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발리와 롬복 중에서 어느 곳을 택할까 고민한다면, 주저 없이 발리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롬복엔 바다 말고는 아무 것도 없으니까요. 일주일을 머물었는데, 이틀은 다이빙, 나머지 날들은 그야말로 심심함의 연속이었습니다. 원래는 유명한 린자니 산에도 오를 계획이었는데 마침 우기인 터라 길이 위험해서 등산이 금지되었기 때문이지요.
롬복의 해변은 개발되기 이전의 발리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맑고 깨끗합니다. 하지만 종교가 이슬람교여서 발리의 힌두교 문화가 주는 색다른 멋스러움이 없고 발리만큼 다양한 여행 인프라도 갖추어져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길리의 해변만은 무척 아름다워서 발리와 비교 대상이 아닙니다. 롬복에는 세 개의 길리(섬)가 있는데, 마치 시간이 정지한 듯 한적하고 고요하여 여행자의 마음을 부드럽게 감싸안습니다.
발리와 롬복은 가깝지만 그 사이의 바다는 꽤 깊으며 생태계를 구분하는 월레스 라인이 그곳을 지난답니다. 배를 타고 롬복에 가고 싶었는데, 시간이 없어 비행기를 이용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길리에서의 스쿠버 다이빙은 멋졌어요. 오픈워터 자격증을 따고 나간 첫 해외 다이빙이었기에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습니다. 바닷속은 그야말로 천국이예요. 우리는 말로는 수많은 생명이 지구 위를 살고 있다고 말하지만 아프리카 몇몇 곳을 제외하고는동물들이 그들 자신의 야생적 생명력을 뿜어내면서 지상을 활보하는 모습을 보기 어렵습니다. 대자연 속 숱한 생명들의 꿈틀거림을 느낄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바닷속에 아직 그 세계가 남아 있었습니다. 밤하늘의 별들 만큼 많은 물고기떼가 제 앞을 오갔습니다. 살짝 비쳐드는 햇살 아래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의 제 몸에 빛을 내며 은하수처럼 밀려가고 바다 거북은 이 세상의 온갖 근심과는 무관한 듯이 평온하고 우아하게 헤엄쳐 갑니다. 바닷속에서 저는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지구의 심장에서 울려나는 쿵쿵거리는 박동 소리를. 어쩌면 그것은 바닷속에서 제 심장 소리가 크게 들린 것인지도 모르지만, 그 두 소리의 기원은 같았습니다. 그것은 영원히 이어질 생명의 소리였고,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경이로운 순간이었어요.
초보라서 20미터까지 밖에 못 내려갔지만 그 아래 짙푸른 심해를 바라볼 때면 그 푸른 빛에 매료되어 죽든 살든 상관 없이 무작정 더 깊이 들어가고 싶기도 했습니다. 그 푸름 속에 그냥 첨벙 빠져들어도 괜찮을 것 같았어요.
어쩌면 죽음은 존재가 무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무는 단어로만 존재할 뿐 엄격한 의미에서 실재하지 않지만) 존재자들 사이의 구분이 사라진 세계가 아닐까요. 이 세계 밖이 아니라, 각각의 존재자들이 익명으로 존재하는 이 세계의 또 다른 층으로 돌아가는 것일지도. 바다속에서 느낀 지구의 시간은 개별자들의 삶과 죽음과는 무연한, 영겁 같은 자연의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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