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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일상의 기록

"네 엄마가 내 손을 꼭 잡더라"

by 릴라~ 2004. 12. 5.

"네 엄마가 내 손을 꼭 잡더라"
아버지 검진 결과 나오던 날, 지옥과 천국을 오가다
    
ⓒ2004 배수원


얼마 전 동생이 아버지의 맥을 짚어보더니 심장 쪽이 좀 안 좋은 것 같다면서 병원 검진을 한 번 받아보시라고 권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게 되었다.

막상 병원에 가고 보니 심장은 괜찮은데, 폐 쪽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는 소견이 나왔다. 엑스레이 판독 결과, 폐에 하얀 동그라미가 보이고, 물도 찬 것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CT 촬영을 비롯한 정밀 검사를 받기로 날을 받아 두었다. 병원에서는 만약 많이 아프면 응급실로 오라고, 입원해서 수술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병원에서 돌아온 아버지는 아무 말씀 없이 줄곧 컴퓨터 앞에 붙어앉아 계셨다. 내가 뭐하시나 싶어 슬쩍 보니 인터넷으로 폐암에 대해 읽고 계셨다. 그러고는 충격을 받으신 것 같았다. 그후 며칠간 얼굴이 부쩍 수척해지셨다.

나는 담배도 피지 않고, 술도 많이 안 드시는 아버지가 무슨 폐암이냐고 걱정말라고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그러나 어머니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폐암에 걸리는 사람이 10%나 된다고 하시며 할머니 이야기를 하셨다.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는 골초였다. 할머니가 갖고 계셨던 곰방대가 내 기억에도 남아 있다. 할머니는 세 살 적부터 당신 아버지의 담배 심부름을 하다가 자연스럽게 중독이 되셨다고 한다. 평생 담배를 달고 사신 할머니. 임신 때도 어김없이 피우셨고, 그래서 아버지가 어릴 때 받은 영향으로 폐가 안 좋을 수도 있다고 어머니는 걱정하신 것이다.

그래도 현대 의학이 많이 발전했으니 치료 방법이 있을 거라고 어머니께 말씀드리자, 폐암이라면 6개월을 넘기기 힘들다고 하셔서 나 역시 충격을 받았다. 폐암은 조용한 암이라서 징후가 거의 없다고 한다. 수술 가능한 건 1기일 때뿐이고 2기를 넘어서면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작년에 공기업체에서 정년퇴임하셨다. 평생을 개미처럼 일만 하고 사시다가 이제야 비로소 약간의 여유를 누리고 계신데 만약 세상을 떠나야 한다면 이 무슨 비극인가.

어려운 시대에 태어나서 앞만 바라보고 열심히 사셨던 우리 부모님 세대는 좀 먹고 살만해지니까 쓰러진 분들이 참 많다. 아버지 친구 분들도 돌아가신 분들이 꽤 있다. 회사 퇴직하고 나면 병이 온다더니, 나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드러내 놓고 말은 못하고 다들 속으로 걱정을 삼키는 동안 아버지는 한 주일만에 몸무게가 2kg이나 줄었고, 그 때문에 우리는 더욱 마음을 졸였다.

'혹시 아빠가 잘못되면 어떡하지? 아니야, 믿을 수 없어. 불과 얼마 전에도 지리산 천왕봉 꼭대기까지 거뜬히 올라가셨는데 그럴 리가 없어.'

검사 결과를 확인하기 전날, 마침 아버지는 모임이 있어서 나가고 안 계셨다. 괜찮을 거라고 내가 어머니를 위로하자,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만약 결과가 안 좋으면 서울의 제일 좋은 병원을 찾아서 수술할 거라며 마음을 다잡고 계셨다. 집도 팔고 할 수 있는 조치는 다 해볼 거라고.

아버지도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가셨나 보다. 새벽에 깨시더니 '내가 죽으면 내 제사에 누가 올까?'하셨다고 한다. 그러자 어머니는 지금 제사가 문제냐고 짜증을 벌컥 내셨다고.

