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오전. 우리 반 조례 후 1~2교시 연달아 수업. 코로나로 쉬는 시간도 앞뒤로 지키기 때문에 짬이 거의 없었다. 수업 마치고 교무실 오는데 행정실에서 어제 내가 주문한 명찰의 해당 사이트를 알려달라 한다. 교무실에 오자마자 명찰 사이트를 검색하고 있는데 교감쌤 왈,
"선생님, 메시지 확인하셨어요."
"네?"
"내가 메시지를 보냈는데 아직 안 읽으셨네."
"아, 예"
여기까지만 말씀하셨으면 걍 끝났을 것이다. 다음에 교감쌤이 하신 말씀.
"다른 사람도 아니고 교감이 보낸 메시지는 좀 읽으세요."
평소 같으면 좋은 게 좋은 거다, 넘어갔을 것이다. 나는 뭐가 옳니 그르니 잘 따지지 않는다. 시간 낭비, 에너지 낭비라서. 하지만 오늘 난 2교시 끝날 때까지 잠시도 쉴 새가 없었다. 게다가 오늘 선도위원회가 열리는데 우리 반 학생도 포함이라 더 분주한 날이다. 자기처럼 메시지 안 읽은 사람 일일이 체크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메신저에 읽은 사람이 표시된다). 한 마디 쏘아붙이지 않을 수 없었다.
"교감 선생님, 제가 안 읽으려고 안 읽은 게 아니라, 방금까지 자리에 앉을 틈도 없었는데요. 1,2교시 수업 연달아 있었고 행정실에서 요청이 와서 사이트 찾고 있는 중입니다."
"그거 어제 보낸 거예요." (어제 퇴근 무렵 보냈음)
"제가 어제도 아시다시피 선도위원회 대상자 학부모에게 연락하고 계속 일이 있었습니다."
평소와 달리, 단답형이 아닌 문장으로 따박따박 대답했다. 누가 자기처럼 할 일 없는 줄 아나. 말이 나왔으니 망정이지 1학년 학생들이 이동수업하는 주제선택 시간에 무단으로 들어오지 않은 사건이 일어나서 며칠 난리였는데, 교감은 남의 일 구경하듯 조금도 관여치 않고 관심조차 없었다. 그런데 바쁜 교사한테 자기 메시지 좀 빨리 안 읽었다고 난리라니.
게다가 이번 주에 우리 학교는 무척 힘들었다. 전체 등교 때문이 아니다. 시정표 때문이다.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40분으로 단축수업을 하고 학생들이 쉬는 시간에 밀접 접촉하지 않도록 쉬는 시간도 5분으로 운영했는데, 45분 수업에 10분 쉬는 시간, 점심 시간은 또 1시간으로 늘어나서 7교시 마치면 거진 오후 네 시다. 교사들이 쉬는 시간도 교실을 지키기 때문에 한 시간 수업이 55분이 된 셈. 마스크 쓰고 종일 수업하면서 이 일정을 소화하는 건 정말 피곤한 일이었다. 아침 일찍 출근해 발열체크도 있고, 또 점심시간이 길어져서 그 시간도 내내 감독해야 하므로. 다른 학교 모두 전체등교를 하더라도 일정을 당겨서 학생들이 조금 빨리 귀가한다. 마스크 쓰고 종일 생활하는 게 힘들기 때문이다. 교사들도 마찬가지고. 오죽하면 어젯밤 9시가 넘어서 동료교사가 힘들다고 연락이 왔다. 이런 판국에 학생 생활지도에 1도 관심 없는 분이 자기 메시지 좀 빨리 안 봤다고 교사에게 쓴소리라니.
아무튼 행정실에 쪽지를 보내놓고 메시지를 읽어보았다. 알고보니 어제 퇴근 때 읽은 메시지. 내 컴퓨터로 읽은 게 아니라 다른 쌤 컴퓨터로 봤었다. 내가 퇴근하는데 이것 좀 보라고, 세상에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고 해서 나가면서 읽은 것.
교사들이 나이 어린 학생들을 지도할 때도 하고 싶은 말 다 하지 않는다. 달래가면서 좋은 말로 한다. 그런데 경력 20년차들이 즐비한 교사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내다니. 처음에 수업시간에 화장실을 보낸 이유는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학생들이 우루루 몰리면 안 되니, 수업 시간 중에도 적절히 분산해서 보내라고 해서 그런 거였다. 그거는 다 망각하시고, "불합리를 합리화하는 교사들의 잘못된 버릇에서 기인한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나는 교감쌤이 하시는 말씀이 좀 아니다 싶어도 수긍해드렸다. 정년 2년 남은 분과 옳고 그름을 따져 뭐하겠는가. 월급 주는 게 아까운 분이긴 했으나. 아침에 내가 나이스 자가진단 안 했다고 호들갑을 떠셔도 "예, 지금 할게요." 하고 말았다. 많은 부분이 부족한 분이지만 그것 때문에 한 사람을 무시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이런 글은 아니다. 앞으로는 태도를 싹 바꿀 참이다.
교감쌤께 말했다.
“교감선생님, 보내신 메시지 읽었습니다. 글을 너무 잘 쓰셔서 국어 선생님 하셔도 되겠어요.”
워낙 문해력이 떨어지시는 분이라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으셨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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