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기차를 타기 위해 5시에 일어난 날,
베란다 창문으로 붉은 빛이 진하게 번져나오는 걸 보고 깜짝 놀라 달려갔다.
아파트 창밖으로 야생과 다름 없는 광대한 하늘이 열리다니!
분홍, 보라, 오렌지빛이 섞인 하늘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이 시각에 일어난 적이 없으니 이처럼 가까이에
자연이 힘차게 움직일 줄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새벽녘, 아직 어둠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시각에
장엄한 일출을 바라보다가 알았다.
내가 잃어버린 감각이 바로 이것이었구나.
소싯적 배낭여행을 할 때 이런 생각을 하곤 했었다.
왜 이렇게 일출, 일몰을 자주 보지?
네팔에서도, 뉴질랜드에서도, 발리에서도,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서도
일출 시간에 맞춰 산을 오르거나 일몰 시간에 맞춰 해변을 서성거렸다.
여행지에서 내가 챙기는 많은 것들이 실은
날씨를 확인하고 해돋이, 해넘이 시간에 맞춰 특정 장소에 가 있는 것이었다.
여행이란 아름다운 풍경에 감동하고자 함이니 당연지사일 것이다.
하지만 일상에선 해돋이와 해넘이를 일부러 보려고 계획하진 않는다.
일상에서는 해야 할 각종 책무가 쌓여 있고
여행지에서와는 우리가 눈길을 주는 방향이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일까, 많은 일들을 해내고 정말 분주하게 살지만
뭘 했는지 모르게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아파트 뒷베란다에서 펼쳐지는 그림 같은 하늘을 보면서
시간이 무미건조하게 느껴지거나 스쳐지나가는 이유를 알았다.
자연과, 우리를 둘러싼 이 세계에 감동하는 시간이 적었던 것이다.
산에서는 순간순간 대기의 빛깔이 달라지고
바람과 공기의 온도와 촉감도 달라진다.
주위 세계의 변화가 감각되는 만큼 시간의 질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콘크리트 속에서는 동일한 시간이 흘러가고
세계가 감각되지 않기에 시간이 쓱 흘러간 느낌이 든다.
여행 중에서도 특히 등산이나 도보여행을 좋아한 이유는
내 주위 세계가 순간순간 생생하게 감각되고
그 변화하는 아름다움만큼 내 시간이 생생하게 감각되고
살아있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었다.
시간을 '되찾는' 느낌이었다.
코로나여서 광활한 곳으로 떠날 수는 없지만
가까운 자연과 최대한 자주 부대껴야겠다.
집에서 일찍 일어나서 이 계절이 다 가기 전에
하늘이 열리는 모습을 보고 또 보아야겠다.
겨울엔 해가 뜨는 방향이 다른데
새로 짓고 있는 40층 건물에 가리워서 해돋이가 잘 보이지 않는다.
오늘은 감사하게도 아침부터 해 저물 때까지
황홀한 '빛의 그림'이 하늘에 걸린 날이다.
"태양과 달과 별, 우리가 사는 이 섬을 에워싸고 흐르는 강,
만에서 부는 미풍 등에서 아무런 기쁨을 만끽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 세상 비참함의 극치에 덩달아 한 몫 거드는 셈이다." (도로시 데이)
*얼마 전 새벽 ~
*오늘 일출과 일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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