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 '착하다'는 의미는 인생의 가치와 의미를 자신이 발견하지 않고 스스로 느끼기도 전에 미리 주어진 가치와 의미를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억압하고 타인이 중요하다고 미리 정해놓은 것을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다. 저자는 지나친 규범의식은 존재감의 결여에서 나오는 보상심리라고 이야기한다. 삶을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 탐색하고 스스로 느끼는 것, 건강한 자신감의 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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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힘들게 만드는 지나친 규범의식은 존재감의 결여에서 오는 보상작용이다. 지나친 규범의식으로 삶이 힘겹게 느껴지는 사람은 어쩌면 자신의 존재가 유아적 의존욕구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몸 구석구석 모두 그 욕구에 점령되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므로 삶이 너무나 괴롭게 느껴진다. 일이 힘들다거나 입맛이 없는 것 같은 뚜렷한 이유도 없다. 그냥 사는 것 자체가 고통스럽다. 앉아만 있어도 힘겨운 것이다. 그토록 삶을 어렵게 느끼는 이유는 진정한 자기 존재의 대부분을 의식에서 배제한 채, 극히 일부를 마치 전체인 양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먹고 걷고 자는 자기 존재를 인정하지 못하고 진정한 내가 아니라고 여긴다. 실재하는 자신을 부정하고 있기에 일상생활의 경험 하나하나를 충분히 맛볼 수 없고 만족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이렇게 자아가 분열되는 일이 없다. 자신감이란 결코 남의 평가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분열된 사람은 주위에서 아무리 높이 평가해 주어도 스스로 자신감을 갖지 못한다.
반대로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해도 늘 안정된 마음으로 삶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은 유아적 의존욕구가 충족되어 있으며,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신을 의식에서 배제하는 법이 없다. 그가 인식하는 자신은 실제의 자신과 꽤 가까운 모습이다. 따라서 자신이라는 존재를 그토록 신경 쓰며 의식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자아가 분열된 사람일수록 그리고 무의식이 차지하는 영역이 큰 사람일수록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에 일일이 신경을 쓴다. pp5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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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등감이 있는 사람은 홀로 적진 속에 있는 것과 같다. 이 말은 인간의 동물적 본능의 위대함과 그 한계를 표현하고 있다. 심한 열등감으로 괴로워하는 사람, 즉 일종의 노이로제 증세를 보이는 사람은 성장 과정에서 혼자 적진 속에 있었던 것이나 다름없다. 다시 말해 어린 시절 가까이 있었던 사람은 모두 적이었다. 물론 저쪽 어딘가에는 적이 아닌 사람들도 여럿 있었겠지만, 가족을 비롯해 가까이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적이었다.
'적'은 상대의 자연스런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를 전혀 배려하지도, 이해해 주지도 않으며 오히려 자기 마음속에 잠재하는 증오나 미움을 어린 그를 통해 해결한다. 예컨대 아이를 짓궃게 놀리거나 구박하면서 내키는 대로 대한다. 아이를 장난감 다루듯 하며 마음의 울분을 달래기도 하고 자신의 우월성을 즐기며 좋아하지만, 장난감 취급을 당한 아이는 점차 마음이 병들어 간다. 아이에게 그들은 적일 뿐이다.
그런 환경 속에서 아이는 세상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를 고착화한다. 이들은 어른이 되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어릴 때와 똑같이 느끼고 있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적이라는 사실을 무의식중에 깨달은 아이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이는 동물적 본능으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이롭지 못한 존재임을 느낀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분명 적이라고 느끼는데도 그들에게 화를 낼 수 없었다는 점이다. 화를 내는 행위는 나쁜 짓이며 화를 내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 형제와 싸우면 안 되는 것은 물론, 부모에게 대드는 일은 신을 모독하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고 배운 것이다.
