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페미니즘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볼 만한 책. 학술서가 아니라서 가볍게 읽을 수 있다. 에코페미니즘은 가부장제 문화 속에서 왜곡된 남신의 이미지가 사람들에게 삶과 생명의 존귀함을 일깨우는 데 실패했다고 본다. 병든 인류 문명을 치유하고 어머니 지구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새로운 영성, 여신의 영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우리의 신화 속에 등장하는 삼신 할머니, 바리공주를 비롯하여, 독일의 녹색 성인 힐데가르트 수녀와 여성 과학자 매클린톡 등의 생애를 들여다보며, 그들 삶과 그들의 과학이 추구한 독특한 생명의 영성을 일깨운다.
특히 12세기 독일의 신비주의자 힐데가르트 수녀는 내가 좋아해 마지 않는 성인이다. 그녀는 교황과 황제의 카운슬러이자 의사, 과학자, 약초 전문가로 기록으로 남은 최초의 여성 과학자이기도 하다.
힐데가르트의 하느님은 '녹색의 영'이다. 그녀가 자연에서 느낀 하느님의 숨결은 생명을 키워내고 치유하는 온기와 습기, 푸른 활력이다. 그녀는 하느님의 푸르름, 푸르게 하는 힘에 깊이 이끌렸다. 세상을 푸르게 하는 이 힘이 모든 선의 모범이라는 것이 바로 힐데가르트 신학의 핵심을 이룬다.
자연을 통해 신은 모든 일을 시작하시며 그 놀라운 창조 사업에 인간을 초대한다. 힐데가르트는 이 세계 모든 일에 조물주가 직접 개입을 하며 끊임 없이 함께 활동하고 있음을, 그리고 이는 인간의 선한 행위를 통해서도 드러나고 있음을 강조한다. 자연의 위대한 수레바퀴 속에서 인간 역시 신성을 지닌 존재로써 생명의 힘으로 조물주의 창조 사업에 참여한다.
웬들린 알터의 짧은 글은 남자와 여자가 영적 성장의 조건이 얼마나 다른지를 잘 짚어내어서 좋다. 남성 예수가 말한 '나의 뜻이 아니라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와 여성 힐데가르트 빙엔의 '나는 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원한다'를 비교해 보면 분리에 몰두하는 남성의 특성이 잘 확인된다.
영적 성장이란 작은 자아(small self) 즉 못난이 자아를 극복하고 신성(devinity)을 깨달아가는 과정이다. 분리와 독립을 통해 자신을 규정하는 남성에게는 '자기 없음', '자아 부정'이 자유로 향하는 길이지만, 가족과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느라 완전히 자아를 포기한 여성들은 그러한 자아 없음을 자유로움으로 느끼는 때가 별로 없다. 많은 여성들은 타인의 끊임 없는 요구로 분주하고 산만한 일상을 보내느라 내면의 신성한 불꽃을 자각하기 어렵다.
통상적인 여성비하적 문화 속에서 여성의 '자기 부정'은 여성이 자기 내면의 신성을 찾는 일을 방해하고 외부의 영적 권위에 의존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여성은 관계 속에서 자기를 규정하는 경향이 강하므로, 구도를 위해서 부정해야 할 '작은 자아'는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 드는 행동을 하면서 충족하는 자기 확인의 그 부분인데도 말이다.
따라서 외부와 하나되는 특성이 취약한 남성에게는 외부에 대한 '자비로운 행위'가 실천 지침이 되지만, 일상을 통해 자기를 포기하고 가족과 공동체를 위해 자비로운 행위를 하는 일이 몸에 굳어진 여성에게는 때로는 자비로운 행위가 진정한 '자기 부정'과는 거리가 먼 타성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성장을 위한 '자아 없음'은 신성과 연결되어 있다는 뜻으로 사용될 때만 여성에게도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남성은 자기 내면의 아니마를 거침으로써 생명과 일체감을 느끼고 모든 것 속에 깃든 신성을 알아보는 길을 걸어야 하고, 여성은 자기 내면의 아니무스를 통해 자신에 대한 집중과 내면적 힘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여자와 남자가 서로 상반된 길을 통해 동일한 목적 즉 못난이 자아를 극복하고 자신을 확장하는 데에 이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느님 포근한 품 한가운데엄청난 우주의 바퀴가 돈다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바퀴인간을 실은 지구가 그 가운데하느님의 가장 위대한 작품이 거기에 있다(12세기의 독일 수녀, 힐데가르트 폰 빙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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