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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일상의 기록

대구 동성로 유세장을 다녀와서

by 릴라~ 2002. 12. 9.

 

대구 동성로 유세장을 다녀와서


지난 토요일, 태어나서 처음으로 대통령 후보의 유세장에 갔습니다. 제가 그를 직접 보러 갈 만큼 이번 선거 과정은 의미 있고 신선한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 속에 네 시 반 쯤 대구 백화점 앞에 도착했을 때 마침 그곳에는 미선이 효순이 추모 행사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시민들이 발길을 멈추고 전시된 사진을 보고 있으며, 서명에 참가하는 이도 많습니다. 그 바로 옆에 우뚝 서 있는 맥도날드와 버거킹 건물이 묘한 대조를 이루었습니다.

유세 예정 시간인 다섯 시가 되자 미군 부대까지 갔던 촛불 시위 행렬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주위는 무척 혼잡했습니다. 집회 신고서를 제출했으니, 선거 차량은 나가 달라는 시위 주최측의 방송이 들렸습니다. 민주당, 민노당, 사회당의 선거 차량이 자리를 비킵니다. 민노당의 성장 역시 좋은 일이라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수구 보수 정당은 여기서 떠나달라는 방송이 들립니다. '한나라당은 없는데' 하며 약간 의아해하기도 했습니다.

노무현 후보 측에서는 시위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습니다. 추미애 의원이 모습을 나타냈고 가수 신해철씨도 보입니다. 그러는 사이 촛불 행렬이 속속 들어옵니다. 서울과는 달리 일반 시민보다는 행사 관계자들과 대학생들이 더 많아 보입니다. 마음으로 힘찬 박수를 보내면서도 일반 시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어법이 다소 부족하여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집회 마지막에 아침이슬을 부를 때는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습니다. 정리 집회라서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습니다.

시위가 끝나자 민주당의 선거 유세가 시작되었고, 어느새 동성로는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임종석 의원의 인사말과 미선이 효순이를 위한 묵념이 이어졌습니다. 다음으로 신해철씨의 찬조 연설이 시작되었습니다. 대학 가야만 사람 대접 받는 사회, 남을 밟고 올라서야만 살아 남을 수 있다는 무언의 합의가 깔려 있는 사회 이제 좀 바꾸자고 날카롭게 말합니다.

성실하고 남을 위해 희생한 사람이 대접을 받는 사회를 만들자는 단순한 이야기가 마음을 찡하게 하는 것이 우리 현실이었습니다. 그 소박한 소망이 사람들로 하여금 주머니를 털게 하는 힘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어 명계남씨가 선거가 끝나면 문성근씨와 함께 영화계로 돌아갈 거라고 짤막한 인사를 한 뒤에 바로 노무현 후보에게로 마이크를 넘깁니다.

'우리 편끼리도 손발이 잘 안 맞을 때가 있습니다'란 말로 노 후보는 연설을 시작했습니다. 집회가 겹쳐져서 약간의 혼선이 빚어진 것을 참 부드럽게 풀어가는구나 싶었습니다. 먼저 이번 여중생 사건에 대한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정치권이 너무 늦어 죄송하다고, 대통령이 되면 꼭 소파를 개정하고 부시 대통령을 만나서 동등한 한미 관계를 열어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공무원 시험에 지방대생 할당제 등을 도입하는 등 지방대 육성 공약, 지방 분권을 통한 지방 살리기 등의 내용이 이어졌습니다.

정책에 대한 평가는 제 몫이 아닐 겁니다. 유세장의 분위기는 마치 콘서트장에 온 것처럼 신나고 즐겁고 유쾌했습니다. 권위적인 모습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고, 다들 후보가 제시한 비전에 공감하며 함께 즐거워하고 행복해 했습니다. 정치가 축제의 장이 될 수 있다는 것, 아마 이번 선거가 처음일 겁니다.

무엇보다도 기존의 정치인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것은 '내가 이렇게 파라다이스를 만들어 줄 테니 나를 밀어달라'고 하지 않고 '여러분이 지금까지 해온 개혁을 함께 하겠다'라고 말한 점입니다.

한국 정치가 이미 국민에 의해서 바뀌기 시작했다고 노 후보는 말합니다. 식민지에서 해방된 많은 나라 중에 한국만큼 민주주의를 이룬 나라가 있냐고, 그러니 우리 함께 자랑스러워 하자고, 그리고 더 나은 21세기를 열어가자고. 그 말에 동의합니다.

90년대 중반에 대학을 다녔습니다. 80년에 대해, 87년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현실 정치에 관심을 가져 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개인주의가 몸에 익은 세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한민국 땅에 살면서, 특히나 못말리게 보수적인 대구란 곳에서 줄곧 살아오면서 한국 사회의 획일성과 권위주의, 닫혀 있음에 몸서리쳐질 때가 참 많았습니다. 답답함이 가슴을 내리 누를 때마다 '불과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대통령 욕하면 잡혀가는 사회였으니 어련하겠어' 하며 자조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달라지고 있음을 피부로 느낍니다. 이 나라가 해방 후 수십 년 간 독재의 긴 터널에서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벗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자기 목소리를 당당하게 내기 시작하는 모습, 감동적입니다. 그 비상의 몸짓에 눈이 부십니다. 변화에 대한 희망은 이렇듯 우리가 살아가는 자리를 다시, 새롭게 보게 하는구나 싶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마지막으로 든 생각은 지금껏 이 길에 바쳐졌을 보이지 않는 눈물과 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희망이 없다고 얼마나 쉽게 말해왔는지, 내가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 소시민의 가벼운 감상 속에 살아왔는지 생각했습니다. 절망의 한가운데서,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간에도 걸어왔을 이름 모를 많은 사람들에 대하여, 내가 세상은 다 그렇고 그런 거라고 냉소하고 있는 동안에, 나 자신의 삶에만 집중해 있는 동안에도 모두를 위한 한 걸음을 떼었을 이들에 대하여 생각하게 됩니다. 희망은 언제나 우리 앞에 있다고, 그것은 우리가 만들어 가는 거라고 마음 속으로 말하고 또 말했습니다.

둑이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그 물길을 되돌릴 수 없습니다. 선거 결과에 상관 없이 새 정치를 향한 이 물결은 시작되었습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지만 많은 가능성과 희망을 그 안에서 발견합니다. 길을 돌아서 가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 마지 않습니다.


나 혼자 꿈을 꾸면 그건 한갓 꿈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함께 꿈을 꾸면 그것은 새로운 현실의 출발이다.

-훈데르트 바서
  2002-12-09 12:45
ⓒ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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