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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기록/지리산에 머물다19

구름이 흩어지자 눈부신 새아침이 - 지리산의 가을 ② 육체적 피로는 역시 가장 좋은 수면제 역할을 했다. 추위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몇 시간은 단잠을 잘 수 있었다. 새벽 여섯 시 반, 하늘에 붉은 기운이 잠시 비치는가 했더니 이내 사그라들었다. 날이 밝기를 고대했는데 간밤에 몰려온 구름은 산을 송두리째 뒤덮고 말았다. 산은 어제의 찬란한 빛을 완전히 감춘 채 짙은 장막 속에 몸을 숨겼다. 오늘 걸을 길은 뱀사골 대피소에서 장터목 대피소까지 18.5km. 내 걸음으로는 꼬박 하루가 걸리는 길이었다. 능선을 따라 이어진 종주 코스라서 길이 그다지 험하진 않지만, 찌푸린 날씨는 산행의 즐거움을 반감 시키기 마련이다. 가을의 운무는 여름과 또 달랐다. 안개에 젖은 신비한 여름 숲속을 습한 공기를 허파 가득 들이마시며 따라갈 때의 낭만과는 딴판으로 가을의 운무는 스.. 2005. 10. 31.
산도 붉고, 물도 붉고, 내 마음도 붉고 - 지리산의 가을 ① 그대가 곁에 있어도 그대가 더욱 그립다고 했던가. 가을이 바로 곁에 다가왔는데도 가을이 한층 더 그리워졌다. 이 가을을 온통 품에 안고 싶어서, 가을의 심장부로 뛰어들고 싶어서 산을 찾았다. 내 생애 최고의 가을, 그 가을이 지리산 속에 있었다. 태풍이 없어서인지 올 단풍은 유난히 고운 빛깔을 뽐냈다. 산에서 보낸 사흘 동안, 원없이 걸었고, 가을의 정수를 오롯이 들이키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한낮의 햇살이 환하게 내리쬘 무렵 뱀사골 계곡의 입구, 반선에 도착했다. 지난 여름 폭우가 쏟아졌을 때 이후 두 달만의 지리산행이다. 계곡길에 들어서자마자 원시림이 주는 광대한 기운이 나를 감동시킨다. 숲은 까마득하게 오래된 느낌을 주는 동시에 막 새 옷으로 갈아입은 듯 해맑은 표정으로 내게 인사를 해왔다. 이.. 2005. 10. 28.
너는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한다 - 지리산의 여름 큰 산은 하산길도 만만치 않다. 1박 2일 산행의 막바지, 지친 걸음으로 산을 내려가노라니 아직 멀었냐는 소리가 입에서 절로 나온다. 그러자 마침 동행하던 대피소 직원분이 '집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오고 싶을 텐데'라며 놀린다. 그래, 돌아가자마자 금세 보고 싶어지겠지. 그리워 몸살을 앓겠지. 대체 이 산의 무엇에 매료된 걸까. 단 한 차례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법이 없이, 구름과 바람과 빛과 시간과 함께 흐르는 산. 볼 때마다 새롭고 변화무쌍한 산. 한없이 깊고 넓은 그 품 안에 수많은 숲과 나무와 생령들을 담고 있는 산. 그는 한 번도 자신의 전모를 보여주지 않았다.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부분은 여전히 신비에 쌓여 있고, 그래서 사람을 홀린다. 미치게 한다. 근 한 달만에 다시 찾은 지리산이었다... 2005. 7. 28.
10년만에 애인을 만나러 떠났다 ㅡ 지리산에서 참으로 오랜만에, 아름다운 이를 만나고 왔다. 지리산, 그리운 지리산. 장엄함으로 친다면 남한에서 그를 따를 곳이 있을까. 십 년만의 재회였다. 그는 여전히 거기 있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시류에 흔들리지 않는 진중함을 지닌 채로, 모든 존재를 품에 안아 줄 듯한 넉넉한 가슴까지 아마도 나는 이만한 애인을 쉽게 찾지는 못하리라. 산 같은 사람이 얼마나 그리웠던가. 산의 마음, 변함 없는 그 마음이. 작은 이익에도 쉽게 부서지고, 가랑잎처럼 이리저리 흩날리는 마음들을 보며, 산처럼 든든할 수 있기를 바랐다. 자신을 바로 세우기 어려운 세상살이 속, 산의 굳건한 어깨를 바라볼 때면 항상 깊고 따스한 위로를 받았다. 갖가지 업무로 복잡한 날들의 연속인 지난 주에는 정말 어디론가 탈출하고픈 마음 뿐이었다. 인.. 2003. 1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