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 거부의 트라우마 때문인지 오랜 시간, 관심 밖이었던 미국. 한 친구의 이야기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친구는 코로나가 시작되기 바로 전 해에 뉴욕에 다녀왔다. 뭐가 좋더냐고 물으니 대답이 뜻밖이었다.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9.11 메모리얼'이라고 답한다. 2001년 9.11 테러 당시, 이른 아침에 어머니가 소리쳐 불러 TV 화면을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뉴스에서 믿을 수 없는 영상이 송출되고 있었다. 영화 세트장처럼 현실감 없이 110층 짜리, 세계무역센터가 있던 쌍둥이빌딩이 힘없이 무너져내렸다. 쌍둥이빌딩이 있던 그 자리에 기념공원이 세워졌다고 한다.
안에 들어서자마자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더란다. 그 아픔과 슬픔이 그대로 전달되어 친구는 내내 눈물을 훔쳤다고 했다. 그리고 미국에 대한 인식이 좀 달라졌단다. 쌍둥이빌딩이 있던, 아마 세상에서 제일 비싼 그 노른자위 넓은 땅을 추모공원으로 만든 걸 보면서 미국사회가 지닌 수많은 부조리에도 불구하고 미국이란 사회를 존속하게 하는 힘을 느꼈다고 했다. 우리라면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친구의 이야기가 마음에 오래 남았다.
9.11테러와 함께 1995년, 김영삼 정부 때 일어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도 나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강남 한복판 요지에서 끔찍하게 무너져내린 유명 백화점과 건물 잔해 속에서 17일만에 기적적으로 구조된 박승현양까지. 하지만 붕괴 이후 그 일이 어떻게 수습되었는지는 몰랐다. 서울 사람이 아니다보니 삼풍백화점 자리에 뭐가 들어섰는지도 전혀 알지 못했다.
이번에야 알았다. 윤모 대선후보님 덕분이다. 그가 사는 곳이 서초동 '아크로비스타'고, 서울서 내노라 하는 그 비싼 아파트 자리가 바로 삼풍백화점 자리라고 한다. 그가 거기 살면서 검찰 권력을 어떻게 가족의 사익 실현에 동원했는지는 생략한다. 다만, 사망자만 오백 명이 넘는 대참사였던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사상자 가족들은 아크로비스타를 지날 때 무슨 생각을 할 것인가.
일본의 철학자 아즈마 히로키는 '기억'을 위해서는 '사물'을 보존해야 한다고 했다. 체르노빌에 대한 글 수백 편을 읽는 것보다 직접 현장을 보았을 때의 충격이 더 컸노라면서. 현대사회는 정보화 시대로 '말'의 위력이 커졌지만, 말로 된 '기억'은 언젠가는 흐릿해지고 '증언' 또한 왜곡될 수 있다. 진실에 비껴나서 빙빙 돌려대는 말을 끝내고 핵심에 즉각적으로 도달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이고 확고한 실감을 주는 사물이 필요하다. 움직일 수 없는, 사물로 된 증거 앞에서 우리는 내 입맛에 맞게 말을 바꾸거나 사실을 왜곡할 수 없다.
'9.11 메모리얼'이 다시는 이 슬픔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회적 신뢰'를 사람들에게 전달한다면 '아크로비스타'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앞으로 닥칠 비극도 과거처럼 몇몇의 억울함으로 남겨두고 또 다른 사람이 거기에 마천루를 쌓아 부를 확보할 것이라는 메시지가 아닐까.
장소를 보존하는 것은 그래서 정말정말 중요하다. 보존하는 행위 자체가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답사를 좀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 비록 모든 유물이 파괴되었다 하더라도 그 장소가 온전히 남아있다면 공기 속에 보이지 않는 목소리가 남아서 우리에게 무언가를 전달한다고. 마치 땅이 기억을 보존하는 것 같았다. 천문학적 돈을 쏟아부은 부여의 백제문화단지가 별 느낌을 전해주지 않는 이유는 원래 사비성이 있던 자리가 아니라 임의적으로 마련한 부지 위에 건설했기 때문이었다. 2002년 대구지하철 참사로 팔공산에 시민안전테마파크가 생겼지만, 동성로 대백 앞에 작은 추모비라도 하나 세웠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간의 기억에서 당신을 지우는 일은 없을 것이다."
No day shall erase you from the memory of time.
9.11 메모리얼에 붙어있는 버질의 시라고 한다. “당신을 지우지 않기 위해서" 후세대가 할 일은 '사물'을 보존하는 것이다. 이 질긴 코로나가 끝나면 뉴욕을 한번 방문하고 싶다. 미국도 작년에 트럼프 정부가 코로나 대처를 엉망으로 해서 언제 안전해질지 모르지만.
*삼풍백화점과 아크로비스타
*9.11메모리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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