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열두 사도를 뽑으시는 장면이 나왔다. 예수께선 사람됨됨이를 보셨으리라. 갈릴래아의 가난한 어부들이 그토록 큰일을 해낼 줄 누가 알았을까. 물론 유다 같은 배신자도 나왔지만 그것 또한 인간 세상에선 자연스러운 일이다.
스승과 제자, 하면 내게 떠오르는 이들이 있다. 수운과 해월이다. 동학의 1대 교주 수운 최제우 선생은 쟁쟁한 식자들을 물리치고 머슴 출신 해월을 후계자로 삼았다. 수운 선생이 사람 보는 눈이 있었다. 그는 일찍 순교했지만 해월은 30년 넘게 숨어다니며 스승의 가르침을 전파했을 뿐 아니라 구한말 그 어려운 시국에도 자금을 모아 스승의 가르침을 책으로 펴내는 위업을 이룬다. 사람들이 해월을 삼십 몇 년이나 몰래 숨겨주었다는 것은 해월의 인품이 대단했음을 말해준다. 실제로 그는 성자와 같은 풍모였다고 한다. 어느 집의 베짜는 며느리를 보고 그 여인이 바로 하느님(한울님)이라 했으며 밥을 먹는 것이 곧 하늘을 먹는 것이라 했다.
주시경 선생과 최현배 선생도 생각난다. 한글학자 주시경 선생은 삼십대에 죽었는데 별명이 주보따리였다. 이 학교 저 학교 야학 가리지 않고 싸돌아다니며 한글을 가르치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는 일찍 죽었지만 제자들은 스승의 뜻을 받들어 한글 맞춤법 통일, 사전 편찬 사업을 이십 년만에 해낸다. 프랑스가 아카데미 프랑세즈를 만들어 국가 예산을 들이붓고 연금 준다고 꼬셔서 50-60년 걸린 일을 식민지 시대, 돈도 없고 일제의 서슬 퍼런 감시 속에 20년만에 해낸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다. 해방 후 바로 교과서가 만들어지고 교육이 시작될 수 있었던 건 조선어학회 덕분이다.
대체 주시경이 어떻게 가르쳤길래 제자들이 평생 스승의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했을까. 기껏 삼십대 청년이 사람들에게 그토록 큰 감화를 준 것이 나는 참 신기하다. 난 오십 가까워도 지혜가 한참 모자란데!! 직접 그 시대로 가서 한 번 만나뵙고 싶다. 제자 최현배 선생은 저승에서 스승께 고하려고 죽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 스승의 뜻을 실천하려고 애썼다 한다.
하긴 예수께서도 삼십대쯤에 돌아가셨다. 하지만 제자들에게 남긴 감화가 너무 컸기에 제자들은 평생을 스승을 따랐고 그 가르침을 전하는데 삶을 걸었다. 제자들에겐 스승이 길이고 생명이고 사명이었다. 부처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고.
남녀의 사랑과는 종류가 다른 사랑이다. 호르몬은 유효 기간이 있기에. 내가 나이가 들고보니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사랑은 누군가가 남긴 뜻을 이어받고 평생 그렇게 살고자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시대가 바뀌었지만 우리 삶에 영감을 주는 존재는 언제나 스승이다. 사람이 되려면 부모 뿐 아니라 스승이 필요하다. 교사가 아니라 ‘스승’이란 단어를 쓰는 이유는 우리를 진짜 일깨우는 스승은 자연일 수도 있고 신일 수도 있으며 역사 속 인물이나 예수님, 부처님일 수도 있고 그 경우가 더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을 고상하게 하고 한 차원 높은 정신 세계로 눈을 돌리게 하는 건 그가 만난 스승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천박함은 스승 대신 돈을 섬기기 때문이고.
나의 스승은 누구인가, 내 삶을 이끄는 가르침은 무엇인가를 돌아보게 하는 성서 구절이다.
사는 이야기/일상의 기록
스승과 제자. 1/21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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