진 자기 역사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거시적인 시각을 가지고 역사의 큰 움직임을 주시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역사의 실상을 들여다 볼 수가 없다. 미시적인 부분에도 눈을 돌려서 그 시대를 구성하고 있던 민족의 전 구성원 개개의 생각까지 포함한 자기 역사의 집합체로서 역사를 다룰 때, 비로소 진정한 민족의 역사가 되는 것이다.

 

자기 역사를 쓴다는 의미는 개개인에게는 개인적인 의미의 문제로 끝나겠지만, 그와 동시에 집합체로서 동시대의 민족사 자체가 되기도 한다. 이 사실을 깨닫고 다시 보면 개인적 의미와는 별도로 각자가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은 개인을 넘어서는 의미까지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p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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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가 쓴 "한 사람의 자기 역사는 그 인생을 살아낸 자기 자신을 위해 쓴다"라는 대목을 정말 좋아한다. 자기 역사의 진정한 독자는 자녀도 아니고 손자.손녀는 더더욱 아니다. 결국 자기 자신이다.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을 위해 쓰는 것이 '자기 역사'이다. p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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