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그리고 뱀사골...
2005년 단풍이 절정일 때, 내 생애 최고의 '가을'을 만난 곳이다.
가을,,, 하면 언제나 지리산이 떠오르고 뱀사골이 어른거린다.
이후로 그처럼 아름다운 단풍은 보지 못했다.
날씨에 따라 해마다 단풍 빛깔이 다르다.
D가 어디 갈래? 하고 묻자마자 내 입에서 '지리산'이 나왔다.
이 얼마만에 간 지리산인지,,, 산자락이 보이자마자 가슴이 뛰었다.
등산 대신 2박 3일 캠핑을 하고,
뱀사골 계곡을 가볍게 트레킹하는 일정이었다.
전날 내린 비 덕분인지 시야가 맑아
힘차게 뻗어간 지리산 줄기와 능선이 장관이었다.
여름숲의 푸름도 단풍 못지않게 좋았다.
길모퉁이마다 마주치는 초록빛 소의 아름다움에,
계곡을 감싸는 시원한 물소리에 눈과 귀를 헹구는 기분이었다.
이 숲과 계곡이 우리의 희망이고 미래다 싶었다.
뱀사골 입구에는 충혼탑이 있다.
예전엔 스쳐지나갔던 것이 이번엔 눈에 들어와서 자세히 보았다.
지리산 빨치산 토벌작전에 동원된 군경 칠천여 명의 넋을 기리는 탑이었다.
지리산에서 가장 치열한 빨치산 토벌작전이 이루어진 곳이 뱀사골이다.
당시 총사령관 이름 중에 백선엽도 보인다.
"북괴 괴뢰군 잔당을 토벌하다 목숨을 잃은 영령을 모신 곳"이라는
2007년 남원시장의 비문 앞에선 고개를 갸웃거렸다.
1950년대라면 몰라도 2000년대에 이런 역사 인식이라니...
국군과 빨치산을 포함하여 2만여 명의 젊은이들이 죽어간 지리산.
그들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서로를 죽여야 했을까.
그 이유가 어찌되었건 양쪽 젊은이들의 죽음은 모두 안타까운 일이며
민족사의 비극 중의 비극이다.
그 안타까움과 비극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다짐이
비문에 기록되어야 하지 않을까.
장장 12킬로미터의 구비구비 이어진 계곡만큼이나
우리 역사의 가장 굴곡진 아픔이 마디마디 서린 곳이
그 굴곡의 역사가 아직 끝나지 않은 곳이
바로 이 뱀사골이구나 했다.
이번 여행의 백미는
뱀사골을 통해 들어가야 하는 와운마을의 지리산 천년송이다.
나무가 이렇게 웅장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니!
다른 곳이 아닌 지리산 중턱에 있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리라.
지리산 자락을 배경으로 자연의 생명력과 위엄을 온몸으로 증명하며
언덕 위에 우뚝 서 있다.
수령은 적혀 있지 않았다. 천연기념물이라 한다.
지리산의 수호신을 만난 기분!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