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많아 자연임신은 생각도 못했는데
생리주기를 넘긴데다가 배 한쪽이 이상하게 계속 콕콕 거려
혹시나 해본 임테기, 깜짝 놀랍게도 선명한 두 줄이었다.
처음엔 "이 일을 어쩌나?" 몹시 당황하고
걱정이 산더미같이 밀려왔는데
하루 이틀이 지나니 그 당황함은 기쁨으로 바뀌었다.
생명의 선물이니까.
그런데 연말이라 컨디션이 바닥이었던 것 같다.
올해 맡은 학년이 너무 힘들어 전체 등교 두 달만에 일 년 진을 다 뺐다.
다른 스트레스도 많았다. 그래서일까
낮 최고기온이 처음으로 0도로 내려가고 영하의 날씨가 찾아온 월요일,
종일 몸이 으슬으슬 안 좋더니
그날 밤부터 열이 오르고, 토하고, 코로나 검사로 학교도 병가를 내고
그렇게 한 며칠 몸살을 앓다가 임신 6주차에 들어서던 날,
자연 유산이 되었다.
열나고 토한 원인은 지나고보니 코로나가 아니라 급체였다.
유산 이후에도 메스꺼움이 가시지 않아 동네 내과에 갔더니
스트레스가 제일 큰 원인이란다.
스트레스 받으면 면역력이 약해져서 바이러스에 취약해지는데
이 즈음 가장 흔한 것이 로타 바이러스로 급체를 일으킨다고 한다.
며칠만 더 버텼으면, 학생들 등교 중지라서 서서 근무할 일이 없는데
그 며칠을 못 버텼다. 월요일 출근하지 말았어야 했는데(그 이후 피검 수치가 떨어졌다),
연말에 컨디션 관리를 좀 더 했어야 했는데,
두 달 넘게 하던 글 작업을 안 했어야 했는데,
그것 때문에 한동안 운동도 못했고, 그래서 컨디션이 더 엉망이었다.
계속 후회가 따라왔으나 이미 벌어진 일,,
어쩌면 내 인생에 다시는 오지 않을 기적일지도 모르는데
그 기적을 이렇게 어이없이 흘려보내다니...
섭섭함이 지금도 잘 추스려지지 않는다.
그렇게 짧았던 기적이 끝이 났다.
잠깐 꿈을 꿨다가 깨어난 기분이다.
그렇게 잠깐 찾아왔던 생명의 속삭임은
날마다 진해지던 10여 개의 임테기에 작은 흔적을 남긴 채 사라졌다.
사진을 찍어놓을 걸 그랬나, 화장대 위에 그냥 한참 놓아둔 것을
D가 버리는 바람에 내 기억 속에만 있다.
아직은 뭘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그냥 막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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