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타고 어디 갈까 하다가 2년만에 역전마을에 갔어요. 경산역 앞 철로를 따라 옹기종기 자리잡은 작은 마을.
1940년대엔 조선인보다 일본인이 많이 살았던 마을이에요. 일제강점기에 경산 코발트광산이 개발되면서 관련된 이들이 많이 거주했다 해요. 성암산에도 일본 절이 있었고 중앙초 자리에 일본 신사가 있었다 해요. 그 시대 흔적은 이제 단칸방이 연이어 붙어 있는 좁은 골목길 정도예요. 마을 공동 우물은 그대로 남아 있지만 군데군데 빌라가 많이 들어섰어요.
역전마을은 재작년에 마을 스토리텔링 작업을 도와주면서 알게 됐어요. 그때 마을토박이 분들 몇 분을 인터뷰했는데 그 중 가장 연세가 많은 분이 1933년생, 여든여덟 살 할머니셨어요. 혹시나 뵐 수 있을까 우물이 있던 그 오래된 집을 찾아봤지만 길치라서 정확한 위치는 기억 안 나고 부근엔 폐가만 보이네요. 다른 분 인터뷰하러 왔을 때도 늘 골목에 나와 계셔서 뵙곤 했는데. 올해 90이신데 돌아가신 걸까, 요양원에 가신 걸까요.
할머니는 일제시대를 '왜정시대'라 불렀어요. 당시 사는 게 걸뱅이도 그런 걸뱅이가 없었다고. 농사 지은 것, 목화, 새끼 꼬고 가마니 찐 것, 놋그릇까지 죄다 빼앗겼다고. 열다섯 살, 70년도 더 전의 일을 생생히 기억하셔서 신기하다 했더니 "하도 몸서리 나서 그렇지" 하셨어요. 고생한 것 생각하면 지금도 괘씸하다고.
해방 후에도 시절은 어수선했대요. 해방 후의 일을 여쭤보니 '빨갱이'를 제일 먼저 떠올리셨어요. 자신은 어려서 빨갱이가 뭔지도 모르고 사상이 다른 줄도 모르고 진짜 빨간 줄 아셨다고. 산에는 사상범들이 숨어 있었고 사람들이 엄청나게 죽어나갔다 하셨어요. 동네에도 잡혀간 사람이 있었는데 집에 돈 많은 사람은 빼내기도 하고 한 마디로 엉망진창이었다고.
곧 6.25가 터지고 피란민이 들끓던 곳이 역전마을이에요. 김천, 서울, 이북, 오만 데서 다 내려왔다 해요. 전쟁통이라 군인들이 부대에 필요한 사람을 길에서 아무나 마구잡이로 붙잡아간 시절이었고. 남자들이 전쟁 가서 다 죽고 마을엔 피란민만 들끓어서 딸을 시집 보낼 데 없는 부모들은 애가 탔대요. 동갑 친구도 날 잡아놨다가 신랑이 갑자기 군에 끌려갔다고.
할머니 부모님도 인근에 일하러 온 사람 중에 봐둔 사람이랑 할머니를 급하게 결혼시켰는데, 할머니 남편도 곧 지게에 밥 지고 낙동강 전투에 끌려갔대요. 거기서 많이들 죽었는데 다행히 남편 분은 살아돌아왔다고. 낙동강에 피가 강물처럼 흘렀던 참혹했던 전쟁은 몇 년을 끌었고 할머니는 영천에서 들려오던 총성이 아직도 귓가에 어른거리신다 하셨어요. 그 소리가 몸서리 쳐져서 지금도 불꽃놀이 싫어한다고 하셨는데… 이승만, 박정희는 직접 보고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은 TV에서 봤다 하셨는데...
마을을 두어 바퀴 돌았지만 할머니 그림자는 보이지 않고 재작년에 공사중이던 주민커뮤니티센터가 완공된 모습만 봤어요. 골목길과 마을 우물 사진을 찍고 지칠 줄 모르고 지어지는 고층아파트숲을 지나 집으로 귀환. 평범한 분들이 들려준 삶의 이야기들 때문에 기억에 남아 있는 곳.
사는 이야기/일상의 기록
경산역 역전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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