그러면서 한탄이 이어졌다. 막내라고 해서 시집을 와보니 아버지는 맏이 노릇은 혼자 다 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집안 대소사를 그렇게 열심으로 자기 일처럼 챙기더니 이게 무슨 일이냐며 눈물을 훔치셨다.

"쓸데없는 걱정을 혼자 다 해서 병이 생긴 거야. 너희 아빠처럼 바보 같은 사람은 세상에 없을 거다."

나는 겨울방학 여행 계획을 이미 세워두었던 터라, 여행사에 전화해서 비행기표를 취소해야 할 거라고 혼자 생각하고 있었다. 나중에 들으니 동생 역시 올해 새로 장만한 스노보드 장비를 되팔아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고 한다.

다음 날, 동생도 걱정되었던지 일부러 집에 들러서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세 식구가 병원에 갔다. 정밀 검사 결과는 뜻밖에도 아무 이상이 없었다. 폐암은 물론이고 늑막염도 아니었다. 첫번째 찍은 엑스레이가 뭐가 잘못되었는지 모르겠는데, 다시 찍은 사진에는 별 이상이 없었다고 한다. 혈관이 그렇게 잘못 보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때 얼마나 좋았던지, 의사 선생님만 안 계셨으면 너희 아빠 끌어안았을 거다."

옆에 있던 동생이 말했다.

"아빠 대신에 나를 끌어안았잖아."

우리 집은 다시 지옥에서 천국으로 돌아왔다.

"아빠, 어제 엄마가 이 소파에 앉아서 울었어요."

"그래서 그랬나? 오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너희 엄마가 내 손을 꼭 잡더라."

아버지는 처음엔 무척 놀라셨는데, 곰곰 생각해보니 한 육십년 살았으면 살 만큼 살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담담해지더란다.

"자식들은 다 키워놓았으니 괜찮은데 너희 엄마가 제일 불쌍하더라. 하지만 딸하고 여행하며 나름대로 재미있게 살면 되겠지 싶었어."

그리고 봄에 어머니와 유럽여행 다녀온 게 가장 잘한 일로 생각되더라고 하셨다. 유럽 구경도 했으니 이만하면 여한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껏 당신을 위한 것이라면 돈 만 원에도 벌벌 떨며 싸구려만 고집하던 아버지였다. 나는 이대로 돌아가시면 억울하니까 앞으로는 아버지 자신을 위해서 아끼지 말고 쓰시라고 했다. 그러자 동생이 한 마디 거든다.

"우리 아빠 십 년 후에 돌아가셔도 그때도 아마 돈 제대로 못 써보셨을 걸."

그러면서 하는 말이, 다른 친척들은 다 잘 사는데 왜 제일 착한 우리 아빠를 하늘나라로 데려가냐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다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어머니는 행복하다고 하셨다.

"너희 아빠 이뻐 죽겠다."
"여보, 나 결혼해서 그 말 처음 들어본다."
"하하, 아빠 주가가 많이 올라갔네."

모든 것이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나는 다시 뉴질랜드에 갈 꿈에 부풀었고, 동생도 스키장 갈 계획을 세우고 있을 것이다. 이 모두가 아버지가 건강하게 버티고 계시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우리가 이렇게 함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인간은 서로를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 세상에 별로 미련이 없는 사람이다.(->몇 년 지난 지금은 미련이 무척 많아짐...^^) 지금까지 가능한 범위 안에서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왔고,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아름다움을 보았다. 내일 죽는다 해도 가볍게 떠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죽는다면 나의 가족과 친구들은 무척 슬퍼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의 가족이, 그리고 내 친구가 세상을 떠난다면 나는 무척 슬퍼할 것이다. 내가 살아있음이 우리 어머니를 행복하게 한다는 사실이 때로 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위해 존재한다. 사랑으로 삶을 버텨낸다.

언젠가 나의 가족과 친구들이 세상을 떠나도, 내 가슴은 영원히 그들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그들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한숨 놓고 가뿐한 마음으로 목욕탕에 가신 아버지는 다녀와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무래도 목욕탕 체중계가 고장났던 모양이다. 오늘 재니 몸무게가 정상인데."
  2004-12-05 11:18
ⓒ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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