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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일상의 기록

법륜스님과 함께 하는 명상수련 후기

by 릴라~ 2010. 8. 2.

정토회 주최, <법륜 스님과 함께 하는 7월 명상>에 다녀왔다. 비파싸나 위주의 4박 5일 과정이다. 반가부좌는커녕 양반다리도 오래 못하면서 간 게 참 대책 없긴 했는데, 그래도 한번은 참여해보고 싶어서 갔는데, 정말 힘들었다.

초심자도 가능한 과정이니, 당연히 좌선과 행선을 번갈아 하겠지 했는데, 왠걸, 휴식 시간 거의 없고 새벽 두 타임, 오전 네 타임, 오후 네 타임, 저녁 두 타임, 이후 법문까지, 새벽 4시부터 밤 10시까지 꽉 짜여진 일정이었다. 그렇게 하루에 열두 차례 40분 명상이 주욱~~~

처음 몇 번은 다리가 부서져도 끝까지 참았으나, 고통이 넘 심해서 이대론 못할 것 같아 '긴급 질문지함'에 상담을 했더니, 편한 자세를 취하란다. 그래서 그 많은 사람 중에서 혼자만 다리를 모으고 앉았다. 종일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는 것은 또 어찌나 힘이 드는지, 한 타임 끝날 때마다 이번엔 집에 가야지, 가야지 했다. 헌데 200명 가까이 되는 참가자 중에서 아무도 집에 가는 이가 없어서 창피해서, 내 인내심이 이 정도인가 싶어 한번 버텨보기로 했다. 명상은 못해도 좋으니 끝까지 하기만 하자, 하면서. 둘째, 셋째 날엔 정말 그런 '지옥'이 다시 없었다. 하루가 한 달처럼 같았다. 그 와중에 몇 달 전 삔 발목까지 온통 쑤시기 시작하고. 오른손은 퉁퉁 붓고.

묵언수행이었길래 망정이지, 만약 말을 할 수 있었다면 끊임없이 불평했을 것 같다. 나는 마음속으로 내내, 죽겠다,,를 연발하고, 이건 명상이 아니라 '기아 체험이야'를 되뇌었다. 두 끼 준다는 건 알고 갔지만, 한 끼 밥이 한 숟가락인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아침, 점심은 그렇게 주고, 저녁은 감자 한 개. 그것도 작은 놈으로. 그 감자를 정말 오래동안 온 마음으로 맛을 음미하면서 천천히 먹었다. 감자 한 알을 황송하게 두 손으로 받들고서. 내 생애, 감자 한 알을 그렇게 감격해서 먹다니...^^;

시간이 지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몸고생'을 제대로 하고 왔는데, 생각하면 스님 말씀이 맞다. 법륜스님이 그러시더라. 주는 밥 먹고, 종일 가만히 앉아 있기만 했는데, 뭐가 그리 힘드냐고, 죽겠다고 다들 난리냐고.^^; 그리고 이어 말씀하셨다. 정말 자신을 괴롭히는 건 남편도, 아내도, 자식도 아닌, 자기 자신이라고. 이곳에 혼자 와서 왜 그렇게 괴로워하냐고, 괴로워하는 자신의 그 모습을 보라고.

중생들은 보통 뭔가 하려 하면 긴장이 들어가고 너무 애쓰고 집중해서 진이 빠지거나, 아니면 헬렐레 풀어지는 극단을 오간다고 했다. 비파싸나는 힘쓰는 수련이 아니라 '힘 빼는' 수련이란다. 편안하게 모든 걸 내려놓으면서도 게으른 게 아니라 호흡을 관찰하는 방식으로 이 순간에 깨어있는 것이라 한다. 운동이든 뭐든 다 힘을 집중적으로 쓰는 방식이고 그건 그것대로 필요하지만, 이렇게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을 때, 온갖 번뇌, 망상, 상념을 통과하면서 자신의 무의식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보통 우리의 무의식은 술을 마시거나 가족처럼 가까운 관계에서 자신도 모르게 드러나고 그것을 고치기가 참 어렵다는 것이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어쩌면 명상은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을 통합하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했다. 달라이라마의 말처럼 불교는 심리학인 걸까.

그렇게 아픈 다리와 쏟아지는 잠과 배고픔과 씨름하며 보낸 와중에도 하루에 한 두번씩은 마음이 고요해진 순간이 있었다. 그리고 어떤 통찰이 스쳐갔다. 우리는 사물을 절대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늘 우리 자신의 의도와 계획을 개입시킨다. 상대방은 독특한 성격을 지닌 그 사람일 뿐인데, 우리가 보고 싶은 대로 본다. 자신의 온갖 욕구와 기대를 '투사'하고는 좋아하거나 실망하고 분노한다. 흐린 거울에 비친 현실은 결국 흐린 상일 뿐인데, 상대방만이 문제라고 생각해온 것 같다. 온갖 것들을 '투사'했으면서도 나 자신 '투사'한다고는 생각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에 맑게 깨어있지 않고는 사람이건 현실이건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겠구나 했다. 깨어 있지 못한 만큼 우리는 삶에서, 사랑에서 멀어져 있다. 꿈에서 또 다른 꿈으로 갈 뿐. 우리 존재를 둘러싼 껍질을 하나씩 벗겨내면 어떻게 될까. 양파 껍질을 벗기고 벗겨도 계속 껍질은 남는다. 그런데 법륜 스님은 말씀하신다. 껍질은 끝이 없지만 양파의 크기는 줄어든다고.

평소엔 거의 기억하지 않는 대학 시절이 생생하게 떠올랐다가 사라지곤 했다. 그 때 얼마나 많은 아름다움과 기회가 그 시간 속에 깃들어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 땐 그 아름다움을 보지 못했는데... 말이다. 참 많은 이들의 배려와 애정이 있었는데, 그 순간에 주어진 기쁨을 누리기보다는, 늘 다른 것에 마음이 가 있었다.

육체의 괴로움과 싸우느라, 명상의 문도 제대로 두드려보지 못하고 4박 5일이 끝났다. 그런데 일상에서 며칠 지내다보니, 이 수련이 한 가지 중요한 도전을 내게 남겨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사랑할 수 있겠다는. 물론 오랜 습이 어디로 가지 않으므로, '투사'가 끊임없이 일어나겠지만, 적어도 그것이 '투사'임은 알 수 있지 싶다. 사람과 세상을 내 기대를 투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싶다. 세상에 대한 우리의 기대와 환상이 무너졌을 때, 그 기대에 토대를 둔 애정도 싸늘하게 식어버린다. 하지만, 그런 모든 환상을 제거했을 때도 우리가 현실을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구현할 수 있는 가장 지고한 품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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