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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이야기/남아공

케이프타운 9. 넬슨 만델라와 로벤섬

by 릴라~ 2019. 7. 19.

남아공 흑인 지식인층의 저항운동의 중심엔 ‘아프리카 민족회의(ANC)’가 있었다. 요하네스버그에 흑인 최초로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던 만델라도 ANC의 리더다. ANC는 남아공에 체류할 때 인도인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애쓴 간디의 투쟁방식을 본받아 처음엔 비폭력투쟁을 했다. 그러나 다수인 흑인들의 비폭력투쟁은 씨도 먹히지 않았고 만델라는 무장투쟁으로 전환한다. 1962년 사십대 중반의 나이에 내란죄로 체포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케이프타운에서 배로 30분 정도 걸리는 로벤섬. 시내 언덕에서 육안으로 보이는 이곳엔 남아공의 정치범을 가두는 감옥이 있다. 넬슨 만델라가 27년 감옥생활 중 18년을 복역한 곳이다. 연안이지만 주변에 파도가 심해 탈출이 어려워서 이 섬에 감옥을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배멀미를 심하게 하는 나는 가기로 한 날에 날씨가 나빠서 아쉽게도 로벤섬은 들르지 못했다.

 

아파르트헤이트를 종식하는데 결정적 영향을 준 사건은 1976년 요하네스버그 인근의 흑인주거지 소웨토에서 벌어진다(만델라도 여기 출신이다). 학교에서 아프리칸스어(보어인을 ‘아프리카너’라고도 부르는데 이들의 언어가 아프리칸스어로 네덜란드어에서 변형된 말)를 사용하라는 정부 지시에 반발한 고등학생들이 시위에 나섰다. 경찰의 발포에 13세 소년이 숨지면서 주민 전체가 봉기했고 약 700명이 목숨을 잃은 비극적 사건이다. 이후 남아공은 국제적으로 고립되고 흑인들의 저항도 더욱 거세져 정부가 계엄령을 선포해도 막을 수 없을 정도였다. 결국 클레르크 대통령은 1990년에 만델라를 석방하고 대합의를 통해 인종차별법을 폐지한다. 1994년 만델라는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지금 케이프타운 법원 앞에는 백인 전용, 유색인 전용이 쓰인 아파르트헤이트 시절의 벤치가 나란히 있고, 시티센터 앞에는 넬슨 만델라가 손을 흔들고 있다. 300년 전부터 이 땅에 이주한 백인들은 흑인을 철저히 배제했지만 태초부터 여기 살아온 원주민의 후예 만델라는 그들을 사면하고 화해와 공존의 길을 택했다. 백인 정부는 그를 로벤섬의 폭풍 속에 영원히 가두어두려 했지만 그는 아무도 감금하지 않았다. 그에겐 흑인 동지뿐 아니라 자신을 헌신적으로 도운 백인 동료들이 있었고 흑인과 백인 모두로부터 존경 받았다. 남아공 사람들은 그를 ‘타타(아버지)’라고 부른다. 7월 18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넬슨 만델라의 날이다.

 

*20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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