어른들에게 장난감 취급을 받을 때, 즉 그들에게서 모욕을 당할 때 마음속에서는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 분노는 표현되지 못하고 그대로 억압된다. 스스로 분노를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마음속에 화가 쌓이고 적을 향해야 할 증오의 불길이 오히려 자신을 향한 까닭에 스스로 죄의식을 갖게 된다. 열등감이 항상 죄책감을 수반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pp8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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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죄책감에 무릎을 꿇어서는 안 된다. 이는 죄나 양심의 문제가 아니다. 사실을 사실로서 인정하는 문제다. 당신 마음속에 가까운 사람에 대한 적의가 자리하고 있다면 이를 자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말이다. 또한 비겁한 사람은 가까운 사람을 착취한다는 것도 기억해 두기 바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마음이 건강한 사람들 사이에서 통하는 도덕이나 규범은 때로 마음이 병든 사람에 대한 착취를 정당화하는 논리가 되기도 한다. 비겁한 인간은 도덕이나 규범을 내세워 약한 사람의 심신을 착취한다. 반항을 잠재우는 데 도덕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다. 상대의 죄의식을 자극하여 자신의 이기주의를 관철한다. 이기적이어선 안 된다는 말은 상대에게만 해당될 뿐, 그들 자신과는 무관하다. 요컨대 그들은 당신을 자신과 동등한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다루기 쉬운 인간으로 얕보고 있을 뿐이다. p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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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한 부모 중에 스스로 좋은 부모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다들 자신이 부모로서 자격을 잃었다고 반성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형편없는 부모는 '절대 이혼하지 않는 부모'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p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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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유아적 의존욕구가 충족되어야 비로소 다른 사람의 자유를 인정할 수 있다. 유아적 의존욕구를 억압한 사람은 자유라는 이름을 내세워 남을 속박한다. 유아적 의존욕구가 충족되면 남의 언행에 그다지 심리적인 영향을 받지 않게 된다. 반면 욕구를 억압하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심리적 안정이 남의 언행에 좌우된다.
상처받기 쉬운 사람은 기본적으로 욕구 불만 상태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을 낮게 평가하는데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어릴 때 어리광 부리고 싶은 욕구를 채울 수 없었던 사람은, 어린 자신이 의지하던 중요한 존재에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못했기에 자기 평가가 낮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유아적 욕구를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 억압한 사람은 상처받기 쉽다."는 말과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상처받기 쉽다."는 말은 서로 통한다고 하겠다. pp11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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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는 자신의 감정은 대개 뭔가 기본적인 욕구를 외면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다. 즉 이유도 없이 불쾌해지는 것은 내면에 어떤 욕구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숨어 있는 욕구 중에 가장 일반적인 것이 유아성이다. p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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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는 다른 집 애들과 달리 부모한테 뭘 숨기는 법도 없고 정말 착해요." 하며 자랑스러워하는 부모는 지배적인 부모다. 지배적인 부모는 아이의 비밀을 성장으로 보지 않고 자신에 대한 반역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자신의 세계를 갖는 일에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이처럼 어른으로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혼자 하는 일에 흥미를 갖는 것도, 혼자 뭔가를 해내 만족감을 얻는 일도 불가능하다. 부모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일어난 일은 부모에게 빠짐없이 보고해야 한다. 그러면 지배적인 부모는 자기 아이가 밖에서 있었던 일을 뭐든 잘 얘기한다고 다시 한번 우쭐해 한다. 이런 부모는 앞서 언급한, 숨겨진 의존성을 가지고 있다. 의존성이 있는 부모는 아이의 모든 일을 지배하지 않으면 불안해한다. 강박적이리만큼 아이를 관리하려 한다. pp118-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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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스러운 모성애'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내용 중에 특히 두 가지가 기억에 남는다. 하나는 지나친 거짓 사랑보다는 부족한 참사랑이 아이들에게 상처를 덜 준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진실한 사랑은 간접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사랑은 진실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간접적으로 표현되는 사랑은 진실한 사랑일까?
간접적으로 애정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그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남의 마음을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이 표현하는 애정은 진심일 것이다.
그러나 직접적으로 표현되는 애정에는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다. 아이에게 멋진 풍경을 보여주기 위해 어디론가 데려가는 일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는 직접적인 사랑이다. 하지만 이때 아이는 그다지 멋진 풍경을 보러 가고 싶어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니, 가고 싶지 않다기보다 장난감을 갖고 놀고 싶을지도 모르고 친구와 탁구를 치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런 아이의 마음을 무시한 채 멋진 풍경 구경을 강요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아이를 위하는 '좋은 부모'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p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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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정서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자신의 자연스런 감정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높다. 자연스런 감정을 잃게 되면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물론 처음에는 의미를 찾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하지만 노력에도 한계가 있다. 의미란 자신이 몸소 느껴야 비로소 진정한 의미가 된다. 의미를 느껴야만 하기에 의식적으로 노력해 느끼기는 하지만, 긴장이 풀리면 바로 마음속의 무의미한 감정에 손을 들고 만다.
어떤 일에서 미리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은 언젠가 실패하게 된다. 결국 그러한 의식적인 노력은 한계에 부딪히게 되어 있다. 자연스럽게 느끼기 전에 미리 준비된 의미란 대부분 거짓말이다. 열등감이 심한 부모가 자신의 심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 낸 방어적 의미에 불과하다. 부모는 아이에게 준비된 의미를 느끼도록 강요한다.
