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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절만>에서 나는 지표면의 절반을 자연에 위임함으로써만 자연을 이루는 숱한 생명체들을 구하리라는 희망을 품을 수 있다고 주장하려 한다. 나는 우리 종과 나머지 생명을 파멸로 내몰 수도 있는 궤도에 올라타게 한 것이 우리의 동물적 본능과 사회적, 문화적 재능의 독특한 조합임을 설명할 것이다. 우리는 인문학과 과학이 지금까지 우리에게 알려준 것보다, 우리 자신과 나머지 생명을 훨씬 더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여전히 그 사이에서 헤매고 다니는, 교조적인 종교 신앙과 무능한 철학적 사고라는 썩어가는 늪에서 가능한 한 빨리 빠져나올 길을 찾는 편이 현명할 것이다. 인류가 지구의 생물 다양성을 훨씬 더 깊이 이해하고 보호할 조치를 신속하게 취하지 않는다면, 곧 지구의 생명을 이루는 종들이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지구의 절반을 할애하자는 제안은 그 문제의 규모에 맞춘 일자척인 응급 대책이다. 나는 지구의 절반이나 그 이상을 보전 구역으로 설정해야만, 환경을 이루는 생물들을 구하고 우리 자신의 생존에 필요한 안정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p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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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도 종의 상호의존성이라는 철칙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우리는 이미 만들어진 상태로 에덴동산에 놓인 침입종이 아니었다. 게다가 섭리에 따라 그 세계를 통치하도록 정해져 있ㄷ너 것도 아니었다. 생물권은 우리에게 속해 있지 않다. 우리가 생물권에 속해 있는 것이다. 이토록 아름답고 풍부하게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생물들은 38억 년에 걸쳐 자연 선택을 통해 진화한 산물이다. 우리는 구대륙 영장류 중 운 좋은 한 종으로서 여기까지 이른, 진화의 산물 중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질학적 시간으로 보자면 마지막으로 눈을 한 번 깜박이기 전에야 비로소 생겨난 존재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생물권에서 살아가도록 적응해 있다. 우리는 그 점을 이제야 비로소 이해하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는 나머지 생물들을 보호할 수 있지만, 여전히 무분별하게 생물권을 파괴하고 넓은 영역을 입맛대로 대체하려는 충동에 사로잡혀 있다. p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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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멸종이 지닌 더 깊은 의미를 살펴보면서 멸종이 장기적으로 얼마나 중대한 문제인지를 언급해 보겠다. 이런 종들이 우리의 손에 사라질 때, 우리는 지구 역사의 일부를 내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생명의 나무에서 잔가지를 잘라내다가, 이윽고 큰 가지들까지 쳐내고 있다. 종은 저마다 독특하므로, 이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지 못한 채 과학 지식을 담은 책을 그냥 덮어버리는 꼴이다. 그리고 몇 권은 지금 영원히 사라졌다.
멸종의 생물학이란 즐거운 주제가 아니다. 멸종 위기에 처한 종과 갓 멸종한 종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종의 죽음 앞에 몹시 가슴이 미어진다. 지구 생물 다양성이 줄어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이 종들은 인류 도덕의 자질과 범위를 여실히 드러낸다. 우리는 우리 손으로 위기로 내몬 종들에게 이제 지속적으로 주의를 기울이고 배려를 해야 한다. 종교인이든 아니든 간에, 유대교와 기독교의 '창세기'에 실린 신이 내린 우아한 명령은 신성하게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물에 무수한 생명이 우글거리도록 하고, 새들이 창공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도록 하라."라는 말씀이 바로 그것이다. pp7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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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전히 매우 탐욕스럽고 근시안적이며 집단으로 나뉘어서 아웅다웅하고 있기에, 현명하게 장기적인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 우리는 과일나무를 두고 다투는 유인원 무리처럼 행동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우리의 몸과 마음에 최적인 조건에서 어긋나게끔 대기와 기후를 바꿈으로써, 우리 후손들이 살아가기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도 바로 그런 행동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우리는 생명 세계의 대부분을 파괴하고 있다. 상상해 보라! 자연 세계의 종을 마치 잡초나 부엌의 해충인 양 없애면서, 만들어지는 데 수억 년이 걸린 지구의 생물 다양성을 우리가 파괴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부끄럽지 않은가?
