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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교육 관련

자유의 교육학 - 파울로 프레이리

by 릴라~ 2011. 3. 26.

자유의교육학
카테고리 인문 > 교육학 > 교육학이론 > 교육철학
지은이 파울로 프레이리 (아침이슬,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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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대학원 교육심리 수업에서 빌헬름 라이히의 '성혁명'을 한 학기 동안 공부한 적이 있었다. 너무 재미있어 지도 교수님께 이 이야기를 했는데, 미국은 보수적이라 그런 주제의 세미나는 상상도 못한다고, 유럽에서나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주제 했다. 그러고 보니 그 수업 담당 교수는 독일에서 공부한 분이었다.

이 책 '자유의 교육학' 덧붙이는 말을 보고 깜짝 놀랐다. 미국 어디에서도 프레이리를 독립된 강좌 주제로 다루는 대학이 없다는 거다. 단기 세미나는 물론이고 비판적 문해의 '독서 과제'에서도 등장하지 않는다고 한다. 프레이리 뿐 아니라 헨리 지루, 벨 훅스 등의 프레이리 학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 한다. 백인 자유주의 교육자들의 경우에도 진보주의적인 방법론은 받아들이면서도 그 방법론의 바탕이 되는 사상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고. 자신의 특권을 자아비판적으로 성찰하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란다.

이 책은 프레이리의 마지막 저서이다. 원래 하버드에서 해방교육을 위한 세미나 원고로 작성했던 것인데 1997년 프레이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남으로써 유고로 남게 되었다. 하버드는 그가 죽자마자 세미나를 취소했는데, 그가 워낙 위대한 교육학자였으므로 그를 홍보 차원에서 단기간 상징적 의미로 초대한 것이지, 그의 사상을 일반 강좌의 하나로 연구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하버드에 프레이리를 혐오하는 문화가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프레이리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문해 교육자인데 말이다.

행복하게도 한국에서는 프레이리의 중요 저작 대부분을 우리말로 읽을 수 있다. '사람대사람'이라는 작은 모임이 죽 번역 작업을 해왔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프레이리를 다시 읽으며 그의 문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정, 신념, 비판적 지성에 감동했다. 평생을 투쟁하고 실천하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쌓아온 사상의 면면들이 이 책에 담겨 있다. 남미의 특수한 사회/역사적 상황에서 비롯한 '억눌린자를 위한 교육'에서 출발하여 희망의 교육학/윤리학을 거쳐 인간의 가장 위대한 가능성으로서의 '자유'를 향한 긴 도정을 이야기하는 그의 글은 비판적이면서도 생기가 넘치고, 거침없이 날카로우면서도 따스했다.

그에게 교육은 억눌린자가 그의 인간성을 되찾는 부단한 투쟁이다. 그는 가능한 꿈과 불가능한 꿈 모두를 일깨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았으며, 억눌린자가 자신의 언어로 다른 차원의 세계를 상상할 수 있을 때 생존의 세계에서 인식과 변화의 세계로 건너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인간이란 사회/역사/문화적으로 존재하므로 교육 역시 세계 읽기를 통한 문화 비판 행위로 존재한다. 프레이리는 이 과정에서 학습자들의 순진한 호기심을 비판적 호기심으로 이어나가는 것이 교사가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보았다. 인간다움에 대해, 인간다워질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프레이리만큼 확신을 가진 이도 드물 것이라 생각한다.

올해, 전문계고로 옮겨와서 프레이리가 더욱 새롭게 읽히는 면도 있는 것 같다. 우리 학교는 중학교 내신 성적 80~95퍼센트 사이의 학생들이다. 대다수가 내신 90퍼센트를 넘는다. 한 마디로 성적이 바닥인, 자존감이 낮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표현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어서 프레이리의 관점이 도움이 될 것 같다. 그 뿐 아니라 오늘날 세계화의 부정적 측면으로서 새로운 '숙명론'이 우리를 뒤덮고 있는 상황이어서(거시 경제를 다루는 사람들은 대부분 비관적이더라) 자기 삶을 새롭게, 인간답게 일으키고 싶은 모든 사람이 프레이리의 사상으로부터 충분한 영감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프레이리의 저작 전부를 꼼꼼이 따져가며 읽고 싶은데, 늘 그렇듯 내게 그만한 시간이 없다는 점이 가장 아쉽다.


"인간화 교육은 사람들이 세상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의식할 수 있게 되는 통로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요구뿐만 아니라 타인의 요구와 열망까지 고려해서 개인의 모든 능력을 계발할 때 세계 속에서 자신을 의식하며 행동하고 사고하게 된다."