미리 준비된 의미나 가치와는 반대로, 미리 준비된 '하찮은 일'도 있다. 자연스런 감정의 흐름대로 느끼기에 앞서 하찮다고 정해져 있는 것이다. 부모 스스로 몸소 경험할 용기가 없기에 하찮다고 여기며 멀리한다. 그리고 겁 많은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하찮다는 말을 이용한다. 겁 많은 부모는 아이가 그 일을 하찮게 느끼도록 요구한다. 허세를 부리는 부모는 겁 많은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이 일 저 일에 하찮다는 핑계를 댄다. 그리고 그 감정을 아이에게 강요한다.
아이는 마음속으로 그 일을 직접 해보는 데 의미를 두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잉 적응한 착한 아이는 해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른다. 그리고 하찮은 일로 느끼려 노력한다. 아이가 자기 자신을 속이기 위해 들인 힘은 대단하다. 소위 '착한 아이'가 쉽게 지치는 것도 모두 그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착실한 어른이 쉬 피로를 느끼는 것도 자신의 참모습을 속이는 데 에너지를 소진하기 때문이다. p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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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안은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천한' 사람들과는 달리 고상한 학문에 힘쓰는 사람들이었고, 돈 벌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과 사귀는 것조차 부끄럽게 여길 정도였다. 그리고 나는 그런 집안에 심리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 집안에는 미리 정해진 '의미'와 '가치'가 있었는데, 이는 자연스런 감정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나도 모르게 '욕심'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러한 집안 분위기 때문에 인위적인 감정으로 청년 시절을 보내던 나는 삶에 대한 허무감으로 괴로웠다. 아무리 노력해도 사는 일에 의미를 느낄 수가 없었다. 그만큼 '삶의 의미'를 애타게 찾았다. 사는 데 의미를 느끼고 있었따면 그토록 요란스레 찾아 헤매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삶의 의미'를 찾아 철학 책을 이리저리 뒤지는가 하면 혼자 글을 써보기도 하고 또 세계 각지를 정처 없이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선인들의 책을 뒤적이고 세상 끝까지 여행을 해봐도, 자연스런 감정을 억누른 채 인위적인 감정으로 살면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무리였다. 스스로 느끼기도 전에 미리 '가치'와 '의미'가 정해진 세계에서 살아온 사람은, 나뿐 아니라 누구든 사는 일에 의미를 느낄 수 없게 될 것이다.
이 세상에는 일그러지고 폐쇄적인 좁은 세계에 살면서도 고상한 세계에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선 그 세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pp179-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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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운 일을 괴롭다고 느껴도 되는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아무리 일이 고되고 힘들어도 그런 사람에게는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가망이 없는 사람은 마음속으로 괴롭다고 비명을 지르면서도 '괴롭지 않아, 괜찮아' 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금세 지쳐 버려 곧 무관심에 빠지고 만다.
무관심은 자기 방어다. 이제 더는 이런 식으로 살 수 없다는 신호다. 스스로 감정을 억압하며 살아온 결과다. 지루해서 더는 참을 수 없으면서도 즐겁다고 생각해야만 하는 억압이 몇 년 혹은 몇 십 년 계속된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다. p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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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호의를 받았다고 스스로 살 만한 가치가 있으며 사랑받는 존재라고 결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먼저 그 호의를 감지하고 만끽할 능력을 길러야 한다. 그러한 능력을 기르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결정하는 일이다. 호의에 꼭 보답하지 않아도 상대가 나와 있는 것을 좋아한다는 믿음을 이끌어내려면 자기 자신을 멸시하지 않아야 한다. p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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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싶다는 욕구가 행동의 주요 동기가 된 사람은, 자기 마음이 사랑에 굶주려 있으며 이미 황폐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 사랑에 너무 굶주린 나머지 이를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조금이라도 충족이 되면 그 정도를 알 수 있지만, 너무 굶주리다 보면 굶주려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한다. 그러다 자기 안의 갈증을 깨닫게 되면 깜짝 놀란다. (...)
그리고 마음이 메말라 있던 탓에 갈증조차 느끼지 못했음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어릴 때 마음의 성장에 필요한 사랑이 부족했던 탓에 어른이 된 후에도 별 관계없는 사람에게까지 사랑을 요구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애정욕구가 채워지지 않아 자신의 마음을 소홀히 다루는 것은 알코올중독자가 몸을 소중히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이 점을 깨달은 사람은 먼저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자신을 소중히 한다는 것은 자신에 대해 너그러워진다는 뜻이다. 다정한 어머니가 나를 대하듯 자기 자신을 보살피는 일이다. 스스로 이해자가 되고 보호자가 되는 일이다. 절대 자기 자신에게 비판적이어선 안 된다.
애정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사람은 비판적인 부모에게 시달리며 자란 사람이다. 애초에 부모님이 이해심 깊은 사람이었다면 좋았겠지만, 이를 핑계 삼는다고 지금의 자신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pp21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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