지구가 쑥대밭이 되기 전에 파괴를 중단시키려면, 적어도 우리는 우리 종이 정말로 어디에서 왔으며 현재 어떤 존재가 되어 있는지를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자기 자신과 자신의 부족을 넘어서는) 초월적인 목표가 인간의 뇌에서 나온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는 많다. 즉 그 기원을 따지면 생물학적인 것이다. 삶의 의미를 이해하려는 것, 우리가 무엇을 알고 어떻게 왜 아는지를 알고 싶은 충동이야말로 모든 과학과 인문학의 원동력이다. 인류 진화의 기본 요소들을 이해하고 그것들의 연결 방식에 따라 현명하게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고귀한 일이다. 그 연결 양상은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다. 생물권은 인간의 마음을 낳았고, 진화한 마음은 문화를 낳았고, 문화는 생물권을 구할 방안을 찾아낼 것이라고. pp7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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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접한 바로는 야생 환경과 그런 땅에서 아직 보호받고 있는 장엄한 생물 다양성을 경멸하는 가장 배려심 없는 태도를 보이는 이들은 야생 환경이나 생물 다양성을 직접 경험한 적이 거의 없는 이들일 때가 많았다. 여기에서 위대한 탐험가이자 자연사 학자인 알렉산더 폰 훔볼트의 말을 인용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그 세계를 본 적이 없는 이들이 지닌 세계관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세계관이다." pp118-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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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인류세 동안 지구의 생물 다양성이라는 방패는 산산조각 나고 있고, 조각난 것들도 사라지고 있다. 대신에 인류의 창의성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약속이 제시되고 있다. 우리가 통제권을 확보하고, 감지기들을 통해 감시하면서, 이런저런 단추를 눌러서 원하는 방식으로 지구를 운영할 수 있기를 바라는 이들도 있다. 그런 이들에게 나머지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반박해야 한다. 지구를 어느 한 지적인 종이 조종하는 진짜 우주선처럼 운영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런 크나큰 위험한 도박을 한다면 어리석기 그지없을 것이다. 우리의 과학자들과 정치지도자들이 이루 상상할 수 없이 복잡한 생태적 지위들과 그 지위들을 채운 수백만 종들의 상호작용을 대체할 수 있을 무언가를 내놓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우리가 그런 시도를 한다면, 그리고 설령 그런 시도가 얼마간 성공한다고 할지라도, 되돌릴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하자.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나올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행성은 단 하나뿐이며, 그런 실험은 단 한 번만 할 수 있다. 안전한 대안이 열려 있는데, 굳이 세계를 위협하면서 불필요한 도박을 할 이유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pp246-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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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세계의 모든 주권 국가에는 일종의 보호구역 제도가 있다. 세계의 보호구역은 육지에 약 16만 1000곳, 바다에 약 6만 4000곳이 있다. 유엔환경계획과 국제자연보전연맹의 공동 사업인 세계보호지역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보호구역의 총 면적은 지구 육지 면적의 15퍼센트, 바다 면적의 2.8퍼센트에 조금 못 비치는 수준이라고 한다. 그 면적은 서서히 증가하고 있다. 이 추세는 고무적이다. 그 수준까지 이끌어낸, 세계의 보전에 힘쓴 이들은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 수준이 멸종의 가속을 단지 늦추는 것이 아니라 중단시킬 만큼 될까? 불행히도 너무나 미흡한 수준이다. 보전 노력이 증가하는 추세가 금세기의 나머지 기간에 걸쳐 지구 생물 다양성의 대부분을 충분히 구할 수도 있지 않을까? 불확실하지만 나는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보며,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구해지는 생물 다양성은 훨씬 낮을 것이다. p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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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절반이라는 해결책은 지구를 양쪽 반구로 나눈다거나, 대륙이나 국민 국가 규모의 큰 덩어리로 나눈다는 의미가 아니다. 게다가 어떤 지역의 소유권을 바꾸라고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곳이 해를 입지 않은 채 존속할 수 있게 하자는 것뿐이다. 그런 현편으로, 가능한 한 넓은 구역의 자연을 위해, 따라서 아직 살아있는 다른 수백만 종을 위해 놓아두자는 의미다.
