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발리 2. 올드 발리, 아메드

누군가 제게 발리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을 묻는다면, 아메드(Amed)라고 대답할 것 같습니다. 발리섬 동쪽 끝에 위치한 조용한 어촌마을, 아메드. 올드 발리라 불릴 만큼 토착 주민들의 삶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지요.

하얀 백사장은 없습니다. 하지만 아메드의 바다에는 호텔 전용 비치에 없는 자연스러움과 활기가 있답니다. 아메드에선 대부분의 시간을 마을 꼬마들, 청년들과 함께 어울려 장난치고 수영하며 보냈는데요, 그래서일까요. 아메드의 바다는 제게 파이브 스타 호텔 비치에서 보냈던 그 어떤 시간보다 훨씬 따스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곳입니다.

한낮의 햇살을 피해 수영은 주로 새벽이나 밤에 했어요. 새벽, 린자니 산 위로 밝아오는 아침을 맞이하는 것도 좋았고, 깜깜한 밤중에 바닷물에 얼굴을 담그고 플랑크톤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한밤에 물안경을 끼고 바닷물을 흔들어 보면 플랑크톤이 반짝반짝 빛을 내서, 검은 바닷속 전체가 빛나는 별들로 가득찬답니다. 바닷속에도 또 하나의 우주가 들어 있었습니다.

발리 토착 어민들의 삶의 풍경을 보고 싶은 이나 시간 여유가 많은 이라면 한번 들러보면 좋은 곳이예요. 동해안의 7번 국도를 연상시키는 해안 도로를 따라 산과 바다가 펼쳐지는데, 산세가 특별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푸른 바다가 아름답고, 해안마다 이 지역 전통 배인 쭈꿍이 가득 하며, 언덕마다 마을이 빼곡이 들어차 있어서, 관광지와는 사뭇 다른 발리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서구 여행자들이 꽤 많이 찾아옵니다. 젊은이들은 오토바이를 주로 오토바이를 빌려서 들어오는데 스노클링을 위해서랍니다. 아메드는 발리의 몇 군데 다이빙 포인트 중 하나입니다.

아메드 지역은 해안도로를 따라 깊이 들어갈수록 더 좋아요. 론리 플래닛에 소개된 폰독 비에나 비치 호텔도 편리하지만 그 앞바다의 코랄은 이미 죽었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더 깨끗한 바다를 만날 수 있습니다.

새로 생긴 블루문 호텔을 지나면 가장 마지막에 에카 푸르나마라는 작은 호텔이 있고, 아직 문을 열지 않은 현지인이 지은 작은 호텔이 좀더 안쪽에 있었어요. 에카에서 동쪽 바다를 바라보면 롬복 섬과 유명한 린자니 산이 보인답니다.

조용하던 그 아메드에도 개발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기 시작해서, 두 번째로 찾아갔을 때는 전에 없던 통행세를 받고 있었습니다. 인터넷 까페도 새로 생겼고, 곳곳에 호텔을 짓는 공사가 한창이었어요. 2년이 넘게 지난 지금은 아마 훨씬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아메드 어디에나 널려 있는 ‘쭈꿍’은 좁은 보트에 굵은 대나무로 된 다리를 붙인 보트로 동남아에서 흔한 형태의 배입니다. 네 발 달린 특이한 모양을 보면 아무리 파도가 거세도 배가 뒤집히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아메드의 아침은 특별합니다. 새벽 네 시 반 쯤 되면 온 마을이 북새통을 이룬답니다.

언덕배기에 위치한 에카 푸르나마에서는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데, 하도 시끄러워서 잠에서 깨어나 둘러보니, 마을 남자들이 다같이 나와서 담배를 입에 물고 한꺼번에 바다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날이 밝으면 수평선 근처에 개미떼같이 몰려 있는 쭈꿍을 볼 수 있지요. 롬복 근처까지도 간다고 합니다.

아침 8시가 넘으면 대부분의 쭈꿍이 돌아오기 시작하는데, 마치 개선장군처럼 수많은 배들이 위풍당당하게 해안으로 몰려옵니다. 푸른 바다 위, 열대어를 연상시키는 강렬한 색채의 돛을 단 쭈꿍의 행렬은 장관이었습니다. 마치 요트가 떼지어 들어오는 것 같았지요.

배가 들어올 즈음이면 아내들이 아이들 손을 잡고 남편 마중을 나갑니다. 대체 물고기를 얼마나 잡아왔나 싶어 바닷가로 내려가 보았는데, 그렇게 기세 좋게 나가서 잡아오는 물고기가 달랑 몇 마리에 불과하해요. 낚시로 잡기 때문이지요.

말 그대로 일용할 양식. 마중나온 아내와 아이들은 물고기를 받아들고 집으로 가고 남자들은 쭈꿍에서 모터를 떼어낸 다음 모터를 들고 집으로 향합니다.

날씨에 따라 시간은 차이가 있지만 매일같이 남자들은 새벽이면 바다로 향합니다. 이런 식으로 잡아서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물고기 씨가 마를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물을 사용한다면 아메드의 바다도 금방 오염될지도 모릅니다.

많이 잡아서 부자가 되겠다는 개념은 아예 없어 보였어요. 꾸따 주변에서 더러 마주치게 되는 호객꾼도 여기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