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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일상의 기록

역전마을 인터뷰 10 _ 이만하면 살기 좋은 동네

by 릴라~ 2020. 12. 21.

**10월부터 두 달간 경산시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인 지역 스토리텔링 부분에 자원봉사를 했다. 총 11분을 인터뷰해서 글로 옮기는 작업인데 내가 쓴 글이라 기록으로 남겨둔다.

 

이만하면 살기 좋은 동네, 뉴-진미 스튜디오 김00 씨

 

 

역전마을 사진관

 

시원시원한 목소리가 매력인 김00 씨는 경산이 고향이다. 삼북동에 오래 살다가 스물세 살에 결혼하면서 시댁이 있는 중방동에 살았고 이후 분가해서 역전마을에 정착하셨다. 역전마을에 온 이유는 사진관 때문이다. 시댁이 사진관을 했는데 분가하면서 김00 씨 부부가 역전마을에 사진관을 따로 차렸다. 역전네거리에서 남쪽으로 경산로에 접어들면 ‘뉴-진미 스튜디오’가 바로 보인다. 20년 가까이 되는 사진관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주변 환경은 크게 변한 게 없다. 거리가 좀 깔끔해진 것 말고 확 달라진 건 없는데 건물에 입점한 가게 종류는 달라졌다고 하신다. ‘뉴-진미 스튜디오’도 초창기에는 기사를 서너 명이나 둘 만큼 장사가 잘 됐다. 하지만 지금은 미디어회사와 경쟁이 안 되어 다른 일을 모색 중이다.

 

사진관을 처음 열었을 때 시아버님은 아침 6시 반에서 7시 사이에 꼭 찾아오셔서 가게를 열었는지 보고 가셨다. 좀 늦게 문을 열기라도 하는 날에는 혼이 났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하신다. 일찍 문을 연 덕분에 인근 중고등학교에서는 수학여행 사진과 증명사진을 등교시간에 찾아가곤 했다.

 

역 앞이라 다양한 손님들을 만났다. 한 번은 서울에 영화오디션 보러 간다고 기차비를 빌려달라는 청년들이 찾아왔다.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이었는데 앳된 얼굴을 보니 아들 생각이 나서 직접 동대구-서울간 3만원치 티켓을 끊어주었다. 반드시 갚겠다며 전화번호 교환을 하고 조심해서 가라며 안부 문자도 주고받았는데 어느 날 연락이 두절되었다. 없는 전화번호라는 기계음을 듣고서야 청년들에게 속았다는 걸 아셨다고 한다.

 

사진 산업은 빨리 변하는 업종이었다. 김00 씨의 사진관은 경산 지역 학교 앨범 일을 많이 해서 디지털화가 되고도 한동안은 버텼는데 큰 회사의 최저가 입찰과는 경쟁이 되지 않았다. 대구 미디어회사가 경산까지 들어왔고 이 미디어회사는 앨범과 CD까지 한꺼번에 제작했다. 사진관은 다른 업체에 CD를 맡기고, 인쇄소도 따로 가고, 기사들 일당도 줘야하니 경쟁 자체가 안 된다. 미디어회사는 일당이 비싼 기사 대신에 알바생을 고용했고 여러 면에서 최저가 납품이 가능한 구조였다.

 

게다가 지금은 여권 사진 말고는 사진관에서 사진을 잘 안 찍는 시대다. 옛날에는 증명사진 붙이는 일이 많았는데 지금은 스마트폰 사진으로 가능하고, 집에서 프린터기로 인쇄하는 일도 많다. 사진관 타산이 안 맞을 수밖에 없다고 김00 씨는 말씀하신다.

 

 

교통 좋고 학교 있고 시장도 가깝고

 

김00 씨는 역전마을이 지내기 좋았다 하신다. 자가용 없던 시절에는 기차를 많이 탔는데 역에서 내려 바로 집이 나오니 그렇게 편하더란다. 경산은 하양, 청도로 통하는 관문이다. 교통 편리하고 애들 학교도 가깝고, 이사 갈 생각이 전혀 안 났다고 하신다. 경산시장도 버스로 두 정거장이다.

 

남천강변을 따라 경치도 좋고, 자전거 타기도 좋고, 성암산이 곁에 있어 공기도 맑다. 예전엔 대구 도심에 갔다가 경산으로 돌아올 때, 사월교만 넘어가면 공기가 완전히 달랐다. 시원하고 깨끗한 바람이 피부에 와닿으면 경산이었다. 지금은 경산에도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면서 공기가 좀 탁해졌지만 그래도 대구보다는 낫다고 하신다.

 

역전마을에 살면서 잊지 못할 추억은 오락실과 무전기다. 2000년도 초반, 경산역 앞에 대추빵집이 있는 건물에는 오락실이 있었다. 남편 분이 오락에 재미를 들였는데, 전화기도 없고 삐삐로 연락하던 시절이라 오락실에서 삐삐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일이 더러 생겼다. 그러자 남편은 직접 태안통신공사에서 무전기를 사왔는데, 황당하면서도 신기했다고 하신다. 남편이 안 보여서 호출을 하면 무전기 너머 들려오던 오락실 소리로 남편이 어디 있는지 알게 되었다.

 

남편은 가끔씩 오락실 뽑기 기계로 장난감 오토바이와 자동차 등을 뽑아 와서 직원들과 웃기도 했다. 한 번은 15만원 상당의 오르간을 뽑았다고 자랑하기에 원가보다 더 많은 돈을 투자한 것 아니냐며 한 소리 하시기도 했다. 지금은 오락실, 삐삐, 무전기가 모두 사라졌지만 생각할수록 재미난 추억이다.

 

 

마을을 위해서 하는 일이죠

 

물론 역전마을에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는 주거전용지역이 아니라서 상가주택이 많다. 번화가가 아니어서 밤새도록 장사하는 곳은 없지만 그래도 상가 지역이라 밤에 불빛이 비치거나 음식 연기가 나오곤 하는데 이를 고발하는 주민이 생겼다고 한다. 안면 있는 사람이 많아서 서로 인사하고 살 때는 불편한 점이 있어도 참는데, 새로 인구가 유입되면서 모르는 사람끼리 주차 문제를 비롯해 갈등이 생겨났다. 경산에 아파트 단지가 개발되면서 농촌도 아니고 도시도 아니고, 그런 면에서 삭막한 점도 있으시단다. 지역에 우선 필요한 것으로는 경산역 주차시설을 꼽으신다.

 

그래도 이만하면 살기 좋은 동네라며 김00 씨는 인터뷰를 마무리하신다. 몇 년째 통반장으로 봉사하는 것도 지역에 대한 애착심 때문이다. 올해는 가가호호 방문하여 마스크를 다 나눠주었다. 돈 나온다고 말하는 주민도 있지만 이 돈 받으려고 한 달 내내 메이겠느냐며 되물으신다. 올해는 일만 생기만 어디 나와라, 뭘 찾아가라, 특히 일이 많았다. “다 마을을 위해서 하는 일이죠.” 명쾌한 한 마디 말씀에 마음이 든든해졌다. 김00 씨는 그렇게 역전마을의 보이지 않는 지킴이로 활동하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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