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좋아하는 작가인데 처음 만났다. 신작 '사랑과 혁명' 북콘서트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이 책을 쓸 무렵 작가는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곡성에 정착한다. 곡성에서 농사 짓고 섬진강과 자연을 벗하며 산 시간이 소설 구성과 내용에 큰 변화를 주었다고 한다.
작가가 소설에서 집중적으로 다룬 이들은 곡성의 옹기꾼이다. 그들은 누구인가.
1801년 신유박해 이후 천주교 지도부는 와해된다. 정약용 삼형제가 순교하거나 귀양을 가게 된 게 이때다. 남은 신도들은 전국 각지로 흩어진다. 그들이 서울에서 가장 멀리 내려와 정착한 곳이 바로 곡성이다. 곡성까지 내려온 거다. 서울에서 내려올 때 그들의 신분은 양반, 중인, 상민, 천민 등 다양했지만 곡성에서 그들은 평등을 이룬다. 옹기꾼이라는 천민으로. 모두 천민이 되었다.
그들이 옹기꾼이 된 이유는 옹기를 만들려면 마을에서 좀 떨어진 골짜기에 살 수 있어서였다. 흙을 캐고 가마를 만들어 옹기를 구우려면 많은 일손이 필요하고 협동을 해야 하는데 옹기꾼은 교우촌을 이루어 함께 살기에 용이했기 때문이었다. 신유박해 이후 양반들이 천주교를 떠난 자리를 평민 신도들이 더욱 험한 고난을 감수하며 지켜내었다. 주문모 신부가 순교한 후 약 30년을 신부가 없는 나라에서. 그들끼리 힘을 합쳐서.
이런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소설은 1827년 곡성에서 시작된 정해박해 시기를 다룬다. 전국적으로 500명이나 되는 신자들이 투옥되었으며 12년이나 갇혀 있으면서도 끝까지 신념을 지킨 5분이 전주감옥에서, 3분이 대구감옥에서 사형을 당했다. 소설은 전주감옥에서 12년을 보낸 분들의 이야기도 자세히 다루고 있다.
김탁환 작가는 소설을 퇴고할 무렵 또다시 운명처럼 정해박해 때 곡성감옥터였던 곡성성당 옆에 집필실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곡성성당은 천주교성지여서 스탬프 찍을 때 방문해봐야겠다 싶었다.
작가님께 두 가지 질문을 드렸다. 하나는 그분들이 지도자도 없이 수십 년을 버틴 힘이 무엇이었을까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작품에서 들녘, 아가다, 길치목, 짱구 등 주연 뿐 아니라 모독, 무녀 금단 등 수많은 조연들이 캐릭터가 하나같이 생생하고 기억에 남는데 집필할 때 무슨 비결이라도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그분들이 진짜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희구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답을 주셨고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평소에 '등장인물 평등주의'라는 원칙을 갖고 있다 하셨다. 등장인물이 100명이면 그 100명이 주연이건 잠깐 등장하건 상관없이 똑같은 비중을 두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런 계기가 있다 하셨다. 작가님 소설을 드라마로 만들 때 촬영 현장에서 겪은 일화다. 주인공이 등장하는 씬을 찍으면서 재촬영이 거듭되어 그 다음에 등장하는 화살 맞고 죽는 병사 역할의 배우가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때 그 병사 역할의 배우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분이 지방에서 10년을 연극 배우를 하면서 거기에서 인정을 받아 서울 대학로에 진출했고 또 대학로에서 10년을 열심히 하여 드라마 PD의 눈에 띄어 잠깐 등장하는 병사 역할을 맡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면 비중이 적은 엑스트라급의 역할이지만 거기까지 오는데 그분은 20년이 걸렸다. 사람을 단순히 역할이나 기능에 따라 보지 않고 그의 삶 전체의 깊이를 봐야겠다는 생각을 그때 하셨다 한다. 요즘은 '등장인물 평등주의'가 '만물 평등주의'로 확대되었다 웃으신다.
의미 있는 이야기가 많았지만 요 정도 기억을 위해 기록해둔다. 이분이 세월호 이후에 쓴 소설 '거짓말이다'를 너무나 인상 깊게 읽었다. 우리 사회가 건강해지는데 많은 기여를 하는 훌륭한 소설가다. 이분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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