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이야기/학교 & 교육 이야기47 갈팡질팡 교과교실제 3월 3일, 입학식 바로 다음날이었다. 만기가 되어 새로 옮긴 학교였는데, 첫날부터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에 깜짝 놀랐다. 학생들이 자기 교실 없이 매시간 돌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J중학교는 교과교실제 시범학교로 교육청 예산을 지원받고 있었는데, 일주일 정도 적응 기간도 없이 수업 첫날부터 학생들이 가방을 멘 채로 온 학교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예컨대 1학년 1반이라는 이름이 적힌 교실은 조례 시간에 출석을 확인할 때, 그리고 7교시 수업이 모두 끝난 후 종례를 할 때 잠깐 모이는 공간에 불과했고, 각 교실은 국어실, 사회실 등으로 쓰였다. 점심시간에도 자기 교실로 가지 말고 5교시 수업할 교실에 미리 가 있으라고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지도했다. 전교생의 사물함은 로비 공간을 크게 확장해서 모두 .. 2019. 1. 15. '학교평가'라는 괴물 똑같은 사람이 때와 장소에 따라 상반된 행동방식을 보일 때 우리는 놀란다. D고에서 근무하던 첫 해와 둘째 해, 나는 그런 색다른 경험을 했다. 동일한 학생들이 일 년만에 생활 태도가 완전히 바뀌는 모습을 본 것이다. 공고다 보니 신입생의 입학 성적은 별반 차이 없었고, 2, 3학년은 그 전 해와 같은 학생들이었다. 교사들도 공립학교다보니 해마다 구성원이 좀 바뀌긴 했으나 교무실 분위기는 비슷했다. 달라진 것이라고는 새로 부임한 학교장의 학교운영 방침뿐이었다. 내가 부임한 첫 해에는 A교장이 맡고 있었다. 공고는 학교평가 항목이 일반고와 다르다. 학생들이 자퇴를 많이 하지 않아야 학교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그러다보니 A교장은 학생들이 아무리 무단조퇴, 무단결석이 많아도 학생들을 처벌하지 않.. 2018. 11. 20. 교육적 경험(educative experience)에 대하여 3학년 국어를 맡고 있지만, 2학년 진로 수업도 매주 한 시간 지원하고 있다. 진로 과목은 도서관에서 자유 독서를 많이 하는데, 지난 주에는 학생 두 명이 국어 과제를 마무리해도 좋으냐고 물어서 허락해 주었다. A4 종이를 8등분하여 접어서 자신의 여행 경험을(다른 경험도 좋단다)을 간단한 그림과 대사로 그려넣고 마지막 칸에는 그 경험에 대한 해석을 적는 것이었다. 과제를 하는 녀석의 주제는 태국 여행이었고 여행 경험이 한눈에 잘 들어오게 정리되어 있었다. 나도 한번 해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 만큼 괜찮은 과제였다. "재미있는 과제구나!" 내 반응에 열심히 그림에 색깔을 칠해넣던 학생은 "재미는 없어요" 한다. 그냥 숙제니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묻는다. "그런데 쌤, 이게 대체 국어랑 무슨 상관.. 2018. 11. 12. 선생님은 B등급입니다 4월 벚꽃이 다 질 무렵이었을까. 정확히 언제인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그 무렵쯤의 일로 기억한다. 핸드폰에 한 통의 문자가 도착했다. 뭔가 싶어 열어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선생님의 성과상여급 등급은 B입니다.” 지난 한 해의 업무에 대해 학교 측이 평가한 성과급 등급을 알리는 문자 통보였다. 교사의 성과상여급은 S등급, A등급, B등급의 3단계로 차등 지급되므로 B는 사실상 가장 낮은 등급이었다. 단지 B여서 속이 상한 건 아니었다. 작년에 나는 중학교 3학년 담임을 맡았다. 어느 학교든 고입 원서로 상대적으로 업무가 많은 3학년 담임이 B를 받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교원의 업무는 물건을 사고파는 일처럼 수량화된 성과가 나오는 일이 아니다. 학생을 상담하고 지도하는 일이나 담당 교과의 수업을 .. 2018. 4. 15. 방과후수업 2 "선생님, 방과후수업 꼭 해야 해요?" J중학교에서 이 질문을 들었을 때 조금은 비참한 심정이 되었다. K고에서 학생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강제 보충수업에 회의를 느껴 중학교로 돌아왔는데 비슷한 질문을 여기에서 또 들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이 질문이 내가 가는 학교마다 반복되는 질문이며 비슷한 일이 끊임없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교사들마다 스트레스를 민감하게 받는 부분이 다 다르다. 수업에 스트레스가 많은 교사도 있고, 생활 지도나 담임 업무를 가장 힘들어하는 교사도 있고, 행정적인 업무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교사도 있다. 반면에 행정 업무가 가장 편하다는 교사도 있다. 내 경우에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방과후수업처럼 정규 수업 이외에 학생들에게 배움을 강요하는 것.. 2018. 2. 19. 