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프타운도 노예 거래가 활발했다. 유럽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엔 정착민 수가 확 늘지 않았고 농업엔 노동력이 필요했다. 보어인들은 마다가스카르와 인도네시아 등지에서까지 노예를 사들였다. 노예제는 케이프타운이 영국령이 되면서 금지되었고, 보어인은 영국의 정책에 반발한다.
보어인들이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한 이유는 노예도 필요했지만, 영어를 못해 2등 국민 취급을 받는 것도 싫었고, 칼뱅주의자로 인종차별을 당연시했던 그들이 종교적 신념을 지키고자 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이들은 과감하게도 그간 애써 일궈온 케이프타운의 터전을 버리고 내륙으로의 대이주를 결정한다. 이는 내륙에 살던 원주민과의 충돌을 의미했고 보어인은 강력하게 저항하는 줄루 족 등 원주민과의 싸움에서 이겨 결국 내륙을 차지한다. 그렇게 해서 세운 나라가 오렌지자유국, 트란스발공화국, 나탈공화국이다.
사진은 케이프타운의 노예무역의 역사를 보여주는 슬래이브 롯지. 노예선에 마치 물건처럼 빈틈없이 노예를 실은 모습이 끔찍하다(세 번째 사진). 3분의 1은 항해 중에 죽었다고 한다. 사진을 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20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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