지구의 절반을 구하는 데 핵심이 되는 것은 생태발자국이다. 생태발자국은 평균적인 사람이 필요한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데 요구되는 공간의 양이라고 정의된다. 거주지, 민물, 식량 생산과 운송, 개인 교통, 통신, 관리, 다른 공공기능, 의료 지원, 매장, 오락에 쓰이는 땅을 포함한다. 생태발자국이 전 세계에 조각나서 흩어져 있듯이, 지구에 살아남은 야생지들도 육지와 바다에 흩어져 있다. 조각은 주요 사막과 야생 숲부터 몇 헥타르 넓이의 복원된 서식지에 이르기까지 크기가 다양하다.
하지만 늘어나는 인구와 1인당 소비 때문에, 지구의 절반이라는 전망이나 인류세에 족쇄를 채우려는 다른 어떤 수단이 헛수고로 끝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럴지도 모르지만, 인구가 21세기의 나머지 기간뿐 아니라 22세기까지도 예전처럼 성장을 계속한다고 할 때에만 그렇다. 하지만 생물학의 이 측면에서 인류는 인구 통계학적 주사위를 던져서 이겨온 듯하다. 인구 증가율은 법률이나 관습 등 다른 어떤 압력 없이도 자동적으로 감소하기 시작했다. pp262-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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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미래에 관한 논의를 확장해 나머지 생명과 연관 짓는 일은 이미 했어야 했다. 인간의 디지털화를 꿈꾸는 실리콘밸리의 몽상가들은 그 일을 하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그렇다. 그들은 지금까지 생물권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인간 조건이 아주 빠르게 변하고 있기에, 우리는 우리와 독자적으로, 그리고 대가 없이 세계를 운영해왔던 수백만 종들을 더욱 빠르게 소멸시키거나 그들의 유용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인류가 지구의 기후를 바꾸고, 생태계를 없애고, 지구의 천연자원을 고갈시키는 자살 행위를 계속한다면, 우리 종은 조만간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릴 것이고, 이번에는 우리 뇌의 의식적 부분이 쓰여야 할 것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선택일 것이다. 우리는 유전적인 토대를 지닌 인간의 본성을 간직하는 한편으로 자기 자신과 생물권의 다른 생물들에게 해를 끼치는 활동을 줄이는 존재론적 보수주의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나머지 생명이 사라지도록 놓아둔 채, 우리 종에게만 중요한 변화들을 일으킬 신기술을 사용할 것인가? 결정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pp292-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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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 종이 물려받은 아름다운 세계가 38억 년에 걸쳐 건설된 생물권이라는 점을 늘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그 안에 사는 종들의 복잡한 사항들을 일부만 알 뿐이며, 그들이 협력해 지속가능한 균형을 이루는 과정을 최근에야 이해하기 시작했다. 좋든 싦든, 준비가 되었든 아니든 간에, 우리는 생명 세계의 마음이자 청지기다. 우리의 미래는 궁극적으로 그 점을 이해하는 데 달려 있다. 우리는 아주 긴 야만 시대를 거쳐왔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는 해도 지금 나는 나머지 생명을 고려하는 초월적인 도덕 규범을 채택할 만큼 우리가 충분히 배웠다고 믿는다. 그 규범은 단순하고도 쉽다. 생물권에 더는 해를 끼치지 마라. p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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