방과후수업 1 보충수업(방과후 수업)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8월 중순, 한여름의 더위가 채 물러가기 전이었다. 3월 첫날부터 방학 바로 전날까지 보충수업을 하고 2주간의 여름방학을 지나 8월 3일 개학하여 다시 보충수업을 시작했을 때, 나는 더는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다. 육체적 한계라기보다는 '심리적 한계'였다. 정규수업 7시간을 마치고 피곤한 상태의 학생들에게 8, 9교시 2시간 동안 수능 문제를 푸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했다. 보충수업은 두 가지 방식으로 운영된다.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하는 경우와 정규 수업처럼 일률적으로 배정된 시간표를 그대로 따라야 하는 학교도 있다. 2002년 학생들에게 아침을 먹이자는 밥차 운동이 시작되면서 고교 0교시 보충수업은 폐지되었지만 이후로 각 학교는 편법을 .. 2018. 2. 19. 승진이 뭐 길래 새 학기가 시작된 지 두 달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옮긴 학교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다른 부서에서는 무슨 일이 있는지 잘 모르던 차에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2학년 P반의 담임 이름으로 교무부장이 올라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알기로 2학년 P반의 담임은 기간제 교사로 일하고 있던 이현숙 선생이었다. 자초지종을 물으니 옆자리의 박선생이 해도 해도 너무한다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원리 이선생이 담임을 맡기로 되어 있었는데, 승진 점수가 부족한 교무부장이 점수 때문에 이름만 담임으로 올려놓고 실제 담임 역할은 이선생이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종례와 담임 업무 모두 이선생이 하고 있으며, 상담일지 작성을 위해 학생 상담은 매일 몇 명씩 불러서 교무부장이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 2018. 2. 17. 생각나는 것 메모 ** 창의성 발현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분위기. 무수한 시행착오가 허용되는 것. 한 문제 더 맞고 안 맞고에 매달리는 한 창의성은 요원하다. ** 전문가가 되려면 피드백이 필요하다. 교사들에게 자기 수업에 대한 적절한 피드백이 제공되지 않는 게 문제. ** 교과에 대한 아이들의 심리는 단순하다. 아이들은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으로부터 어떤 것을 배울 수 없다. ** 만물의 상호연관성을 깨닫고 배우는 것은 매우 중요하나 그것이 지금의 주제 통합 교육방식으로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다. ** 배움의 출발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다. 호기심을 학습의 연결 고리로 삼아 우리가 살아갈 세상에 대한 깊은 관심과 이해를 촉진하는 것이 중요. ** 질리안 린(뮤지컬 캣츠, 오페라의 유령 안무가.. 2017. 7. 16. 실패한 정책, 부진아 제로 중3 담임을 맡아 바쁜 나날을 보내던 무렵이었다. 4월 말쯤 되었을 때 갑자기 3학년 국영수 담당 교사와 부장 교사를 대상으로 한 회의가 소집되었다. '학습부진아'에 대한 대책회의였다. 작년까진 아무 말 없다가 갑자기 왠일인가 싶었다. 교육감의 지시 사항이라 했다. 성취도평가의 결과를 학교평가와 교감의 승진에 반영한다는 내용이었고, 그래서 각 학교마다 갑작스럽게 대책회의에 들어간 거였다. 1997년부터 현장에서 일해온 나는 지금껏 수많은 정책사업이 유행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을 지켜봐왔다. 국어과의 예를 들면, 2000년대 초반에는 아침독서가 주류였고 이후에는 디베이트, 책쓰기가 강조되다가 지금은 인문학, 연극 등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런 활동들이 그 자체로는 교육적 가치가 있지만, 각급 학교의 사정을.. 2017. 6. 25. 좌파 교과서? 국어 교과서가 국정에서 검인정으로의 전환을 앞두고 있던 2009년의 일이다. 다음 해에 가르칠 23종의 교과서가 도서실에 속속 도착했다. 그간 국정교과서만 사용하다가 교과서를 처음 선정해보게 되어 마음이 조금 설렜다. 교과서 선정 절차는 동교과 교사들로 이루어진 교과협의회에서 3종의 교과서를 우선 추천하면 학교운영위원회가 이 중에서 최종 결정을 하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교과부장(여타 업무부장과 달리 이름만 부장으로 국어과에서 필요한 사항을 결정하는 직책이다)을 맡고 있어서 교과서 선정의 책임자는 나였다. 교과협의회를 시작하기도 전에 최선생이 K사의 교과서로 정하자고 몇 번 말을 했지만 그다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어 교사가 6명이고 어짜피 전체 협의를 거쳐서 결정되기 때문이었다. 몇 종의 교과.. 2017. 6. 22. 배움이 일어나는 조건 _ 다시 중학교로 중학생을 가르치다가 인문계 고등학교 수업을 하게 되면 영혼에 깊은 평화가 찾아온다. 