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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이야기/동남아시아

[인도네시아] 탄중푸팅 1. 보르네오 오지의 탄중푸팅 국립공원을 찾아서

by 릴라~ 2002. 12. 23.

탄중푸팅에서 만난 숲의 사람 (1) 보르네오 오지의 탄중푸팅 국립공원을 찾아서

 

'제인 구달'을 기억하는가?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곰베에서 무려 30년 동안 침팬지를 연구하며 침팬지의 출생에서 사망까지를 전부 지켜본 여성 인류학자이다. 관찰 대상에 감정적으로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기존 과학의 통념을 뒤엎고, 야생 침팬지와 관계 맺음을 통해 동물과 인간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펼쳐보였다. 행동 과학의 아인슈타인이라고까지 불린다.

제인의 뒤를 이어 같은 길을 걸어간 '다이안 포시'와 '비루테 골디카스'도 있다. 다이안은 르완다에서 18년간 마운틴고릴라를 연구하며 그들을 멸종 위기에서 구하려고 노력하다가 밀렵꾼의 총에 목숨을 잃었다. 비루테는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의 밀림에서 오랑우탄 연구에 몰두했다.

▲ <유인원과의 산책> 표지

<유인원과의 산책>을 읽으며 이 세 여성 과학자들의 삶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인간과 가장 가깝다고 하는 침팬지, 마운틴고릴라, 오랑우탄을 돌보고 양육하고 관찰하고, 멸종 위기에서 구해내는데 전 생애를 쏟아 부은 그들의 열정, 자신이 선택한 학문으로 인해 예기치 못한 커다란 변화를 살아야 했던 그들 삶의 행로는 실로 감동적이었다. 자연과 인생의 신비에 새삼 놀랐다.

30여년 전 비루테가 오랑우탄을 찾아 헤매었던 탄중푸팅(Tanjungputing)이 보르네오의 오지에 있었다. 열대의 자연이 살아 숨쉬는, 세계에서 세 번째 큰 섬이라는 보르네오. 그 보르네오의 인도네시아 영토를 칼리만탄이라 부른다. 아프리카를 제외하고 유인원이 살고 있는 곳은 현재 보르네오와 수마트라 뿐이다.지난 1월 국제 협력단 소속으로 칼리만탄에서 봉사 활동을 하는 친구의 조언으로 칼리만탄 여행을 떠났다. 여행하기 쉽지 않은 지역이라 했다. 그러나 그저 스쳐가는 흔한 풍물이 아니라 현명한 세상을 보고 싶다면, 오지와 밀림, 자연의 신비와 함께 인간이 자연 속에서 이렇게도 살아갈 수 있구나 하는 철학을 알고 싶다면 이곳에 오라는 말이 내 발길을 잡아 끌었다.

그곳은 광활한 열대 우림과 습지, 온갖 새와 동물들, 지천으로 널린 과일과 꽃, 쏟아지는 스콜, 달빛, 끝없이 이어진 거대한 강. 감탄할 만한 자연을 간직한 곳. 그러나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파괴가 점점 확산되고 있고, 자연이 파괴됨에 따라 그곳에 사는 동물들과 현지 주민들의 고통스러운 삶이 뒤따르며, 그 사이를 목재 수입상들이 들락거리는 혼탁한 곳임을 친구는 또한 기억하라고 했다.

수도 자카르타가 있는 자바 섬을 떠난 비행기는 칼리만탄 남부의 거점 도시 반자르마신(Banjarmasin)에 나를 내려 놓는다. 반자르마신은 바리토강을 중심으로 한 수상 생활이 무척 인상적인 도시이다. 그 반자르마신에서 다시 프로펠러가 달린 16인승 소형 비행기를 타고 팡칼라분(Pankalabun)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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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자르마신 수상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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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도중에 잠빗(Sambit)이란 도시를 거쳤다. 작년에 머리 사냥(head hunting)의 대참사가 벌어졌던 곳, 다약족이 부족의 옛 전통을 부활시켜 마두라족을 시내 한복판에서 육천 명이나 죽인 사건의 발생지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아직 원시적인 칼리만탄을 개발하고자 자바의 마두라족을 대거 이주시켰다. 마두라족이 지역 상권을 장악함으로써 본토인인 다약족과 갈등이 빚어진 것이다. 외부의 자본이 지역을 잠식하고 지역민을 더욱 가난하게 만드는, 세계화가 초래한 슬픈 현실은 세상 어느 곳도 예외가 아니었다.

잠빗을 지나 드디어 팡칼라분에 도착, 바로 경찰서로 향했다. 오랑우탄 보호 센터가 있는 탄중푸팅 국립공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경찰의 허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허가증을 발급 받은 후 탄중푸팅에서 가장 가까운 강변의 작은 마을 쿠마이(Kumai)까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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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로톡

탄중푸팅을 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클로톡’이라고 불리는 배를 빌리는 것이다. 숙식을 배에서 해결하면서 사나흘 동안 공원 안의 캠프를 차례로 방문하는 것이 일반적인 코스이다. 야생 오랑우탄 보호지라서 정부가 지정한 캠프 외에는 더 이상 접근할 수 없다고 했다.

반자르마신에서부터 동행한 독일 친구 미하엘과 함께 선장과 계약을 하고 호텔에 여장을 푸니 마침 해가 지고 있었다. 낡은 호텔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쿠마이 강의 일몰은 장관이었다. 전통 배인 부기 보트도 많이 보였다. 뭐든 다 나무로 만들어졌는데 여기 나무는 물에도 썩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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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기 보트' 만드는 모습

 

때마침 클로톡 여행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는 영국 여행자들을 만났다. 코코넛으로 만든 칼리만탄의 전통 술 투악을 마시며 다같이 이야기꽃을 피웠다. 어땠냐고 묻는 내게 캐서린은 ‘Sensationable'이란 한 마디로 답을 한다.

다음 날 시장에 들러서 나흘치의 음식과 물을 사서 배에 싣고 드디어 출발했다. 선장 뿐 아니라 가이드, 요리사도 동행하는 여행, 이곳의 값싼 물가 덕택이다. 드넓은 쿠마이 강에서 좀더 폭이 좁은 지류에 들어서자 강 양 옆으로 거대한 야자수와 열대의 밀림이 펼쳐졌고 그 사이를 배는 천천히 나아갔다. 작년에 여기에서 수영을 하던 남자가 악어에 물려 죽었다고 가이드가 이야기한다. 악어를 직접 보지는 못했다.

저녁 어스름이 몰려올 즈음 드디어 첫 번째 캠프에 도착했다. 촛불을 밝히고 저녁 식사를 끝내자 주위는 그야말로 완연한 어둠, 들리는 건 풀벌레 소리 뿐이다. 숲과 강과 하늘 사이에서 배 위에 친 모기장이 바로 나의 지붕이었다. 강물에서 몸을 씼고 나니 문명의 때까지 다 날려버린 기분, 나 역시 이 숲과 마찬가지로 자연의 한 부분일 뿐, 몸도 마음도 새로운 활기로 채워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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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중푸팅으로 들어가는 쿠마이강의 지류(Sungai Seknyor)

 

 

 





2002년 1월, 칼리만탄 여행의 기록입니다.

 

2002-12-23 12:02

ⓒ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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