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학생들을 관찰하다보면 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을 발견하게 된다. '아니 쟤들 둘은 왜 붙어다니지?' '왜 쟤는 다른 좋은 애들 다 놔두고 저 농땡이와 어울리면서 태도가 점점 나빠지지?'
서로 '우정'도 '의리'도 전혀 없으면서 계속 붙어다니면서 말썽 피우는 녀석들도 있다. 사건이 터지면 쉽게 배신하면서도(쟤가 그랬어요, 나는 안 그랬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또 화해하고 붙어다닌다. 서로가 서로에게 전혀 도움 안 되는 관계라서 교사로서 맘 같아선 뜯어 놓고 싶지만, 교우 관계에 함부로 개입했다간 큰일 난다.
한 번은 우리 반 여학생이 상태가 너무 심각한 다른 반 남학생 K와 어울리기 시작하길래(남학생이 여학생들과 그룹을 만들어 왕따를 주도하는 보기 드문 케이스가 K였다), 여학생이라 알아들을 줄 알고 "거리를 좀 두면 좋겠는데" 했더니 그걸 K에게 그대로 고해서 K가 기세등등 항의하러 찾아온 일도 있었다. "니가 지난 사건이 많았잖아. 나는 학생들이 단톡방에서 말 주고받다가 일 커지는 거 질색이거든. 그래서 너 뿐 아니라 모든 애들에게 단톡방 쓸데없이 많이 하지 말라고 주의 준 거야. 이해 되지?" 내가 우리 방 여학생에게 "거리를 두라"는 말 빼고는 K에 대해 어떤 험담도 한 것이 없었기에, K도 그냥 돌아갔다.
자기들도 서로 의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 왜 계속 어울리는 것일까? 난 그게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얼마 전에 "애착"에 대한 강의를 듣고나서 비로소 조금 감이 온다. 핵심 내용을 정리하면,
1. 애착의 기본적인 형태는 주양육자와의 관계에서 형성된다. 생물학적 부모가 아니라 아이를 직접 키우는 사람이 좌우한다.
2. 애착에서 중요한 것은 애착의 '질'이 아니라 '빈도'이다.
즉 자주 상호작용을 주고받는 사람과 애착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그 애착의 질이 낮더라도. 아이는 무관심한 사람보다는 폭력을 쓰더라도 자주 반응을 보이는 사람과 애착을 형성하게 된다.
교사가 보기엔 생활태도가 좋지 않은 학생이지만 그 학생이 다른 학생애게 반응을 잘 해주기에 그 학생을 따르는 이치였다. 상대방에게 '반응'하는 것은 애착의 핵심이다. 한 마디로 학생들은 자기 이야기를 '씹지' 않는 사람에게 다가가게 된다는 것.
3. 내가 애착하는 사람, 즉 자주 연락하고 소통하는 사람이 가족, 애인이 아닐 수도 있다. 우리는 애인 말고 제3의 인물과 애착 관계를 형성할 때도 많다.
4. 인간은 본성상 무리 동물이다. 무언가에 마음을 붙이는, 애착 없이 살아갈 수 없다. 지금 애착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 사람을 만날 때까지 찾아나서야 한다. 언제까지? 평생.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은 법률적 관계의 가족이 아니라 '애착'하는 관계이다. 계속 서로 연락을 주고 받고 마음을 교류할 수 있는 사람. 그래서 사람은 폭력적인 관계라 하더라도 그 관계에 일단 애착이 형성되고나면 관계를 쉽게 끊지 못한다. 애착의 '질'보다 '빈도'가 애착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청소년기는 부모와 멀어지기 시작하는 시기이고 새로운 관계를 맺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가정에서 받은 애정의 토대가 부실할 경우, 친구에게 지나치게 집착하기도 한다. 가정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는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그밖의 장소에서 누구와 '애착'을 형성하는가는 정말정말정말정말정말 중요하다.
너무 많은 분들이 '공부'에만 신경을 쓴다. 아이들의 현재 심리 상태가 어떤지,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고 외로워하는지, 아이가 무엇에 마음을 붙이고 있는지, 그 '삶'을 이해하고자 하기보다는. 공부보다 열 배 더 중요한 것이 애착이라고 말하고 싶다. 친구 때문에 확확 달라지는 시기이기도 하고, 청소년기에 건강한 애착 관계를 형성한 아이는 앞으로의 삶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육체만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사람은 심리적 존재이다. 누구나, 어떤 나이, 어떤 상황에 있든지 자신이 마음을 붙일 대상이 필요하고 마음을 붙이는 연습도 필요하다.
"마음을 붙이다"란 우리말, 정말 적절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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