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sheshe.tistory.com
학교 이야기/schooling

작별, 다시 길 찾기

by 릴라~ 2024. 8. 26.

하혈이 시작된 게 5월 중순이었다. 

(자궁근종이 갑자기 커져서 생긴 출혈이라나...)

처음엔 하혈량이 너무 많아서 이래서 학교 다니겠나 했는데

호르몬제 처방 받고 양이 다소 줄어서 경과를 보고 있는데

병가를 쓸 수가 없었다. 서평쓰기 수행평가를 이미 6반 모두에서 진행중이라...

중학교 평가가 뭐 그리 중요하냐 싶지만 

이미 진행중이라 다른 사람이 하기엔 일이 넘 복잡해서

어떻게든 내가 마무리하는 게 더 속 편하겠다 싶었다.

어찌어찌 수행평가를 끝내고 기말까지 마무리,,,

6월 말이 되었을 때 한계가 왔다. 

두 달 가까이 생리를 계속한 셈인데다가 빈혈성 두통까지...

과장 안 하고, 사람이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새학교는 1학기 적응이 가장 힘들고 또 울학교는 역대급 폭탄이 있었는지라

진짜 몇 달이 몇 년처럼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는데, 

그거 다 버텨내고 2학기 휴직 쓰려니 진짜 억울한 마음이었지만...

건강이 우선이다 싶어서, 자율연수 결정. 

 

개학이 금욜이라 첫날은 이것저것 일 정리하려고 하루만 근무하기로 결정,

아이들이 놀랄까봐 개학날 집에 갈 때 담임 바뀐다고 말해주었다. 

미리 말하면 전교에 혼란이 일어날까봐... 

오바도 이런 오바가 없었다. ㅎㅎ

 

사실 K중을 떠날 때 학생들이 아쉬움을 듬뿍 표현해주었던 터라

이 친구들도 그럴 줄 알았다. 워낙 손이 많이 가는 학교여서

사실 K중보다 서너 배는 더 많은 보살핌과 사랑을 받았다, 이 애들이.

근데, 내가 간다니까 별다른 반응 없음, 뭐 그런가보다, 그런 반응?

그때 알았다. 아, 이 학교 와서 계속 벽 보고 말하는 느낌이었는데,

그래서 그랬구나. 정을 낼 줄 모르는 학생들이구나. 

공고에서 누가 가든지 오든지 무신경한 학생들이 많았는데

여기도 약간 그런 성향의 학생들이 많구나 했다. 

이렇게 학급을 번질나게 드나들며 자주 관리하고 보살피고 돌봐왔음에도

서로간에 래포가 형성되지 못했구나. 

배움을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여기는 학생들이기에

내 수업이 K중의 반의 반의 반도 스며들지 못했구나...

수업과 배움이라는 가치를 서로 공유하지 못할 때

교사와 학생간의 깊이 있는 래포가 형성되기 어려운 것 같다. 

아마 우리 학생들에겐 젊은 교사가 필요한 듯했다. 

젋은 교사라면 그 자체로 무언가 공감대 형성이 되니...

 

사실 3월 초부터 역대급 폭탄들이랑 붙어서 얼마든지 교권침해 내고

병가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우리 반 학생들 불쌍해서

담임 중간에 안 바뀌게 하려고 말 그대로 꾸역꾸역

정신과 상담 받아가면서 버텼다.

여기 학생들도 고급? 교육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조금 허무하긴 했으나, 지난 한 학기의 성격이 비로소 이해되었고

최선을 다했기에 조금의 아쉬움도 없다. 

그리고... 내년 하반기 복직인데, 반 년은 어쩔 수 없이 채우더라도

이 학교는 반드시 떠나기로 했다.

이 정도 에너지를 쏟아서 간신히 현상 유지라면

사람이 버텨낼 수가 없다.

 

지금 생각하는 것은 두 가지다.

1. 학생 수가 적은 경북의 시골 오지 학교 지원하기

2. 다시 고등학교로 가기

 

1번을 택하려니, 작은 학교에 업무 과다가 걱정이고

2번을 택하려니, 지필고사 시험 출제도 싫고 입시도 싫고, 에라 모르겠네. 

좀 더 고민해봐야 겠다. 

 

한 고비 넘기면 또 한 고비... 

남들은 학교가 안정직이라고 하지만, 

근무 환경은 절대 안정적이지 않다.

해마다 달라진 업무에 뭐가 떨어질지 몰라 불안 그 자체. 

이 나이에 다시 갈 길을 방황하게 될 줄이야... 

내가 현실을 잘 못 견디는 사람이어서 그럴 지도 모른다. 

나이 들어서 조금 인내심이 늘었나 했는데, 아니다.

내가 견딜 수 없는 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것 같다.

 

아래 사진은 마지막 출근일에 했던 보물찾기.

인터넷에서 어느 선생님이 하시는 걸 보고 벤치마킹.

학급 예산이 좀 남아서 항목 하나는 싹 다 쓰고 정산해서

새담임에게 깔끔하게 인수인계 하려고 남은 예산으로 선물 구입.

교실 곳곳에 교환권을 숨겨 놓고, 찾는 사람에게 나누어주었다.

마지막으로 싼 도시락도 맛있게 먹었다.

 

학생들 반응 땜에 조금 허무했고

2학기 월급이 훨 많기에 조금 억울했고(추석, 설날 상여금 어쩔 거야...ㅠㅠ)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주 많이 홀가분했던 개학날... 

 

 

 

300x25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