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대구-광주 고속도로(옛 88고속도로)를 타고 대구를 벗어나 첫 번째로 만나는 지역이다. 지리산에 갈 때마다 지나가는 동네인데, 거창, 함양, 남원, 광주 등을 제치고 어쩌다가 가장 나중에 방문한 지역이 되었다. 가까운 곳이다보니 오히려 관심에서 멀어진 것 같다.
고령의 명소는 대가야의 위엄을 그대로 전해주는 지산동(지산리) 고분군이다. 신라의 위협으로 김해 중심의 금관가야가 세력이 약해지면서 뒤이어 번성한 대가야. 4~6세기 대가야의 고분이 700여기나 발굴된 곳이 고령이다.
사실 가야가 역사적 주목을 받은 건 그리 오래 되지 않는다. 우리 고대사 연구가 삼국시대 위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광대한 고분을 남긴 문명인데 그간 너무 무심했지 않나 싶다. 중요 유물은 대부분 도굴되었지만 남은 유물만 봐도 가야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일본에서만 나오는 야광조개국자 등이 발굴되어 그 시절 활발한 교류의 증거가 된다. 출토된 금관 역시 신라 못지 않다.
가야 고분군은 신라나 백제와 다른 특징을 지닌다. 평평한 곳에 무덤을 쓰지 않고 산 정상에서 이어진 능선을 따라, 주변이 환히 조망되는 곳에 만들었다. 높은 곳이 하늘과 땅이 맞닿은 신성한 장소라는 가야인들의 세계관이 담겨 있다고 한다.
산길을 따라 대가야의 고분을 만나는 길은 신비롭기도 하고, 산행 그 자체로도 즐거웠다. 산책로가 산 능선길이라 주변이 확 트였고 고령 시가지도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지금도 좋은 장소지만, 천 오백 년 전 그 시절에도 산 능선이 지닌 매력 때문에 여기에 고분을 썼을 것이다. 고분군을 지나 주산 정상까지 올라갔고, 하산하면서는 부분적으로 남아 있는 가야 산성도 볼 수 있었다.
휴관한 박물관을 보기 위해 한 번 더 올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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