중학교 교실의 소음도, 시간마다 수업을 방해하는 훼방꾼들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불쑥불쑥 교실을 돌아다니는 학생도 없다. 고등학생에게는‘조용하라’고 소리 지를 필요도, 친구를 괴롭히지 말라고 윽박지를 필요도 없다. 중학교 남학생들은 말로는 절대 제압되지 않는다. 일정 정도의 위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고등학생들과는 웬만한 건 다 대화로 풀어갈 수 있다. 고등학교 교실의 유일한 단점은 학생들이 자기 몸이 피곤하다보니 자주 조는 경향이 있다는 것 정도다.교사 1인당 학생 수도 중학교보다 고등학교가 적다. 그래서 고등학교는 교사의 주당 수업 시수도 중학교보다 적다. 중학교가 사춘기 학생들을 상대하느라 진을 빼고, 수업도 생.. 2017. 6. 18. 메모 - 곽노현 강연을 듣고 1. 스웨덴은 일 년에 학교에 오는 공문이 서너 개라 한다. 일주일도 아니고 한 달도 아니고 일년에.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개가 쏟아진다. 한국 학교만큼 관료주의가 심한 곳도 없다 한다. 교육부와 교육청이 교육활동을 지원하는 게 아니라 교사와 학교를 통제하는데 골몰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일본이 남긴 식민교육의 잔재로서 해방 후 7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의 학교제도 곳곳에 남아 있다. 제도는 결국 100년을 살아남는 것이다. 제도를 바꾸는 일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 2. 곽노현은 우리나라 학교의 조직 풍토, 즉 교장과 교사, 교사와 동료 교사의 관계가 바뀌지 않고는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민주 시민으로서의 기본 자질을 길러줄 수 없다고 보고 있었다. 공교육이 사교육과 다른 점, 공교육이 반드시 해야 할 일들.. 2013. 11. 8. 자사고와 특목고, 삶의 다양성을 배제한 교육 자사고와 특목고, 삶의 다양성을 배제한 교육 학교 현장에서 십수 년을 근무하며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교육에 관한 한 가지 커다란 ‘환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공간과 분리된 어떤 특별하고 좋은 교육이 있다고들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색다른 수업 방식이나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서 교육의 다양성과 질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학교 선택의 기회가 보장될수록 더 나은 교육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자사고와 특목고의 존립을 떠받치고 있는 논리입니다. 교육을 공공재가 아니라 상품과 같은 소비재로 바라보는 시각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러한 논리에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함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다양성은 교육 프로그램의 다양성이 아니라 삶.. 2013. 6. 9. 전문계 고등학교에 와서 드디어 방학. 우여곡절 끝에 한 학기가 지났다. 몇 달이지만 일 년쯤 훌쩍 간 것 같다. 3, 4월 적응하느라 어리버리 지나가고 5월부터는 날마다 가슴을 쳤다. '아니 내가 어쩌자고 여기를 왔지?' 이 모든 걸 미리 알았다면 이곳을 선택했을까. 내 대답은 확실히 '아니오', 이다. 인문계의 야자와 보충을 피해서 이리로 왔더니 그보다 훨씬 더한, 그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비합리성' 이 이곳에 있었다. 냥냥군 왈 "내가 뭐랬어? 가지 말랬잖아. 누난 꼭 그걸 경험해봐야 알아?" 그랬다.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문제는 아니었는데 머리 나쁘면 직접 경험해보고 아는 수밖에.... 내신 쓰기 전, 그저 애들이 공부를 좀 못하겠거니 한 내 생각은 전적으로 잘못되었음이 드러났다. 학생들은 그저 공부를 못하는 것이 아니.. 2011. 7. 17. 핀란드, 스웨덴, 프랑스 혁신학교 지난 목욜, 학교혁신 국제심포지엄에 가서 스웨덴, 핀란드, 프랑스의 사례를 들었다. 통역사와 함께 한 발표라서 내용이 싹싹 안 들어오고 늘어지는 감은 있었지만, 그 나라의 교장/교사가 직접 이야기를 전해주어서 글이 아닌 피부로만 느낄 수 있는 어떤 감응이 있었다. 그분들의 소신과 철학, 그리고 권위라곤 전혀 없는 소탈한 말하기 방식이 좋았다. 유럽의 학교들은 지속적인 '영감'을 줄 수 있는 학교환경을 창조하고자 했고, 어떤 기능/능력이 아니라 '가치'를 기르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교과서 진도를 나가는 방식을 버리고 한 학기 동안 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공부를 하고 있었다. 핀란드 스트렘뵈리 초등학교 (프레네의 철학을 따름) - 옛 건물을 리모델링하면서 교육환경을 굉장히 .. 2011. 5. 15.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