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구니 자전거 타고 좀 멀리 갔어요. 오후 되니 개학 공포가 스물스물, 얼른 나가자 싶었죠. 금호강 자전거길은 많이 가서 이번엔 달구벌대로 따라 가봤어요. 시지 출발, 라이온즈 파크 지나 만촌 지나 범어네거리까지. 차로 혹은 지하철로 날마다 다닌 길인데 탈 것을 바꾸니 딴 길 같아요. 담티고개 지날 땐 산을 한참 깎아 만든 길인데도 여기가 깔딱고개구나 했어요.
1시간 20분쯤 달려 범어네거리 도착. 예전엔 로터리였고 어릴 땐 차가 별로 안 다녀 좌우를 살핀 뒤 무단횡단 했던 곳인데, 지금은 완전 딴판이지요. 옛날과 넘 달라 운전할 땐 이곳을 딱히 추억하진 않았는데 자전거로 지나니 또 달라요. 계속 페달을 밟고 온 게 기억의 문을 살금살금 열었을까요. 어릴 때 날마다 걸어다닌 동도초 쪽 샛길로 방향을 틀어봤어요. 옛날엔 범어시장이 있던 자리. 다 변했지만 딱 한 집, 귀금속 취급하는 명성당이 눈에 익어서, 아,, 했네요. 이 집은 80년대에도 있었던 듯해요.
그리고 범어성당. 여긴 지날 때마다 아쉽고 속상한 곳. 성당 옆 대로가 복개천이에요. 과거엔 시퍼런 물이 흘러갔고 냇가 옆 언덕 위에 성당이 있었죠. 성당까지 어린 마음엔 꽤 오르막이었고 그 오르막 숲길을 참 좋아했어요. 옛성당을 철거하고 새성당을 너무 크게 짓는 바람에 언덕 자체가 사라져버림. 그 언덕은 그 일대에 남아있던 유일한 옛흔적이었는데 새성당 생기고 유년의 기억 자체를 빼앗긴 느낌이었어요. 밀양 명례성당은 승효상 씨가 설계했는데 언덕을 그대로 살리면서 지형과 조화되게 지어서 범어성당이랑 비교되더군요.
동도초 일대를 꼬불꼬불 몇 바퀴 돌고 더 가려다 차량이 넘 많고 시끄러워 거기서 돌아섰어요. 담티 지나니 시골 풍경, 마음이 평온해져요. 시지 산 지도 20년 넘어 이젠 여기가 더 편안하지만 범어동엔 애틋한 맘이 있어요. 아빠가 살아계셨으면 덤덤했을 텐데 안 계시기 때문에. 범어산 자락 아래 아빠가 지으신 집에 살던 날들. 어디서 주워왔는지 놀이터에 있을 법한 커다란 그네를 마당에 세우고 색색의 페인트로 예쁘게 칠하시던 모습. 학교 마치면 새것이 된 그 그네에 날마다 앉아서 덜렁덜렁 시간 때우던 초딩. 오후 네 시쯤 산쪽에서 들려오던 뻐꾹새 소리. 어릴 땐 그 소리가 너무 신비했어요. 뭔가 알 수 없는 자연과 인생의 비밀 같은 것을 함축하는 듯했어요. 그리고 그 집엔 지금 저보다 한참 젊었던 한 남자가 있었고요. 너무나 그리운.
그렇게 추억 속을 달리다가, 세 시간이 다 될 무렵엔 배고파 눈에 뵈는 게 없더군요. 집을 향해 달리는데 음식점 간판만 눈에 들어옴. 결국 횟집으로 직행, 포장해서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 지나간 시간, 지금,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날 전부가 너무나 짧고, 그래서 삶이 슬프고 또 아름답네요.
사는 이야기/일상의 기록
자전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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