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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이야기/인도, 네팔

[네팔] 길을 걷는 것이 행복이다 - Annapurna Sanctuary 13

by 릴라~ 2008. 4. 21.

 

도반에서 여섯 번째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오전 시누아를 지나 촘롱까지 내려왔다. 이제 설산은 저 계곡 사이로 사라지고, 마을길이 눈앞에 펼쳐졌다. 약 이천미터 가량 내려와서인지 날씨도 따뜻해졌고, 저 높은 곳에서 보냈던 시간은 꿈결처럼 느껴졌다.

 

눈길 속을 힘들게 올라갈 때는, 하산할 때만 손꼽아 기다렸는데, 막상 내려오고 보니, 산속에 있었던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구나 했다. 촘롱에서 다시 마지막 밤을 보낼 지누단다까지 하산했다. 청년 한 명은 이렇게 내려가기가 너무 아쉽다고 발길을 돌려 산에서 하루 더 묵는 다른 길로 간다고 했다.

 

지누단다에는 작은 즐거움이 있었다. 산행의 피로를 단숨에 풀어줄 노천 온천. 세 개의 탕 중에서 제일 안쪽에 위치한 탕은 물 온도가 아마 40도 쯤 되었던 것 같다. 몸에 착착 감길 만큼 딱 알맞게 뜨거웠다.

 

지누단다에서는 더 이상 추위는 없었다. 밤 공기도 차갑지 않았다. 우리는 가이드, 포터를 불러서 모처럼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무사히 트레킹을 마친 것을 축하했다. 그 밤은 산 속에서 보낸 밤 중에서 가장 포근한 밤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날, 마을과 마을 사이로 이어진 지루한 길을 온종일 걸은 끝에 공원 입구인 나야풀에 닿을 수 있었다. 여드레 동안의 산행은 그렇게 끝이 났다.

 

정말 손꼽아 기다렸던 순간인데, 산행이 끝나고 나니 비로소 산을 힘들게 올라갈 때가 가장 행복한 한 때였음을 깨닫게 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길을 걷는 것이 행복이었음을 길이 끝나고 나서야 가슴 벅차게 깨닫게 되었다. 끝없이 이어진 먼 길, 그 길은 베이스캠프로 향하고 있었고, 우리는 날마다 그곳을 향해 조금씩 조금씩 걸어갔다. 다른 아무 상념도 없었다. 다만 목적지를 향해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뿐. 매일매일 이르러야 할 곳이 있었고, 그곳까지 걷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었다.

 

베이스캠프는 아마추어인 우리가 안나푸르나의 얼굴을 가장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 머문 시간은 잠시였지만, 그곳에 이르는 동안의 모든 길이 다 아름답고 소중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히말라야의 아침, 저녁, 밤, 그리고 새벽, 흰 눈, 바람, 구름, 골짜기, 정글, 마을...이 우리 곁을 스치고 가며 우리 마음속에 그들의 일부를 새겨넣고 갔다. 산은 그렇게 우리를 불렀고, 우리는 그 길을 걸었다. 마치 사랑이 우리를 불러서 우리가 사랑을 따라가듯이...

 

길을 걷는 것의 행복. 그것은 차를 타고 휙 스쳐가며 보는 것과 달리, 한 걸음 한 걸음 속에서 산의 존재감을, 산의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런지. 그래서 힘들게 걸었던 순간도 멋진 추억으로 남는 게 아닐런지. 또 하나 산행의 행복이라면 매일매일 분명한 목적을 지니고 걸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목표 지점을 향해서 걸어갔고 그것이 우리 마음을 단순한 평화로 이끌었던 것 같다.

 

우리 인생도 인생이 다 끝나갈 때쯤이 되어야 전모가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 때가 되면 살았던 모든 날들, 길 위에 있었던 날들이야말로 행복임을, 즉 나날의 삶의 길을 걷는 것이야말로 행복임을 깨닫게 될까. 삶의 참된 좌표를 설정하고 그 길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갈 때, 언젠가 이 모든 순간이 행복이었음을 깨닫는 날이 올 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길을 걷는 지금, 도상에 있는 지금, 힘겨운 오르막길에 짓눌리지 말고, 살을 에는 찬바람에 몸서리치지 말고, 한 걸음 한 걸음 웃으며 걸을 수 있기를...

 

안녕, 안나푸르나, 강가푸르나, 마차푸차레...

안녕, 네팔, Never End Peace And Love...

 

 




 





마지막 날 아침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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