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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이야기/여행 단상

여행의 본질은 __ 순천에서 대구, 무궁화호 기차에서

by 릴라~ 2021. 7. 19.


코로나 때문인지 덕분인지, 작년부터 국내여행을 꽤 했다.
코로나가 잠잠한 시기를 골라서.
방문한 장소는 참 좋은데, 여행이 짧아서 그런가,
뭔가 여행 같지 않고 잠깐 마실 다녀온 느낌이 많았다.
정말 오랜만에 무궁화호 기차를 타보고 알았다.
그간 국내여행이 왜 밋밋했던가를.

이유는 여정, 즉 이동 경로에 있었다.
직선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웬만한 곳은 한두 시간이면 닿는다.
너무 빨리 집에서 방문지에 닿으니 약간 순간이동한 느낌?
가장 빠른 길로 달려가는 것이 꼭 가장 많이 보는 건 아님을 다시금 느꼈다.

한 달 쯤 전, 순천에서 대구로 돌아올 땐 버스 시간이 맞지 않았다.
저녁 시간 버스가 있는 날이 퐁당퐁당 이틀에 한 번이고,
그날은 오후 3시가 마지막 버스였다.
3시까지 순천만을 다 볼 수 없어서 혹시나 하며 기차를 검색하니,
삼랑진에서 환승해서 경산까지 가는 저녁 기차편이 있었다. 무궁화호로.
우리집은 대구 동쪽 끝이라 동대구역보다 경산역이 가깝다.

순천에서 삼랑진까지 약 2시간 반, 삼랑진에서 경산까지 약 40분이었다. 환승 시간도 30분쯤.
그 시간에 삼랑진역 편의점에서 간단히 저녁 요기를 해서 그대로 좋았다.

순천에서 삼랑진까지, 지리산 자락이 닿아 있는
하동, 북천 등을 거쳐오며 신기했다.
이 일대를 차로 지나간 적이 있었는데 차로 보는 풍경과 또 다르다.
같은 장소라도 다른 길로 가서 달리 보이는 점도 있고,
또 기차는 자가용보다 창문이 크다.
느린 기차에 편안히 앉아서 차창으로 보이는 풍경은
더 전체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특히 이 구간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다.

3시간 넘는 여정이지만 무궁화호 기차 여행이 이런 매력이 있구나 했다.
멀리 돌아오는 것이라 여행하는 느낌도 더 든다.
직선 고속도로를 달려 쓰윽 갔다가 쓰윽 오는 것과 달리
작은 역 하나하나를 거칠 때마다 '여정'이 마음에 쏙쏙 박힌다.

순천에서 삼랑진까지 가는 기차는 경전선이다.
경남과 전남을 연결하는 기차로 삼랑진서 순천 지나 광주까지 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땅, 남도의 정겨운 자연을
곡선으로 휘이 돌아가는 기차이다.
한 번 이 구간을 전부 탑승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삼랑진 쪽의 일부 구간은 KTX가 깔리고 있는데,
그땐 길이 또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겠다. 그 전에 가봐야겠다.

여행이란 어떤 장소가 마음의 지도 속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는 과정이다.
집에서부터 그곳까지의 여정이 그 기억의 절반 이상을 만든다.
여행지에 관해 아무리 잘 만든 영상을 보아도 그곳이 내 일부가 되지 않는 건
내 몸이 길 위에서 시간을 쏟으며 감각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길에 갇혀있는 시간만큼 다른 걸 보고
다른 시간을 살게 된다.

여행의 본질은 방문 장소가 아니라 이동 경로와 시간, 즉 여정에 있다.
인생도 어쩌면 마찬가지일지도.
도달점이 아니라 그곳까지의 경로가 소중한 건지도.

##

대구에서 순천까지 3시간 좀 넘게 걸리는 무궁화호만 있는 건 아니다.
대구에서 진주까지 ktx, 진주에서 순천까지 무궁화호도 가능하다.
이 경우 기차에서 보내는 시간은 2시간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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