“나와 숙명론적 지식인들 사이의 근본적 차이점 중 하나는, 내가 예전이나 지금이나 교육실천이 ‘글 읽기’와 ‘텍스트 읽기’에만 제한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이 반드시 ‘세계 읽기’ ‘맥락 읽기’를 포함해야 한다고 믿어왔다는 데 있다.”

비판적 사고란 사물의 존재 이유를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상을 기술하는 데 그치거나, 그 존재 이유를 왜곡하는 것은 생각을 편협하게 만드는 행위이다. 굶주림이란 단어에 대한 나의 이해는 ‘사전적’이지 않다. 일단 단어의 의미를 인지하면, 반드시 그 현상의 이유를 찾아내야 한다. 굶주림에 처한 이들의 고통에 무관심할 수 없다면, 그러한 상황이 신의 섭리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거짓말이다.”

“나는 ‘역사란 확정된 것이 아니라 열린 가능성이다’라고 단언한다. 우리는 조건의 제약을 받는 존재이지만 결정된 존재가 아니다. 인간을 자유로운 의사결정의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역사를 열려 있는 가능성으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와 같은 인식의 훈련 없이 윤리를 말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인간은 미완의 존재이기 때문에 영원한 탐색활동에 몸담게 되어 있다. 사실 자신의 불완전함을 알고 있는 우리가 끊임없는 탐색활동에 몸담지 않는다는 것은 모순일 것이다. 이 때문에 인간은 세계 속에 있기만 해도 반드시 세계와 더불어 존재하게 되어 있다. 우리의 존재 방식은 더불어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를 만들지 않고, 역사에 의해 형성되지 않고, 문화를 창조하지 않고, 세계 속의 자기 존재를 깨닫지 못하고, 꿈도 노래도 음악도 그림도 없이, 대지와 바다를 돌보지 않고, 손도 사용하지 않고, 조각하거나 철학하지 않고, 세계에 대한 어떤 견해도 없이, 과학도 신학도 하지 않고, 신비로움 앞에서 경외심도 없이, 배움도 교훈도 가르침도 없이, 교육에 대한 사상도 없이, 정치적이지도 않은 채 세계 속에 존재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불가능하다.”

문제는 ‘운명’이 아니다. 문제는 부도덕성이다. 여기서 거듭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그 무엇도 인간을 타락시키는 일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어떤 것도, 과학이나 기술공학이 아무리 진보한다 해도 ‘계급’을 정당화할 수는 없으며, ‘계급’을 질서라 부를 수도 없다. 수많은 민중이 억압 속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고투하면서 자신들의 비참한 삶이 단지 신의 뜻이라고 정당화하면서 체념하는 동안, 소수 권력자들은 이 땅의 과실을 맘껏 이용하고 탐내고 있지 않은가. 나는 이 땅에서 비참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삶을 운명에 맡기라고 요구하는 소위 ‘중재자들’ 편에 나의 목소리를 덧붙이진 않으련다. 나의 주장은 그와는 다른 언어, 다른 종류의 음악과 조화를 이룰 것이다. 나의 언어는 기만당하고 배반당한 자들의 정당한 노여움을 나타내는 저항과 분노의 소리이다. 그것은 또한 민중들의 저항할 권리, 다시 말해 그들을 오랜 고통의 희생자도 몰아넣은 소수 권력의 윤리적 범죄에 맞서 저항할 권리를 외치는 소리이기도 하다.”



"교육이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교육이 할 수 있는 어떤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교육은 사회변혁의 열쇠도 아니지만, 또한 지배 이데올로기의 재생산 활동도 아니다. 단지 내가 바란다고 해서 교육을 사회변혁의 확고한 도구로 만들 수는 없으며, 또한 권력자들이 포고한다고 해서 교육이 현상태를 영원히 지속시키는 도구가 될 수는 없다.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교사라도 그가 실천하는 교육과정이나 세미나가 나라 전체를 바꿔놓을 것이라고 상상해선 안 된다. 하지만 그는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으며, 따라서 정치-교육학적 과업의 중요성에 대한 확신을 강화시킬 수 있다.

삶에 최선을 다하며 더 나은 세계에 대한 희망으로 충만한, 그리고 투쟁의 능력과 다름을 존중할 줄 아는 능력을 입증해온 민주적이면서 유능한 교사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지름길은 그들이 시종 일관 세계에 헌신하는 존재로 살아가는 것임을 안다. 그리고 학교에서의 매 순간이 충실하게 살아야만 할 특별하고도 중요한 순간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많은 순간들 중 한 순간에 불과하다는 것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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