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초대해 승효상 건축가가 재능 기부한 하양 무학로교회를 방문했다. 정말 자그마한, 한 30명쯤 들어갈 만한, 천주교로 치면 공소 같은 교회인데 과연 대건축가 설계는 다르구나 했다.
기품도 기품이지만 입체적인 공간 곳곳에 작은 이야기를 새겨넣은 건축이다. 실내는 어둠 속에 빛이 차분하게 스며들어 절대자와 마주하는 공간 같았고 교회 옥상으로 가는 좁은 통로와 가파른 계단은 골고타 언덕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옛 한옥을 허물지 않고 새로 지은 교회 건물과 조화를 이루도록 한 점도 특히 좋았다.
교회 건너편엔 비슷한 분위기의 아름다운 카페가 있다. 승효상 선생 아드님 설계라 한다. 역시 옛건물을 그대로 살린 점이 좋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임은정 검사를 만났다. 대구지검 오면서 이 교회를 다니신다고. 카페에 검사님 책이 있어 한 권 사고 사인도 받았다. 이분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우리 세대를 대표할 리더가 누가 있을까 했는데(그래서 맨날 윗세대 386에 투표). 임은정 검사를 발견했다. 10년 뒤 합당한 자리에 가 계시리라 믿는다.
공간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좋은 공간은 이야기를 간직한 공간이다. 옛이야기와 새로운 이야기가 씨줄과 날줄처럼 얽힌 승효상의 건축이 좋았다.
높은 언덕을 싹 허물고 그 자리에 거대한 성전을 지은, 범어성당이 내게 흉물로 다가오는 이유도 이야기를 죄다 없앴기 때문이다. 그 공간은 말을 하지 않고 이야기도 들려주지 않는다.
공간, 이야기, 옛것과 새것.. 여러 화두를 담아온 하양 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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