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떤 일을 계획하고 실행할 때 십 년 단위로 예상하기는 쉽지 않다. 나 또한 십 년 전만 해도, 지금의 학교 모습은 상상하기 어려웠으니까. 아니, 전혀 상상하지 못했으니까. 십 년 전에 알았다면 어떠했을까. 이 길을 왔을까. 아닐 것 같다.
어떤 교사가 즉문즉설에서 학생들이 말을 듣지 않고 욕설을 하는 것이 다반사라고 어떻게 지도하면 좋겠느냐고 묻더라. 법륜스님 답변이 명쾌했다. 교사가 학생을 혼내면 그 부모가 교장에게 항의하고, 교장은 다시 교사에게 주의를 주는 이 구조 속에서 자신은 인성교육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자기 같으면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일은 그만두고 자신이 잘 쓰일 수 있는 다른 일을 찾아보겠다고. 그런데 여러분은 돈 몇 푼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니, 현실의 모습을 제대로 인정하라고. 그리고 그 현실 속에서 월급만 받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라고.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공감한다. 지금 학교의 진짜 문제는 교과 지도가 아니라 생활 지도이다. 질서라곤 없다. 여교사가 대부분이라 설쳐대는 남학생들을 통제하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다. 어제 다른 학년에서는 손바닥을 세 대 맞은 학생의 신고로 경찰차가 출두하기도. 경력도 많을 뿐 아니라 무리 있는 행동을 할 선생님은 아닌데, 내 예상엔 아마도 학생이 욕을 하지 않았나 싶다.
내 경우 원래 체벌에 반대하는 철학을 갖고 있다. 초임 시절을 제외하곤 절대 체벌이라는 수단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인데, 말로 하는 생활 지도에 한계가 있음을 요즘 여실히 느끼고 있다. 교칙이란 것이, 쓸데없이 두발 문제 이런 것에 집착하고, 정작 학생들의 생활 문제엔 아무 제재도 가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유명무실하다. 폭력 사건 같은 것은 위원회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 해도, 자잘하게 수업을 방해하고 필요한 규칙을 어기는 경우는 남기기/반성문/벌청소/시암송 등의 지루한 싸움으로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는다. 학부모에게 말해봤자 고쳐지지 않으므로 말할 필요가 없음을 점점 느끼고 있다. 앞으로 더 좋아질 희망이 있다면 고비를 잘 넘길 수 있을 텐데, 앞으로 십 년을 생각할 때, 학교가 더 나아질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지금 하는 일에 애착이 많지만, 그럼에도, 올해는 이제 이 일을 안 해도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애초에 품었던 것들을 충분히 펼치지 못하고 있다. 노력이 부족했던 건 아니었다. 내 그릇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해본 것 같다. 가능하다면 이젠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보람과 기쁨이 더 많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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